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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 === 연합국 === ==== 미국 ==== 루스벨트 행정부는 2차 불황을 극복했고 미국 전역에 점차 전쟁의 분위기가 감돌자 루스벨트는 3선에 도전했다. 사상 초유의 3선 도전인지라 공화당과 민주당 전체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국민들의 전적인 지지로 1940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아직 선전포고를 받지도 않았지만 조만간 미국이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고 4가지 자유에서 전쟁의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전쟁 참전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1941년 12월 7일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공습]]을 당하고 천조국 형님은 [[Day of infamy]] 연설로 되받아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도 [[제2차 세계 대전]]에 끼어들게 되었다. 미군은 초기에는 필리핀, 괌 등을 빼앗기며 일본에게 밀렸으나 결국 일본은 미국의 압도적인 양질의 군사력에 밀리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예상치 못한 대승에 당황하여 다음 목표를 어디로 잡아야 할지 내부 갈등이 벌어졌고 결국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이 궤멸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전쟁 도중 1944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가 사상초유의 4선까지 성공했으나 이듬해 병으로 죽고 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취임해 전쟁을 이어나갔다.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횃불 작전을 통해 북아프리카를 제패하고 이탈리아에 상륙해 3대 추축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나치도 소련의 공세로 슬슬 망해가고 있었는데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통해 서부 전선에서 독일을 압박했고 미군과 소련군이 독일 베를린을 함락하면서 유럽 전선에서 승전국이 되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소련과 함께 독일을 분할통치했다. 다시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은 각잡고 일본을 패기 시작했고 괌, 사이판 등을 수복하면서 일본을 역관광시키다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해군을 거의 붕괴시키면서 일본의 패배는 사실상 확정되었다. 일본 사회가 요동쳤으며 일본은 가미카제까지 동원해가며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도쿄 대공습|도쿄 핫]]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리틀 보이, 팻 맨]]을 쳐맞으면서 일본이 마침내 천조국에 [[옥음방송|gg를 치고]] 제2차 세계 대전 승전국이 되었다. 승전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는 새로운 국제 기구인 [[유엔]]을 설립해 전쟁을 방지하는 국제 질서를 수립했다. 미국은 패전국인 독일을 분할통치했고 일본에 [[GHQ]]를 설치해 군사정치를 개시했으며 전쟁범죄자들을 기소해 엄중히 처벌하였다. 다만 [[쇼와 덴노]]의 경우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왜곡된 존경심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소하기 힘들어 그냥 인간선언 시키고 방에서 짜져 지내게 하기로 결정되었다. 추축국을 제압하고 세계 최강국으로 급부상한 미국은 다음 도전 상대로 소련을 맞이하게 되었고, 소련이 독일과 그리스, 한반도까지 영향권을 넓히며 세계를 공산화하려 하자 도미노 이론에 입각해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지하려던 트루먼 대통령은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해 비공산화된 자본주의 국가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먼로 독트린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미국은 새로 등장한 자본주의 친미 국가의 세계 즉 제1세계의 맹주로 군림하게 되었다. 유럽은 무려 두 차례나 벌어진 초대형 전쟁으로 인해 나락까지 추락한 상태였는데 이들이 경제 불황을 빌미로 적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의 경제 재건을 전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영국 등이 식민지를 남기려고 하자 식민지를 순순히 독립시키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면서 훗날의 신생 독립국들에게도 민심을 얻으려고 했다. 이렇게 제1세계의 새로운 경제 체제가 미국 주도로 형성되었고 자유무역 자유경제 체제가 확립되었다. 