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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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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의 어록 == {{명언}} {{감동}} (35세, 1579년) 내가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섰는데 어찌 감히 권세가에 의탁하여 승진을 꾀할 수 있겠는가? <ref>훈련원 봉사가 되었을 때 병조판서 김귀영이 첩의 딸을 소실로 보내려 하자</ref> 밑에 있는 사람을 부당하게 위로 올리고 위에 있는 사람을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닙니다. 법은 지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ref>훈련원 봉사로 근무할 때 병부낭중(서익)의 불공정한 인사 조치를 보고</ref> (47세, 1591년) 해적을 막는 데는 수군만한 것이 없으니, 수군과 육군 중 어느 한 쪽도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ref>수군을 폐지하고 육전에 전력하자는 조정 여론에 맞서며</ref> (48세, 1592년)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나아가 싸우는 것뿐이니 감히 다른 맘을 품는 자는 목을 벨 것이오.<ref>첫 출동을 앞두고 결의를 불태우며</ref> 자주 이기게 되면 반드시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장수들은 항상 조심하라.<ref>연승으로 인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ref> 왜적에게 사로잡혀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구출해오는 일은 왜적의 목을 베는 것과 다름없는 공로이므로 왜선을 불태울 때에는 특별히 살펴서 찾아내고, 조심하여 함부로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ref>전투에 임하는 장졸들에게 전공만 좇지 말고 조선인 포로들의 신변보호에도 각별히 신경써줄 것을 당부하며</ref> (48세, 1592년, 옥포 해전을 앞두고 장졸들에게) 너희는 경거망동하지 말라. 너희는 태산과 같이 진중하라. (50세, 1594년) "왜놈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日本之人, 變詐萬端, 自古未聞守信之義也)" <ref>담종인에게 보낸 답담도사금토패문(答譚都司禁討牌文)의 내용</ref> (53세, 1597년) “죽게 되면 죽을 따름이지 어찌 도리를 어겨가면서까지 살 길을 구하겠느냐.”<ref>압송되어 하옥되었을 때, 감옥 담당 관리가 조카(분)에게 ‘뇌물을 바치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ref> 비가 오다 개다 하였다. 아침에 흰 머리털 십여 오라기를 흰 머리털인들 어떠랴마는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ref>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ref> (53세, 1597년 4월 11일) 나라에 충성하려 했건만 이미 죄를 얻었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만 어버이 또한 돌아가셨구나.<ref>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 길에 올랐을 때 어머니 부음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ref>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 같은 이가 또 어디 있으랴!”<ref>(백의종군 종착지로 떠나야 했기에)어머니 빈소를 떠나며.. 빈소도 오래 있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말이다. ㅠㅠ</ref> (53세, 1597년 9월 15일)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의 사내들도 겁을 낸다(一夫當逕, 足懼千夫)’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은 결코 살려는 생각을 품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ref>명량해전을 앞두고</ref> (53세, 1597년 9월 16일) “적이 비록 1천 척이라 하더라도 우리 배를 쉽게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 <ref>명량해전 때 두려워 떠는 군사들을 타이르며</ref> (54세, 1598년) 순천 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로부터 포위를 풀어달라는 뇌물을 받은 명나라 수군 진린 도독과의 대화 진린: 나는 잠시 이곳의 행장(行長:고니시)은 내버려두고 먼저 남해에 있는 적들을 토벌하러 가고자 합니다. 이순신: 남해에 있는 자들은 모두 적에게 포로로 잡혀간 우리 백성이지 왜적이 아니오! 진린: 하지만 이미 적에게 붙은 이상 그들 역시 적이오. 이제 그곳으로 가서 토벌한다면 힘도 안 들이고 머리를 많이 벨 수 있을 것이오. 이순신: 귀국 황제께서 적을 무찌르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나라 백성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소. 그런데 이제 구해내지는 않고 도리어 그들을 죽이겠다는 것은 귀국 황제의 본의가 아닐 것이오. 진린: 우리 황제께서 내게 긴 칼을 내려주셨소! 이순신: 한번 죽는 것은 아까울 게 없소. 나는 대장으로서 결코 적을 놓아주고 우리 백성을 죽일 수는 없소! (54세 1598년 11월 18일) “이 원수들을 섬멸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此讎若除, 死則無憾)!” <ref>결전(노량해전)을 앞두고 하늘에 기원하며</ref> (54세 1598년 11월 19일)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 <ref>적의 총탄에 맞아 치명상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마지막 명령</ref> 결전 노량해전으로 이순신은 54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였고 이날 수군은 무사히 왜군을 쫓아내며 왜란은 종료된다. 남자인데 반했다 인생이 핵간지 사실 노량해전에서 총탄에 맞지 않았더라도 관직나간 내내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장수는 꿈도 못꾸셨을 것이다. 선좆을 보면 전후에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대우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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