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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직전쟁==== 직환전쟁에서 승기를 거두면서 이새끼는 북경을 너머 중국 관내로 스멀스멀 침투해가고 있었다. 과거급제까지해서 엘리트 의식이 상당했던 오패부는'ㅆㅂ 마적밖에 안되던 미개한 오랑캐놈이 감히 북경을 건드려? 개새끼!'하면서 장작림을 존나 아니꼽게 봤다. 이게 전쟁으로 폭발한 것이 봉직전쟁. 1922년 4월 초순에 진행된 1차 봉직전쟁에선 오패부가 11성의 군벌 500명을 불러모아 7개사단+2개혼성여단(총 10만)을 모아 장작림을 다굴때렸다. 장작림은 이에 맞서 3개사단+10개혼성여단(총 12만)으로 방어했으나.... 결과는 산해관밖으로 쫓겨나고 그 많던 12만에서 6만은 토끼고 3만은 오패부에게 항복하면서 폭망잼 ^오^ 이 패배이후 2년간 장작림은 봉천에 수많은 군수공장을 세우고 경제를 발전<ref>그렇게 세워진 군수공업지대에서 연간 대포150문, 포탄20만개, 소총6만정, 중기관총 1000정, 함대 2척, 군함2척, 비행기 300대를 생산</ref> 시키고 오패부 밑에 있던 풍옥상과 내통하면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1924년 9월, 오패부가 남방원정으로 정신없을때 뒤통수를 직싸게 후려갈기고 풍옥상이 북경을 점령하고 오패부를 역적으로 몰아붙이면서 2차봉직전쟁은 장작림의 압승으로 끝났다. 봉직전쟁 승리+풍옥상이 북경버리고 토낌이라는 두가지 신의 한수덕에 장작림은 '요오시~'하면서 중국관내로 진출했다. 초반에는 노영상과 장종창이 [[산동성]], [[안휘성]], [[난징]]을 이새끼에게 헌납하면서 잘되가나 싶었지만, 정복지에서 막장질을 오지게 해대다가<ref>장종창같은 경우는 자기 좆집하고 재산하고 군인수를 모르고 있을 정도로 병신새끼라 '삼불장군'이라면서 조롱당했다.</ref> 손전방이 이끄는 5성연합군에게 3개사단이 개쳐맞고 내부에선 1925년 11월 23일, 봉계군을 근대화시킨 곽송령이 'ㅆㅂ 마적새끼 비위맞춰주는거 더이상 못해먹겠다. 친일파 장작림 OUT!'을 외치면서 정예부대 3방면군<ref>3개군단해서 7만정도</ref> 쿠데타까지 일으키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곽송령의 반란은 쪽바리들 후장빨아가면서 진압성공하고 그사이 풍옥상이 빈집털이 하러 북경과 천진을 공격한 풍옥상은 염석산, 오패부와 다이다이를 해서 [[감숙성]]으로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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