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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의 관계 ===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유입됐다. 한국 학계는 이걸 토대로 발해의 정통성을 고려가 뒤이었고 발해는 한국사라고 주장한다. 그 외에도 발해인은 자기가 살던 땅에 그대로 남아 여진에 흡수되거나 거란에서 활동했다. ====조선의 발해 인식==== {{인용|발해는 우리 역사에 기록할 수 없는 것이나, 본디 고구려의 옛땅으로 우리의 국경과 상접하여 의리가 순치지세(唇齒之勢)이므로, 《통감》에서 갖춰 썼기 때문에 이제 그대로 좇았다. 渤海不當錄于我史而本爲高句麗接義關唇齒故通鑑書之今從之。 -『동사강목』「범례」통계}} {{인용|서북쪽 연변 지대는 부여(扶餘), 예맥(濊貊), 발해(渤海), 거란(契丹), 말갈(靺鞨), 여진(女眞), 몽고(蒙古), 합단(哈丹) 야인(野人)들이 대대로 변경의 우환 거리를 만들면서 우리의 강토를 침략하지 않은 시대가 없었습니다. 西、北兩沿, 自扶餘、濊貊、渤海、契丹、靺羯、女眞、蒙古、哈丹野人以來, 世爲邊患, 侵軼疆土, 無代無之矣。 - 『고종실록』 43권, 40년 7월 22일(양력) 1번째 기사}} 하지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53047&cid=58224&categoryId=58224 유득공의 발해고]는 발해가 한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발해의 한국사 인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장 위 내용만 봐도 부여, 예맥은 확실히 한민족의 조상인데도 변경의 우환 거리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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