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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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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재== [디시위키 성격상 좆도 없는 놈일 지라도 누구든 깔 수 있기때문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진 말기를 바람.] 독일 국방군 출신자들의 책임전가 때문에 혼자 무능한 놈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인으로는 평타는 치는 수준이었음. 진짜 군재가 병신인건 좆칠임. === 긍정적 면모 === {{의외}} 1. 낫질작전 승인 할더새끼 계획대로 황색작전했으면 독일은 1머전식 참호전 수렁에 빠지고 그사이에 간보던 소련이 몰로토프 리벤트로프 깨고 쳐들어와서 아주 좃되는 거였는데 그나마 뚝심은 있는 이새끼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을 가져와서 살려냄. 이 결정은 결국 한때나마 유럽 본토 대부분을 정복하는 기반이 되었음. 2. 키예프 전투 히틀러는 장군들의 말을 무시하고 [[하인츠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를 키예프로 남하시켰다. 구머리는 이 결정이 패전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는데 현재 와서는 부정되는 추세임. 만약 구데리안의 주장대로 했다면 구데리안의 중부 집단군은 모스크바를 공격하기는 커녕 키예프에 배치된 70만의 소련군에게 측면을 강타당했을 것임. 원래라면 남부집단군이 얘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게 되면 중부집단군의 기갑부대를 남부로 돌리지도 않았지. 3. 바르바로사 작전 소련과 양면전선 했다고 삽질이라고 평가하는 놈들도 많지만 일단은 소련의 스탈린을 방심시키는 효과를 가져옴. 결국 바르바로사 크리로 소련 주력군은 모조리 윾머인과 손잡고 지옥감. 게다가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을 대비해서 42년쯤부터 스탈린선이라는 방어선을 만들 계획이었고 영국은 일단 정복하는 게 어려워졌으니 내렸던 결정이었는데 효과는 대단했음. 그리고 굳이 나치가 선빵을 안쳤어도 스탈린이 선빵을 갈겼을 가능성이 존나 높음. 빨갱이가 반공주의자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 4. 1942년 하계공세 장군들은 모스크바를 재공격하길 원했으나 히틀러는 캅카스 방면으로 진군하기를 원했다. 사실 소련군은 낙지놈들이 모스크바로 올 줄 알고 준비를 존나 해놨고, 병법에서 적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거는 하책 of 하책이므로 아마 이거는 이새끼가 맞았다. === 부정적 면모 === {{정알못}} {{똥별}} 한가지 염두에 둬야 하는건 이중 히틀러 독단으로 말아먹은건 별로 없다고 봐도 됨. 대부분 장성들의 여러 제안 중 하나를 골랐다가 망한거거나 다 같이 병신짓 한것들임. 1. 덩케르크 철수 덩케르크에서 다잡은 영국군 30만을 그냥 방생해줬다. 전선 지휘관인 룬트슈테드가 기갑부대의 진격이 너무 빨라 역포위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했고 실제로 직전에 연합군이 역습을 가해서 한방 먹은 상태라 이를 받아들인것. 2. 영국 본토 항공전 애초에 기체성능은 좋지만 항속거리도 짧고 공중포병 컨셉으로 키워서 랭카스터같이 폭격만 전문으로 하는 4발중폭격기가 극히 부족했으나 힛총은 이를 무시하고 영국 공습함. 그나마 처음에는 비행장 레이더 전투기공장 때리면서 이겨가나 싶었지만 런던대공습을 하면서 좆망했고 공군의 정예파일럿 상당수를 영국에 꼬라박음. 실제로는 런던 공습을 반대한게 소수였음. 런던 공습을 반대했던게 헤르만 괴링이랑 슈페를레 두명이었는데 작전이 계속 꼬이는데다가 베를린에 공습까지 받으면서 그동안 런던 공습을 막던 괴링도 결국 런던 공습을 받아들이고 공군참모총장 에쇼넥이 강력하게 지지했고 이전부터 런던 공습 하자던 케셀링은 기뻐서 날뛰었음. 결국 독일 공군 지휘부 자체의 문제. 3. 동계장비 보급안함 러시아의 겨울 앞에서 지보다 군재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모를 리가 없는 새끼가 [[소련]]을 단기전으로 끝내지 못한다는 게 확실한 시점에서도 의지드립 치면서 동복 배급 거부함. 실제로는 독일 국방군 장성들이 소련따위는 10주면 정복한다고 주장해서 준비를 제대로 안했던 것. 애초에 바르바로사 작전은 작전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었고 소련의 상태가 개병신이 된 상태라 그정도라도 가능했던것. 4. 