194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설립되어 미국이 직접 서유럽의 수호자를 자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련을 위시로 한 제2세계의 복구 능력도 매우 빨라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1949년에는 간첩 클라우스 푹스가 영국으로부터 핵기술을 소련에 유출시키면서 소련이 핵보유국이 되었고 이로 인해 미소 양국 간의 세력 갈등이 더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안 그래도 경제가 다들 작살난 지경에 [[제3차 세계 대전]]까지는 가기 싫었으니 그냥 계속 군비경쟁과 대치만 하기로 하고 실제로 싸우지는 않았다. 이렇게 [[냉전]] 시대가 시작되었다. ==== 중화민국 ==== ===== 국민당 ===== 국민당군은 일본군의 공격을 탱킹했고 가끔씩 세력이나 확장하며 팀킬을 저지르는 공산당의 뚝배기도 깼다. 대표적으로 항일 전쟁에 제대로 임하지 않는 공산당 신4군을 궤멸시킨 사건이 있다. 얼마 후 미국과 일본 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전선도 아시아-태평양 전선의 일부에 포함되었고, 얼떨결에 미국, 영국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일본은 양면전선을 맞이하며 전황이 불리해졌고 조금씩 폭주하면서 억지로 중국을 밀어붙였는데, 일본은 물자가 계속 떨어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전구렴야]]가 [[임팔 전투]]에서 병신짓을 하는 바람에 남중국 전선이 안정되었고 일본의 몽강연합자치정부와 만주국도 붕괴하고 있었으며 결국 일본이 원폭 쳐맞아 미국에 GG를 치고 소련군이 만주로 진주해 일본군이 아예 중국 대륙에 갇혀버리면서 남은 일본군도 괴멸됨과 동시에 [[중일전쟁]]이 종료되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중국 내 모든 식민지와 타이완을 중국에 뱉어냈고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진 대만 섬에 국민군이 진주하여 혹시 모를 패전을 대비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국민당은 겨우 일본과 싸워 이겼는데 뒤에서 세력 확장이나 하면서 땡땡이를 치던 공산당이 꿀을 빠는 행태를 보고는 항복한 일본군들에게 공산당에 투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일본군이 본토로 복귀하기 전까지 국민당에 협력하면서 공산당에 대항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국민당 정부와 일본은 훗날 다시 친해질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협상까지 하며 쌍십협정을 맺었으나, 욕심으로 가득한 공산당은 [[국공내전]]을 재차 일으켰고, 초기에는 국민당이 유리했으나 유격전에 특화된 공산당을 섬멸하기가 힘들었고 군벌들도 공산군에 격파당했으며 경제가 작살나 민심이 전부 공산당으로 돌아선 탓에 베이징이 공산군에 점령당하며 전세가 뒤집혔다. 베이징을 수도로 한 북중국은 공산당이, 난징을 수도로 한 남중국은 국민당이 다스리는 구도가 되었으나 1949년 난징까지 점령당한 국민당의 중화민국은 급속도로 쇠퇴했고 상하이, 충칭, 청두 등을 모조리 공산군에게 빼앗기자 대만의 국부군과 내륙의 군소 국민군들과 신장의 국민당에 협력하는 이슬람군만 남게 되었다. 본토를 빼앗긴 국민당 중화민국 수뇌부는 얻은 지 얼마 안 된 신생 영토인 대만으로 [[국부천대]]를 실시하게 되었으며 본토는 공산당이, 대만 섬만 국민당이 지배하는 구도가 확립되어 오늘날의 [[대만]]이 되었다. UN 상임이사국으로써의 지위는 대만으로 정부를 옮긴 중화민국이 게속 갖게 되었다. 한편 이 과정에서 대규모로 귀한 유물들을 대만 섬에 가져갔는데, 훗날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서 파괴되었던 수많은 유물들을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 공산당 ===== 공산당은 국공합작은 했지만 마오쩌둥마저도 힘의 70%를 세력확장에 집중하고 20%를 국민당과의 싸움, 10%만 항일에 쓰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전쟁에 무책임하게 임했고 국민당에 대한 팀킬을 자주 저질렀다. 국민당이 이에 대해 질책하자 공산당의 펑더화이가 백단대전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는데 마오쩌둥은 허락도 없이 일본과 싸웠다며 개지랄을 떨었다. 결국 국민당에 의해 공산당 신4군이 궤멸당하고 말만 합작이지 실질적으로는 남남으로 서로 팀킬도 하고 일본과도 싸우고 하며 지냈다. 이러다가 일본이 패전하자 공산당은 개꿀을 빨려고 일본군에게 공산당에 항복하라는 요구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군은 국민당에 항복해 귀국 전까지 국민당의 요구로 공산당과 싸웠다. 하지만 전후 몸을 사리고 있었으며 유격전에 특화된 공산당은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경제 파탄과 대기근의 책임을 지고 있었던 국민당에 비해 개돼지들을 선동하기 아주 좋았고 이런 원동력을 바탕으로 국공내전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국민당이 공산당을 토벌하는 구도였으나 소련의 간접적 지원으로 공산당이 만주에서 베이징까지 진주해 북중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남중국을 거점화한 국민당을 공격해 주요 도시들을 대다수 점령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공산군은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며 제2세계 국가들로부터 국가로써 인정을 받았고 국부군을 토벌해나가던 도중 동투르키스탄 국가 지도자들을 초대해놓고 그들을 비행기 추락사로 죽인 다음 동투르키스탄을 강제합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중공은 외교적으로는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했고 소련을 위시로 한 제2세계 국가들과만 수교하게 되었고 실제로는 대만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어나갔다. 