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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 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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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타르(청나라) 사신의 재차 방문으로 인한 두 번째 위기,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 그 해 8월, 타타르 사신이 다시 왔다. 나름 전과 아닌 전과가 있다고 판단했던 조정 측은 당시 군졸이었으며 조선말을 잘 하는 네덜란드인 3명에게 남만인들이 재차 상륙했으니 가서 지원하라 라는 거짓말을 한 후 강제로 전라도 해안에 보내 버려 그나마 하멜 일행들이 타타르 사신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연결 수단이 사라졌다. 심지어 네덜란드인들을 전부 죽여야한다는 소리도 거세지고 있었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조선 장병과 죽을 때 까지 싸우게 만들자' 라는 조선식 콜로세움을 열자는 애미 디진 발상을 내놓았는데 충격적인건 조선 관료들이 이 의견에 대해 명예로운 죽음이라며 되도 않는 논리와 함께 대부분 찬성했다는 것이다. 씨발 극혐.. ㄴ정확히 말하자면 명예로운 죽음으로 위장하려는 의도였다 ㄴㄴ 체격차이가 난다고 2 : 1로 싸우게 하려고 했다 하는데 이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음 당시 조선 관직을 가지고 있었던 벨테 브레이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하멜 일행에게 조정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전달하여 위기 의식을 심어주었는데(앞으로 3일만 버티면 살것이라고 말했는데, 뒤집어서 말하면 그 시점부터 3일간이 너님들 처분 논의하는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것이다.) 때마침 운 좋게도 네덜란드인의 숙소를 지나가던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에게 살려 달라 애원했다고 한다. 이에 동정심을 느낀 인평대군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였으며 이를 본 효종 역시 하멜 일행을 동조하기에 이르러 결국 전라도의 유배 지역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사스가 배우신 효갓종 인평갓군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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