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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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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스 전투 ==== 5월 14일 오후. 독일 기갑부대가 랑에서 고작 19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정보가 프랑스군에게 들어왔다. 프랑스 국방장관 달라디에가 반격을 명령했지만 가믈랭 장군은 병력이 전부 마지노선에 갇혔기 때문에 쓸 병력이 없다며 거절한다. 이때 처칠이 독일군 남쪽의 프랑스군보다 북쪽의 영국 해외원정군이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반격작전을 수립한다. 그러나 전의를 상실한 프랑스군이 작전을 제대로 세운다거나 할 리가 없었다. 5월 20일 저녁 구데리안의 선봉대가 솜 강 어귀의 아브빌에 도착했다. 단시간에 빠르게 진격하며 전열이 가늘어진 독일군. 이 때가 유일하게 반격이 성공할 수 있는 때였다. 5월 21일 영국군 4개 보병여단과 1개 전차여단이 아라스를 출발했다. 동시에 비슷한 수준의 프랑스 전력이 치고 올라와 샌드위치를 만든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기갑여단만 토텐코프 사단에게 조금 스크래치를 냈을 뿐 나머지는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토텐코프 사단이 기갑여단을 맞아 싸우던 그 때. 한참 진격중이던 롬멜의 제7 기갑도 영국군의 기갑부대와 마주쳤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전차는 떡장이라 3호 전차의 물대포나 기타 대전차병기로는 흠집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고전했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은 롬멜은 공군의 88mm 포를 빌려다가 전차를 후려팼다. 격전 끝에 기갑부대를 물리친 롬멜. 롬멜은 영국군 부대를 제 자리로 돌아가게 한 다음에 포위한 채 뚜까팼다. 연합군의 반격을 격퇴하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격하던 롬멜은 됭게르크 근처에서 멈추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 명령은 히틀러가 직접 내렸는데 아직도 무슨 정신으로 진격을 멈췄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ref>가장 유력한 설은 새로 창설된 공군이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함으로써 공군의 위신을 세워주고 싶었다~ 는 것이다.</ref><ref>저명한 전쟁사학자 존 키건은 히틀러가 프랑스군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된 반격없이 이렇게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자 프랑스가 함정이나 반격을 계획중일거라 생각해 기갑부대가 개돌하다가 포위섬멸당할까 쫄아서 최전방 기갑부대와 후발 보병부대간의 간극을 메꾼후 진격하려 했을거라 평했다. 실제로 전방에서 싸워보니 프랑스가 개좆밥인걸 알았던 전선지휘관들은 기갑부대의 최대한 빠른 진격을 요구했고, 히틀러뿐만이 아니라 독일에 앉아있던 브라우히치나 할더도 진격정지를 주문했다 ㄴ 이거는 너무 큰 그림으로 봤다. 됭케르크 코앞에서의 강제 정지는 공군설이 유력함.</ref> 어쨌든 모두가 알다시피 진격을 멈춘 사이 33만 명이 넘는 영국군은 배를 타고 튀었으며 공군은 폭격으로 결과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만 입증했다. 영국군은 배를 타고 도망갔지만 땅이 붙어있는 프랑스군은 도망갈 수 없었다. 얼마 후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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