중국은 전쟁 이후 상당히 나라가 파탄난 상태였고 이를 수습하기도 아주 힘든 상황이었지만 괜사리 주변 국가들의 공산화를 돕는답시고 무리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 프랑스 ==== 막상 독일에 선전포고는 한 상태였으나 실제로는 마지노선을 사이로 대치하며 가짜 전쟁만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과 영-프 모두 서로를 어떻게 쳐들어갈지 확실한 계획을 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독일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 후 점령하고 마지노선을 우회해 아르덴 공세로 선제공격하면서 [[프랑스 침공]]이 이루어지고 실제 독일과 프랑스 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프랑스군은 단련된 독일군에 비해 한참 무능했고 결국 6주 만에 파리를 점령당하면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독일에게 멸망하고 영국군은 됭케르크 철수를 했다. 독일은 프랑스에 [[프랑스 군정청]]를 설치하고 남부에 괴뢰국 [[비시 프랑스]]를 건국했고 프랑스령 식민지들도 추축국에게 넘어갔다. 인도차이나 식민지는 일본과 협정을 맺어 일본이 인도차이나를 다스리되 관료는 프랑스인으로 한다는 애매한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샤를 드 골]]은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를 세웠고 비시 프랑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프랑스 식민지들은 자유 프랑스에 붙었다. 자유 프랑스는 비시 프랑스의 식민지들을 점차 빼앗아갔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 최대의 망명정부가 되었다. 연합군은 [[횃불 작전]]으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대부분 수복했고 이탈리아를 패전시켰고, 독일은 이탈리아가 나가떨어지자 이탈리아령 프랑스 영토를 비시 프랑스에게 넘겨주었으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개시되면서 프랑스 군정청과 비시 프랑스 모조리 날라갔다. 독립한 프랑스에는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가 들어섰고 드골이 임시 지도자로 프랑스를 다스렸다. 이후 프랑스는 미국, 영국과 함께 독일 본토까지 쳐들어가 추축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승전국인 프랑스는 처음에는 꼽사리 꼈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이후 자유 프랑스의 공적이 인정되어 독일 및 오스트리아 분할통치에 가담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 프랑스의 독일 분할 영토는 미국에게 넘어간다. 종전 이후 프랑스 국민들은 새 공식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국민투표에서 96%의 프랑스 제3공화국 종식을 찬성했다. 이후 총선에서 공산당이 드골을 이기고 압승해버려 공산당 주도로 헌법을 만들었으나, 이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 헌법을 만드는 절충안이 나왔고 이것이 통과되어 [[프랑스 제4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제4공화국의 체제는 총리에게 너무 지나치게 강력한 힘을 부여한 반면 정당들은 군소정당들이 난립하는 체제였기에 계속 삐걱거렸고 온건파의 연정으로 간신히 굴러가는 수준이었다. 나라 자체도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며 국제적으로 식민지의 독립이 유행하고 있었기에 시리아-레바논 식민지를 잃고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세워 공산국가인 북베트남과 프랑스령인 남쪽(훗날의 남베트남) 체제가 되었다. 인도차이나 북부인 라오스도 저항이 심해 어쩔 수 없이 자치령 라오스 왕국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본토' 취급을 받던 알제리만큼은 떼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 영국 ==== 영국 또한 독일과 전쟁 상태였으나 프랑스가 멸망한 후에서야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막 총리로 취임한 [[윈스턴 처칠]] 총리는 독일과 싸워야 했으며 독일군은 영국 런던을 자주 폭격하며 영국을 괴롭혔다. 페르시아가 나치에 붙자 사이가 더럽게 나쁘던 소련과 동맹을 맺어 페르시아를 쳐들어가 점령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얀마, 말레이, 홍콩 등을 빼앗기자 일본과도 싸워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벵골 대기근]]이 일어나고 영국이 이에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인도 제국]]에서의 영국에 대한 민심도 극도로 나빠졌다. 