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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배경 == === 부마항쟁으로 인한 김재규의 회의감 === 유신체제를 거부하는 대규모 민중시위인 [[부마항쟁]]이 발생하자 평소에도 현 체제에 심각한 회의감을 느꼈던 김재규의 회의감은 더욱 커져만 갔고 이를 궁정동에서 보고하며 대안을 요구했으나 적반하장으로 박정희는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명령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지만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고 역정을 내었고, 같은 자리에 있던 차지철은 이 말 끝에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읍니까"라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김재규가 발터 PPK와 M38 치프 스페셜을 드는데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 코리아 게이트로 인한 미국과의 사이 악화 === 코리아게이트란 박정희가 미국에서 자기에 대한 좋은 여론을 만들려고 미국 국회의원, 언론인들한테 뇌물을 뿌린게 뽀록난 사건이다. 그때의 천조국 대통은 [[지미 카터]]였는데 카터는 흑인인권과 도덕을 중시하던 전형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형 인간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카터가 이 사건땜에 주최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정희가 지 할 말만 몇십 분 하고 끝내버려서 카터는 완전히 빡돌아버렸다. 당시 전 최고실세였던 김형욱은 박정희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악한 일을 많이 해서 적이 많았는데 박정희가 자신을 권력에서 축출하자 정적들한테 살해당할거란 공포감에 이 사건 직후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박정희의 비리를 폭로한다. 그러나 중정차장 윤일균에 의해 프랑스로 간 후 [[마티즈|실종되었으며]] 김형욱의 최후는 1년간 텔아비브에서 암살준비를 했던 한국의 킬러들에게 납치된 후 산채로 해머밀에 갈려져 동물용 모이가 되었다는 것이 유력하다. 어쨌건 핵무기 개발시도와 코리아 게이트로 박정희 말년에 한국과 미국과 사이가 병신이 되었던 것은 사실으로 김재규는 이러한 것에서 한미동맹 악화로 인한 안보적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한다고 말한 바 있다. === [[최태민]]의 권력 남용과 박근혜의 옹호 === [[사이비]] 교주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접근해 "육영수(죽은 박근혜 엄마)가 내 꿈에 나타났으니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면 나를 통하라"라고 하며 세뇌하였다. 최태민은 박근혜를 이용해 정치,경제,언론 등 대한민국 국정 전반에 막대한 비리를 저질렀고 최의 존재가 나라에 백해무익하다고 본 김재규는 최태민의 비리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박정희에게 보고한다. 박정희는 처음엔 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박근혜의 끈질긴 호소(눈물 어린 호소)와 함께 최태민의 세뇌에 박정희 본인도 말려들어, 김재규가 보고서를 제출했을 땐 '''"요즘 중앙정보부에선 이런 일도 하냐?"'''라고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김재규와 정치적 숙적인 차지철도 최태민을 옹호하며 김재규의 말을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최태민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였고 79년에 "최태민 같은 쓰레기는 교통사고라도 나 죽어 없어져야 된다"고 말한다. 최태민에 대한 김재규의 증오는 곧 박정희와 차지철에 대한 증오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거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대한예수장로회 부회장이었던 전기영 목사의 폭로에 따르면 최태민이 권력을 휘두른 단체인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드는 것을 지시한 인물이 박정희 본인이었다고 한다. 즉, 딸이 어찌되던 말던 권력 강화에 최태민을 이용한 것이다. === 차지철과의 대립 === [[차지철]]은 엄청난 권력애를 지닌 사람으로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차지철은 자기 직책인 경호실장을 차장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시켰으며 현역 3성 장군들을 상대로 경호실장에게 거수경례를 하도록 시켰다. 대통령 최측근인 대통령비서실의 권한까지 얻으려 했으며 경호실 내에 경찰 군부대를 만든 뒤 히틀러 친위대와 흡사한 대통령 친위대를 만들었는데, 당시 기록에 따르면 동네 사람들이 자고 있는데 서울 일대에서 탱크와 장갑차를 몰고다니며 "각하를 보호하려는 우리의 충심이 이렇다"는 의미로 탱크 유세를 하고 다니는 등 비상식적인 행보를 걸었다. 후일 김계원의 회고에 따르면 차지철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옹호한 이후 차지철에 대한 박정희의 신뢰도는 더욱 커졌으며 차지철은 중정부장인 김재규가 함부로 청와대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김재규가 이러한 차지철의 횡포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는 10월 26일만이 알 일이다. 참고로 차지철에게 염증을 느낀 사람은 김재규뿐이 아니었다. 전두환 역시 차지철에 대해 상당히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특전사 내부에서 전두환은 여단장까지 한 반면 차지철은 지역대장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지역대장 새끼가 자꾸 여단장한테 엥긴다면 기분이 어떨까? 다만 전두환은 그 [[추녀]]로 악명높은 이순자를, 이규동 장군 라인을 타기 위해서(이순자가 이규동 장군의 딸이다.) 결혼했을 정도로 일생의 목표가 오직 출세 하나뿐인 사람이다. 그 때문에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차지철에게는 겉으로나마 알랑방구를 껴줬다. 그리고 이는 노태우도 비슷하고 여튼 박정희 측근들 사이에서 차지철의 평가는 [[곽영주]]보다 더 심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거의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연상될 정도로 두목에게만 인정받고 나머지 동료들에게는 죄다 버림받은 상태였다. === 박지만 문제 === 사형 전 김재규가 밝힌 10.26의 이유중에서는 박정희의 장남인 박지만의 대학진학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김재규가 말하는 내용인즉 [[육군사관학교]]에는 전통적으로 honor system(기강)이 있는데 박지만은 육사 2학년때부터 여의도의 호텔에서 육사생도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오입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재규는 박지만 개인의 인생이나 육사의 기강이나 어디로 보든간에 타학교의 전입이나 외국 유학을 하는게 낫다고 보고 박정희에게 말한 바가 있는데 박정희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씹었다고 한다. 김재규는 이에 대해 비록 이게 애들 일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박정희)의 집권욕과 이기심을 알 수 있으며 국민을 우매하게 보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박지만은 박정희 사망 이후 [[필로폰]] 투약 혐의로 수 차례 구속된 바가 있으며 각종 성추문에 휘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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