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함경도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조선 왕조=== {{지역감정}} {{인용문|함경도는 니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정도전]]}} ㄴ 참고로 이 말을 들은 [[태조(조선)|리성계]]가 "왜 우덜 지역을 [[개]]로 평가함둥?" 이러면서 [[피꺼솟]] 하자 [[정도전]]이 황급히 말을 바꿔서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돌밭을 가는 [[소 (동물)|소]]라고 평가하자 그나마 안심했다고 한다. ㄴ '함경도'가 처음으로 사용된 게 예종 즉위년(1468년)이다. 태조 때는 별다른 이름 없이 그냥 동북면이라고 불렀다. 솔직히 그때도 함경도라고 불렀을지는 의문을 가져보는 게 좋다. 말이 나온 김에 이름의 변천사를 살짝 소개하자면, 처음으로 도 이름이 생긴 것은 1413년의 일로, 이때는 '영길도'였는데 10년 전 조사의의 난이 문득 생각이라도 난 건지 1416년에는 영흥부가 화주목으로 강등당하면서 '함길도'로 바뀌었다. 근데 이후 이시애의 난이 터지면서 길주도 길성으로 강등당했고 이로 인하여 오늘날의 '함경도'가 처음으로 생겼다. 이듬해 예종 1년(1469년)에 함흥에서도 반란이 생기면서 관찰사가 피 보는 일이 생기자 함흥을 떼어내고 영안도로 개칭, 그러다가 중종 4년(1509년) 함흥 명예 회복을 통해 오늘날의 함경도라는 이름이 비로소 정착한다. {{인용문|태조의 [[평안도]], 함경도 사람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라는 명 때문에 두 도에는 300년 동안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 없으며 혹 벼슬에 오른 자가 있어도 현령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택리지}} ㄴ 리성계는 함경도 출신인데 그런 놈이 [[셀프디스]] 했던 셈이다. 게다가 개국 공신들 중에 서북([[평안도]], 함경도) 출신 장수들이 많았는데도... ㄴ 자기 같은 놈이 또 나올까봐 서북 사람들은 뽑지 말며 뽑더라도 절대 요직에 앉히지 말라고 명령했을 수도 있다. 수양대군 같은 새끼가 실제로 튀어나오기도 했고. {{인용문|나라의 습속이 문벌을 중요하게 여겨 사대부는 [[평안도]], 함경도 사람과 혼인하거나 벗으로 삼지 않는다.|택리지}} {{인용문|북쪽의 두 도([[평안도]], 함경도) 사람들은 다른 [[조선 왕조|조선]] 사람들보다 더 굳세고 더 미개하고 더 사납다. 그들 중에는 양반들은 매우 적고 벼슬아치들도 매우 적다. 사람들은 은연 중에 그들을 [[조선 왕조]]의 적이라고 믿고 있다.|샤를르 달레의 조선 교회사}} [[조선 왕조]]의 발상지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인식이 이렇게 시궁창이었고 [[조사의의 난]]이나 [[이시애의 난]] 등을 거치면서 이미지는 바닥을 쳤다. 그 뒤로는 지하 자원 빼면 볼 게 없는 척박한 땅이라고 좆미개 취급 받게 된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애초에 조선 정부에서 함경도 보고 "야 니네 농사도 안되는 좆 쓰레기 땅(천연 자원의 존재는 다들 몰랐다.)인데 상업이나 발전시켜서 먹고 살아라"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조선 왕조]]의 입장에서 답 없는 놈들이나 중죄인들은 [[함경도]]로 유배를 존나 많이 보냈다. 레알 답이 없는 것들은 [[삼수군]]이나 [[갑산군]] 같은 씹헬동네에 유배 보내서 [[삼수갑산]]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고 윤선도는 [[회령군]]으로 유배를 간 적이 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