이후 영국군은 미국과 함께 [[횃불 작전]]을 펼쳐 북아프리카를 수복했고 미국, 소련과 함께 [[테헤란 회담]]을 통해 소련의 전선 부담을 덜어줬으며 [[카이로 회담]]과 [[카이로 선언]]으로 일본에 대한 처리와 한국 독립 문제가 거론되었다. 1944년 6월 6일에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개시하면서 프랑스를 해방시켰고 1945년 전쟁이 거의 종결되어가자 [[얄타 회담]]을 통해 전쟁 이후 세계의 질서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과 소련 간의 의견 대립이 심해져 냉전의 불씨가 되었다. 영국군은 미군과 함께 서부전선에서 독일을 계속 뒤로 밀어붙였고 결국 1945년 5월 8일 이미 소련에게 항복했던 독일로부터 재차 항복을 받으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전선의 승전국이 되었고 [[포츠담 회담]]을 통해 독일 서북부를 분할통치했다. 독일 전선이 해결되자 영국은 일본 전선에 몰빵을 시작했는데, 일본이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국력이 바닥나자 미국에게 원폭 쳐맞고 영국은 미국, 소련, 중국, 프랑스와 함께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영국은 승전국이 되어 수많은 식민지들을 수복했으나, 영국 내적으로도 피해가 막심했고 이미 세계의 체제는 완전히 뒤바꾸이 식민지들을 더 이상 오랫동안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윈스턴 처칠]]은 실각했고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 내각이 들어서 인도의 독립을 확정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독립이 확정되자마자 종교 갈등이 번졌고 [[다이렉트 액션 데이]] 사건으로 이슬람과 힌두교 사이의 갈등이 준 내전 상황까지 번지자 영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2개 나라로 인도를 독립시키기로 한다. 1947년 인도에서는 인도 자치령과 파키스탄 자치령이 세워졌고 이들 모두 1950년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며 영국 통치 시기가 종식된다. 인도 초대 총리로는 [[자와할랄 네루]]가 취임했다. 역시 인도 제국에 포함되어 있었던 미얀마에서는 독립운동가 [[아웅 산]]이 암살당하고 이후 그의 30인의 동지 중 하나인 우 누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며 버마 연방으로 독립했다. 팔레스타인 식민지는 영국이 유대인 및 아랍인과 맺은 이중 조약 때문에 한 땅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나라가 공존하게 되었다. 당연히 사이좋게 지낼 리가 없었고 두 나라가 독립하자마자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해 아랍 연맹 측이 이스라엘에 의해 개작살났다. ==== 소련 ==== 소련은 나치 독일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태였으나 독일이 지속적으로 소련 침공 징후를 보였고 스탈린도 어느 정도 낌새를 느꼈으나 안 그래도 자기가 숙청해서 인력도 얼마 없는 상황에 독일까지 정보 획득에 훼방을 놓으니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었다. 결국 1941년 6월 22일 이미 동유럽 전역을 추축국의 영향권 아래 넣은 독일이 소련을 전면 침공하면서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사상 최대의 병력과 화력을 총동원해 엄청난 규모의 기동전과 총력전으로 싸웠다. 초기에는 소련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독일군이 발트,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등을 손쉽게 점령했다. 독일군은 소련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를 벌였다. 하지만 소련군은 예비병력을 총동원해 독일과 맞받아쳤으며 [[레닌그라드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모스크바 공방전]],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과 고전한 끝에 승리하고 전세를 역전시켰다. 소련은 미국, 영국과 함께 회담을 통해 대독일전에 있어서 협동을 하기로 했고 연합국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사시키자 독일을 양쪽에서 숨통을 조일 수 있었다. 소련군은 동유럽으로 밀고 들어가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을 점령했으며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는 소련 대신 파르티잔들이 이미 독일을 몰아냈다. 소련은 독일 본토까지 진군해 엘베 강에서 미군과 조우했으며 1945년 4~5월 [[베를린 공방전]]에서 독일군을 포위했다. 히틀러는 자살했고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해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한 보복으로 학살, 강간 등의 보복 전쟁범죄 행위를 벌였다. 