점령지 슬라브인 탄압+소련 포로 학살 스탈린의 대숙청과 베리야로 대표되는 NKVD의 통제와 농업 집단화 속에서 소련인들은 고통받았고 특히 발트3국,우크라이나인들은 반발심이 존나 심했으므로 이를 반영해서 사회 분위기도 좀 풀어주고 점령지 협력자를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집단농장을 해체해서 농민에게 나눠주고 독일에 세금을 바치게 하는 식으로 했다면 후방도 안정시키고 보조인력도 모으고 후방에 투입될 비전투병력도 아끼고 겸사겸사 좋았겠지만 어림도 없지. 게다가 포로들을 잔혹하게 죽이면 소련 군인들이 '이대로 잡히면 어차피 죽을거 낙지탕탕이 하나라도 더 만들고 죽자!'를 시전하고 결사항전한다는 유대인도 알 법한 사실을 간과한 채로 슬라브인 말살빔을 때리고 결국 베를린 엔딩. 참고로 이 새끼랑 [[독재자]] 친구인 [[마오쩌둥]]은 [[국공내전]] 당시 정반대로 점령지 주민들을 존나 우대했고 결국 국민군을 [[타이완|저기 듣도 보도 못한 쬐끄만 섬]]으로 내몰아 버리는 데 성공했다. 5. 후퇴불허+군에 계속 간섭 군에 간섭 안하는 통수권자는 없음. 당장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 전부 작전에 간섭했었고 좆칠은 히틀러가 나폴레옹으로 보일 수준의 군재를 자랑하던 놈이었음. 후퇴불허는 대부분 포기할 수 없는 거점에 한정된 경우였고 장성들이 설득하면 받아들였음. 제일 많이 거론하는게 스탈린그라드의 6군인데 만약 거기서 6군 바로 뺐으면 더 깊숙히 들어가있던 A 집단군이 포위되서 좆되는 결말밖에 없음. 야전군 하나를 잃고 집단군 하나 살린거라 병신짓이 아님. 6. 대미 개전 콧수염새낀 WW1때 미군의 참전으로 인해 2백만이 몰려와서 [[백일 전투]]를 치른 후 카이저 좆된 걸 실시간으로 봤음에도 대미 선전포고를 함. 근데 어차피 이전부터 미국과 비공식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해군에서는 그냥 정식으로 선전포고 하자고 하고 있었음. 특히 되니츠. 그리고 다른 장성들도 대미 선전포고에 의미를 몰랐음. 7. 청색 작전 원래는 돈 강까지만 공세하려 했는데 힛총새끼가 캅카스에 눈독들이며 결국 캅카스까지 내려가야 했다. 물론 독일군의 보급능력은 절대로 바쿠까지 보급을 해줄 능력이 안 됐고 캅카스를 반도 못 밀고 천왕성크리. 애초에 캅카스로 쭉 안내려가고 그 병력으로 스탈린그라드 밀었으면 스탈린그라드 진작에 점령했고 천왕성도 안당했음. 스탈린그라드가 이름 때문에 존나 집착한 줄 아는 니가급 지능들이 있는데,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 수운이 지나는 곳이자 철도 교차점+핵심 공업도시였다. 차라리 캅카스 가지말고 여기만 확실히 점령했어도 소련놈들 석유수급이 정체됐었을 것임. 게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북쪽으로 쭉 가면 [[페름]](니들이 흔히 아는 [[페름기]]가 여기 이름을 따서 지었다.)이라는 비밀도시가 있는데 거긴 [[탱크]]공장이 있다. 스탈린그라드를 확실하게 점령하면 페름에서 만든 탱크를 가동하기 힘들어지고 그 때를 노려서 페름을 치면 소련군의 전차는 씨가 말라버린다. 즉, 소련 육군은 [[망했어요|이시다 미츠나리급 무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정도의 거대한 땡을 안잡으려는 히선생은 참... 8. 당내 역학관계 조절 못함 힘러의 SS기갑사단, 괴링의 공군 야전사단처럼 육군도 아닌 새끼들이 자꾸 장비를 가져다가 사단을 만들어댔고 그중 SS기갑사단은 전투력이라도 높았지 공군야전사단은 성소수자처럼 좃도 쓸모없었다. 게다가 이런 놈들 관리를 위한 별도의 행정,보급 체계가 필요했고 이는 독일의 생산성을 수직하락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나치당 내에는 각종 부정부패가 판을 쳤는데 이걸 잡아내지 않는 바람에 독일의 생산성은 계속 바닥을 찍었다. 애초에 독일-소련 GDP는 비슷했다. 다만 소련 GDP는 군수산업에 몰빵돼 있었고 독일은 앞서 말한 문제점 땨문에 제대로 생산을 할 수 없었다. 9. 쿠르스크 전투 늦춤 이새끼가 쿠르스크를 바로 까자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만본좌]]의 말도, 쿠르스크를 자르지 말고 소련군의 선공을 막아내고 이후에 다시 생각해 보자던 [[귄터 폰 클루게|클루게]]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지랄맞는 라스푸티차로 인하여 공세를 펼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임. 그리고 기동방어도 소련이 똑같튼 수법에 똑같이 당해줄 것이라는 전제가 아니면 못쓸 방법이었고 쿠르스크 돌출부 제거+소련 예비대 정리는 필수적인 상황이었음. 그거 말고 이렇다 할 대안도 없었고. ㄴ 쿠르스크 작전 늦춘 히틀러 판단이 더 맞지 만슈타인이 작전안에 개전했으면 전투는 커녕 소오련군한테 개같이 쳐맞았음 저 때 독일 기갑장비랑 공중장비 +보급도 제때 준비도 안됬고 거기다 라스푸티차 시즌이라서 공세도 안된는데 10. 