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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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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이 일로 일제는 "아 씨발 아무리 조센징들이라지만 밟기만 하면 좆되는구나."라고 큰 깨달음을 얻고 문화통치로 전환했다. 그래놓고 산미증식 ㅆㅂ ㅋㅋㅋㅋ 3.1 운동의 가장 큰 의의는 민중 스스로 동참하여 "좆본 씨발!"을 외치면서 일제에 반감을 들어낸 것이다. 독립운동가들도 "역시 민중 봉기가 무섭구나."라고 깨닫고 독립운동은 무력투쟁과 민중계몽으로 노선이 나뉘었으며 한편으로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하여튼 뭐 헌법에도 나와있고, 공휴일이고! 시험에도 자주 나오고, 일제시대의 한 분기이기도 하니까 3.1운동이 현대사에서 가진 가치는 존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ㄴ 대충 말해서 이렇단 거지, 좀 깊게 파고 들면 더 의미가 크다. 첫째로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봉건왕조의 노예도, 일본 제국의 신민도 아닌 어엿한 한국인임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당장에 독립으로 직결되진 않았지만 3.1 운동의 원래 목적이 임시정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민족 정신 고양이니까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박헌영]] 같은 좌파 빨갱이 정치인들도 3.1 운동을 "내가 조선인임을 자각하게 해 준 혁명적 사건"으로 칭송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 20년이 넘었음에도 1918년에만 해도 보통학교(現 초등학교)에 백정 출신이 오면 얼레리꼴레리~ 하고 차별 당하고 친일파 양반 자제들은 존나 신처럼 떠받들었는데 이 운동 이후로 1920년대에는 신분제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다.(20년대에도 신분 해방 운동이 몇 번 있긴 했다.) 둘째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당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임시정부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으로 구성된 임시정부였는지 생각해보자. 이건 아래에 서술할 세 번째 의의와도 연결된다. 셋째는 '''이 나라가 봉건왕조의 종언을 고하고 민주 공화국으로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만 해도 복벽파와 공화파가 서로 치고받고 싸웠는데(심지어 1917년도까지 그랬다.) 1919년 3.1운동 이후로는 복벽파가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된다. 당장 대한'''민국'''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자. 이 영향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어서, 1945년 해방 직후 여론조사를 했는데 민중의 90% 가량이 이 나라의 국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미군정에서도 왜 다른 나라에는 있는 왕당파 VS 공화파 대립이 한국엔 없느냐고 신기하게 여겼을 정도였다. 물론 어차피 이렇게 적어봤자 [[역센징]]과 [[급식충]] 놈들한테는 공휴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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