이후 소련은 영국, 미국, 프랑스와 함께 독일을 4분할했고 베를린 시와 오스트리아도 4분할했다. 1945년 8월 8일에는 극동 만주에서 [[만주 작전]]을 개시해 만주와 38선 이북 북한 지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소련은 승전국이 되었으며 미국 다음가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공산권의 맹주로써 동유럽에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동독을 위성국으로 만들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기존의 몽골 외에 북한을 새로 건국했다. 다만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지 않고 독자적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세계질서가 미국과 소련 중심으로 개편되자 2개의 초강대국인 미소 양국은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냉전]]이 시작되었다. 제1세계는 공산주의의 확산에 맞서 [[북대서양 조약기구]]를 수립했고 유럽에서의 자본주의권과 공산권의 대립은 첨예해졌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의 피해가 아물지 않은 상황이었던지라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리스에서 공산당과의 내전이 일어났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수립을 도왔으며 북한의 김일성도 지원했으나 살짝 맛이 간 놈이었다는 게 스탈린에게 약간 불편한 점이었다. 소련은 비단 동유럽과 아시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및 동남아의 신생 독립국이나 중남미에도 공산주의를 확산하려고 했다. 소련 내부에서는 승전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한 지나친 신격화 때문에 반감이 싹트기 시작했으나 막상 그것을 드러내면 굴라그 각이었으니 전부 아가리를 싸물고 있었다. 스탈린의 이런 전체주의적 행보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비판받은 바 있다. 스탈린은 나이를 먹으며 자기도 숙청당할까봐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어하면서도 건강이 나빠지면서 정상적인 업무가 힘들어지자 하루빨리 은퇴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은퇴를 권유하는 의사들을 숙청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훗날 자충수가 된다. === 추축국 === ==== 일본 제국→일본 ==== 일본은 슬슬 역량이 딸려가면서도 [[중일전쟁]]을 지속했는데, 마침 미국의 경제 제재로 석유가 끊기자 미국과 '협상'(ㅋㅋ)을 하겠답시고 [[진주만 공습]]을 때려버린다. 결국 천조국은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때렸고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이 개시되었다. 초기에는 일본의 맹공으로 미국이 불리해졌고 진짜로 그 협상을 하게 생겼으나 양질 모두 우월한 갓조국답게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미국에게 역관광을 당했다. 여하튼 어찌저찌해서 동남아 식민지들까지 빨아먹기는 했으나, 몇 년 후 1945년이 되어 독일 전선을 처리하고 돌아온 영국, 미국, 프랑스의 군대가 일본을 후두러팼고 결국 일본 본토까지 공습당하고 원폭 두방을 쳐맞자 조건 없이 항복했다. 동남아 식민지들은 유럽 열강들이 다시 가져가거나 일부는 독립했는데, 북베트남은 호치민의 주도로 독립했으며 남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는 프랑스령으로 남아있다가 얼마 후 독립했다. 미얀마는 인도 제국이 해체되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었고 필리핀은 미국이 자유진영의 맹주를 맡으며 구 제국주의 퇴물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독립시켜주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돌아와 다시 지배하려 했으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을 통해 인도네시아 독립군이 네덜란드를 몰아내며 독립했다. 조선은 소련군과 미군이 38선을 기준으로 대치하며 점령하면서 분단된 상태로 군정기에 들어갔다. 중국의 일본군 점령지와 타이완 등의 식민지는 모두 중국에게 반환되었고 사할린 섬은 소련에게 점령당했다. 류큐 열도는 미국에게 점령당했다. 일본 본토는 연합군 최고 사령부인 [[GHQ]]가 통치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미국의 군정을 받았으며 1945년 말까지 미군이 일본 열도에 진주해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켰다. 천황이나 일본 정부, 내각, 의회는 존재했으나 GHQ가 일본 헌법 위에 군림했기 때문에 모두 어떠한 실권도 없이 GHQ의 명령만 따르며 정치를 이어나갔다. 덴노의 경우 1946년 [[인간선언]]을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인정하는 쇼를 하게 되었다. 사령부는 전범들을 처벌하고 협력자들을 추방했으며 전쟁을 부추긴 극우 조직, 일본군, 거대 재벌들은 해체당했다. 화족 등의 신분제도 폐지되면서 천황의 직계가 아니면서 황족 대우를 받았던 사람들은 [[신적강하]]를 통해 평민으로 강등당했다. 