신무기 도입 방해 이새끼는 신무기를 그렇게 좋아해서 존나 비효율적인 구스타프 열차포나 칼 자주박격포나 아예 만들지도 못한 마우스,라테,질버포겔 같은 건 존나 좋아했으면서 실제로 만들 수 있었던 신무기,게다가 존나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Me262]]나 [[Stg44]]같은 건 또 왜 도입방해하고 지랄이였을까. 그야 앞의건 제트엔진 자체가 미완성 기술이었고 뒤에놈은 탄약부터 싹 갈아야 하는데 전쟁통에 당장 전선에서 아무거나 주워써야하는 판에 탄약까지 싹 가는게 가능할 리가 없거든. 그 천조국도 가능한 기존 탄 호환되게 하려고 했었음. 12. 서부전선 삽질 사실 이쯤 오면 더이상 버틸 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아니 애초에 영국과 소련 조기점령에 실패한 시점에서 사방에서 두들겨맞고 좆망하는 결말만 남기는 했음. 어쨌든 노르망디가 뚫렸으면 이제 후퇴하고 기갑전력이든 보병이든 아껴서 [[루마니아]]로 보내 석유 수급만큼은 지켰어야 했는데 이새끼는 또 삽질을 단행, 연합군을 모조리 바다로 처넣어버리겠답시고 기갑부대를 끌고 와 모르탱 반격이라 불리는 작전을 개시한다. 물론 결과는 연합군의 공군에게 싸그리 박살난 기갑부대와 팔레즈에서 포위당한 독일군 주력, 그리고 [[귄터 폰 클루게]]랑 [[에르빈 롬멜]]을 잃고 만다. 13. [[아르덴 공세]] 그러나 이새끼는 [[마켓가든 작전]]에서 씹고메리새끼가 킹갓모델장군니뮤께 참교육을 당한 모습을 보고 또 행복회로 굴려서 아르덴 삼림을 기갑부대로 돌파, 그대로 안트베르펜까지 달려서 연합군을 포위해 박살내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망상을 돌린다. 물론 현실은 루마니아까지 잃는 바람에 기름수급이 안돼서 [[무타구치 렌야|광복군 스파이]]식으로 적의 보급을 취한다는 작전을 세웠으니 당연히 좆망. 게다가 작전개시 당시에는 날씨가 흐려서 공군이 못 떴으나 날씨가 개면서 연합군 비행기들이 하늘을 장악,대규모로 CAS를 실시하는 바람에 망했다. 물론 독일군도 이것을 알고 기습공격으로 연합군 공군을 털어버린다는 보텐플라테 공세를 실시했으나 연합군이 그동안 제공권을 노무 빡시게 잡아서 독일 육군은 하늘에 뜬 비행기는 우리 비행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대규모의 아군오사를 했고 루프트바페는 확실히 몰락한다. 14. 봄의 새싹 작전 어차피 이쯤 가면 언제 망하냐 문제긴 했지만 이새끼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않고 헝가리의 유전지대를 되찾자!는 내용으로 무려 소련군에 공세를 했고 그 결과 베를린 공방전에 투입할 수 있었던 상당수 병력들이 좆된다. 발라톤 호수 공세로 불리는 이 삽질은 결국 [[베를린 공방전]]으로 이어지며 낙지는 멸망한다. 참고로 봄의 새싹 작전때 투입되었던 전차부대는 모든 전력을 긁어모았는지 제법 정예였는데 티거1,2와 야크트판터, 판터만 무려 500대가 넘게 투입되었다. 물론 폭싹 망해버려 엄청난 손실을 입고 그나마 남아있던 정예 전차부대마저 싸그리 날려먹은데다 봄의 새싹작전때 투입되었던 이 남아있던 제대로된 정예부대들 중에는 후퇴 타이밍을 놓쳐 베를린으로 못가고 서쪽으로 패주를 거듭해서 베를린 공방전에 투입되지도 못한다. 결국 베를린 공방전 당시때 고급 전차는 거의 없었고 장갑차나 돌격포 같은거로 처량하게 싸웠다. 그나마 이 병력들을 온전히 베를린 방어전에 투입했다면 그래도 마지막까지 독일군답게 소련에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안길 수 있었을 것이다. 15.그 외 기타 등등 세계최강 좆문가 총통각하께서 사소한것 하나하나 다 지시했다.아마 그냥 연설이나 하며 짜져있었으면 낙지가 이겼을지도 모른다.히틀러가 병신이라서 독일이 졌을 확률이 높다.하일 히틀러! 라는건 독일 국방군 출신자들의 망상이고 실제로는 독일군 자체의 문제가 제일 큼. {{인용문2|''나치 시대의 군부와 정부에는 현실적인 전략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목적과 수단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이 부족했다. 독일군 최고사령부에 대한 신화는 히틀러에게 전략적 통찰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만, 그 부분에서 히틀러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전후 장성들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히틀러에게 돌리려고 했던 것은 확실한 오류를 드러낸다. 잘 봐주면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냉소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제프리 메가기]].히틀러 최고 사령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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