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월남사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전이조]]와 [[조월왕]] == {{거품}} {{콩가루}} 양나라가 베트남을 지배하던 시절, 이비(리 본)는 조숙(찌에우 툭)과 손을 잡고 징측과 징이 자매 이후로 가장 큰 기의를 일으켜 부패한 자사 소자를 쫓아내 전이가를 건국하여 용연을 수도로 정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천득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 그리고 천덕통보를 발행하고 관등제를 모방한 문무백관들을 조직하여 조숙을 태부의 자리에 앉혔다. 전이가는 베트남인과 화교의 결합으로 세워진 첫 왕조라는 점, 이비의 시호 남제가 후대 베트남 황제들이 자신을 칭하는데 쓰였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전이가의 창건 소식을 접한 양무제 소연은 진패선을 총지휘관으로 임명하고 전이가를 침공케 한다. 이비는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주연에서 양나라 군대를 공격했지만 패하고 소력강으로 퇴각한다. 이비는 진패선에게 연달아 패하며 가녕에서 굴로로 퇴각하여 거기서 애뢰족(베트남에 거주하던 라오족)과 손을 잡고 전열을 가다듬어 전철호에서 진패선의 양나라 군대와 대치한다. 그런데 갑자기 전철호에서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고 이 틈을 타서 진패선은 이비의 함대들을 격침시킨다. 이비는 다시 애뢰족의 지역으로 패주하다 애뢰족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수급이 양군으로 보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비가 죽은 후 머리를 잃은 전이가는 이비의 형 이천보(리찌엔바오)의 지도 아래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양나라에 반격을 가했지만 진패선에게 역관광 당해 이천보마저 산악지대로 후퇴한다. 이천보가 떠난 전이가 군대의 병권은 조숙의 아들 조광복(찌에우 비엣 브엉)이 이어받았다. 조광복은 진패선과의 오랜 교전을 전개하면서 베트남 민중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마침 진패선이 본국의 내란을 진압하러 필치 못하게 귀국하자 남아있던 양나라군들은 조광복에게 궤멸당한다. 이후 조광복은 조월왕으로 등극했지만 동시에 산간지대로 망명해있던 이천보가 독자적인 왕국을 건국하여 조월왕과 정통성 문제를 구실삼아 대립한다. 조월왕은 이천보와 그의 사후 차기 국왕으로 즉위한 이불자(리펏뜨)와 홍강 델타 지방에서 접전을 벌여 연달아 승리했지만 이비와의 정을 고려하여 이불자에게 홍강 델타 지방 서쪽의 지배권을 양보했다. 그리고 이불자의 아들을 자신의 사위로 맞아들여 화친을 꾀했으나 훗날 이불자와의 재전쟁에서 대패하고 홍강 어귀에서 투신자살한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