이외에도 토지개혁, 언론 자유 허용, 민주적 선거, 노조 허용, 치안유지법과 특별고등경찰 폐지, 지방 분권, 스크린-스포츠-섹스의 3S 정책이 시행되며 군국주의 국가를 하루빨리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교육 분야에서는 신토, 교육칙어, 군국주의 교육을 금지하고 천황에 대한 신격화를 금지시켰다. 1947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을 폐지하고 [[일본국 헌법]]을 도입해서 이름만 남아있던 [[일본 제국]]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본국]]이 되었다. 천황의 경우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 때문에 처벌하고 싶어도 함부로 처벌하기 힘들었고, 결국 인간선언만 시키고 내버려두기로 한다. 이후 GHQ의 지배를 받는 일본은 대한민국처럼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소련과 제2세계에 대항하는 제1세계 반공 대열의 최전선 중 하나가 되었다. ====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이탈리아의 괴뢰국으로 만들어 본격적인 파시즘 팽창 행보를 보이며 그리스를 쳐들어갔으나 이탈리아 아니랄까봐 걍 발렸다. 결국 보다 못한 독일이 빡쳐서 그리스를 직접 쳐들어가 추축국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독소전쟁이 터지자 이탈리아도 본격적인 제2차 세계 대전의 판에 끼어들게 되었지만 북아프리카에서 또 이탈리아 특유의 무능함을 보여줘 쳐발리자 또 독일이 [[에르빈 롬멜]]을 보내 도와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하튼 연합국은 [[횃불 작전]]을 개시해 북아프리카를 싹 다 따먹고 시칠리아에 상륙해 안 그래도 안습인 이탈리아는 추축국 3대장 중 처음으로 쳐발리게 생겼다. 결국 1943년 9월 이탈리아 왕국은 연합국에 항복하고 연합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에 대해서는 체포 명령이 내려졌으나 무솔리니는 [[오토 슈코르체니]]에 의해 구출되어 아직 추축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북이탈리아에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일명 살로 공화국을 수립한다. 뒤늦게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을 추진했으나 어쨌든 괴뢰국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의외로 험난한 지형 덕분에 지역버프를 받아 오래 살아남았다. 1945년 4월 25일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무솔리니에게 독일이 항복할 것 같다는 전보를 보내자 뒤늦게 독일과의 협력을 파기한다고 선언하려고 했으나 빤쓰런 치는 게 우선이었고 스위스로 튀려다가 빨치산들에게 잡혀 총살당했다. 살로 공화국은 1945년 5월 2일 멸망했다. 전쟁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등판시킨 장본인으로 큰 지탄을 받았고 결국 왕정 폐지 여론이 들끓자 어떻게든 왕조를 유지시키기 위해 1946년 5월 9일 움베르토 2세에게 양위했다. 하지만 결국 왕정 폐지 국민투표는 치뤄졌고 6월 2일 54%의 찬성률로 왕정 폐지가 가결되면서 움베르토 2세는 6월 12일에 왕위에서 물러났고 망명했다. 이탈리아 마지막 왕이 퇴위하면서 이탈리아 왕국은 오늘날의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이후 이탈리아 공화국은 194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담하며 제1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미국의 [[마셜 플랜]]의 도움을 받았다. ==== 나치 독일→독일 ====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1940년 4월 9일 단 하루만에 덴마크를 침공해 정복하고 곧바로 노르웨이를 쳐들어가 6월에 최종 점령했다. 얼마 전인 1940년 5월 10일에는 그동안 이름뿐인 총성 없는 가짜전쟁을 하던 프랑스를 직접 쳐들어가 6주만에 파리를 점령해 프랑스 북부에 군정청을 설치하고 남부에 괴뢰국인 비시 프랑스를 세웠다. 독일은 동맹을 맺은 헝가리, 루마니아 등과 함께 유고슬라비아를 쳐들어가 추축국의 관할령에 편입했으며 이탈리아가 그리스 따위에게도 쳐발리는 수준으로 무능한 모습을 보이자 독일이 직접 쳐들어가 그리스를 괴뢰국화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유럽 대부분을 추축국과 나치의 산하로 편입한 독일은 영국 본토 침공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런던을 향해 폭격만 여러 번 했다. 유럽에서의 준비를 거의 마친 독일은 1941년 6월 22일 소련이 덜 추울 때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독소전쟁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소련을 계속 뒤로 밀고 나가며 독일군은 발트,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북카프카스를 점령하고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이때 소련군의 강한 저항으로 독일의 전력이 떨어지고 1943년 소련이 본격적으로 역습하자 독일이 되려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나치 독일은 괴뢰국인 비시 프랑스를 폐지하고 남부 지역도 군정을 실시해 힘을 더 모으려고 했으나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군이 서부전선에 등장하고 6월 22일에는 소련군이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해 독일은 양쪽의 압박을 받게 되었다. [[추축국]]에 가담했던 국가들도 하나둘씩 떨어져나가 독일의 동맹은 헝가리와 일본, 그리고 이들의 괴뢰국들뿐이었다. 헝가리마저도 부다페스트 공방전을 통해 소련에게 점령되어 공산화되었다. 서부전선의 연합군이 매섭게 공격해오자 [[아르덴 대공세]]를 서부 전선에 펼쳤으나 실패하고 되려 동부 전선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아 소련군은 손쉽게 독일 본토로 진입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자살했고 1945년 5월 2일 [[베를린 전투]]에서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5월 8일에는 연합군이 베를린에 진입해 연합군에도 한번 더 항복했다. 이후 독일에는 나치 관료들이 남아있으면서도 연합군이 행정업무를 맡는 [[플렌스부르크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 때문에 나치 관료들이 연합군과 협력하는 이상한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물론 그마저도 5월 23일 플렌스부르크 정부가 해체되고 연합군이 독일을 4분할하면서 모든 나치 관료들이 체포되었다. 역시나 나치가 점령했던 모든 지역들은 다 원래대로 돌아와 독립했으며 동유럽에는 소련의 공산주의 위성국들이, 서쪽에는 다시 제1세계 선진국들이 재출현했다.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이 4개로 분할해 지배했으며 베를린 또한 4개로 분할되었다. 이외에도 자르 보호령이 독일 분할과는 별개로 프랑스에 잠시 귀속되었다. 연합군 군정부는 나치가 펼쳤던 모든 만행들과 정책들을 전부 무효화시켰고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을 통해 여러 나치 부역자들이 처형당하거나 처벌받았다. 1948년 미국이 마셜 플랜을 들고 나와 유럽 재건 계획을 세우자 영국-프랑스-미국이 점령한 독일 지역은 마셜 플랜의 수혜자가 되었으며 전쟁으로 파괴된 요소들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1949년 5월 23일 미-영-프의 독일 지역이 통합되어 독일 연방 공화국, 즉 [[서독]]이 건국되었다. 한편 소련이 점령한 동부 지역에서는 공산국가 [[동독]]이 건국되었다. 서독의 초대 총리로는 [[콘라트 아데나워]]가, 초대 대통령으로는 [[테오도어 호이스]]가 당선되었다. 동독에서는 [[빌헬름 피크]]가 초대 서기장으로 임명되었다. 동독은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여 독재가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 스페인국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쯤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은 추축국의 도움을 받아서 집권했기 때문에 추축국으로써 참전하려고 했으나 내전으로 이미 나라가 크게 파괴된 상황이라 경제 재건을 위해 애매하게 중립과 추축국 참전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독소전쟁이 터졌을 때 대충 부대 하나만 지원하고 중립을 선언해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고 덕분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을 때도 스페인은 연합국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프랑코 정권은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을 통해 자립을 꾀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관세를 높였으나 고립주의 때문에 크게 효과는 없었다. 문화 탄압은 심했으며 [[파블로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도 스페인을 대거 떠났다. 독재 정권을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얄짤없이 칼질을 당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스페인도 유대인 위주만 아니다 뿐이지 공화주의자들은 스페인 위주의 홀로코스트에 의해 학살을 당하거나 나치 영토 내의 공화파들은 스페인 정부가 입국을 거절하고 나치에 직접 처형하도록 요청해 나치에게 처형당했다. 연합국에서도 처칠과 같은 반공주의자들은 프랑코가 독일이랑 조금 가까워지면 신랄하게 까다가 독일이랑 멀어지면 다시 좋은 반공주의자라며 띄워주기를 반복하는 등 스페인 문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물론 스페인의 고립주의 때문에 마셜 플랜의 혜택은 전혀 받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는 파시즘이 활개치던 시대처럼 잔혹한 탄압은 조금 줄어들게 되고 전시 체제를 어느 정도 해제하며 보통 독재 국가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역갈등을 대대적으로 조장했는데, 이 때문에 이 시절에도 안 좋았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사이는 훨씬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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