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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의 역습 === 8월 20일, 인민군이 [[1사단]]과 미군의 필사적인 저항때문에 다부동 전선의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인민군 15사단을 [[의성군|의성]]쪽으로 이동시켰고 여기서 국군 [[8사단]]을 공격하여 [[영천시|영천]]쪽으로 돌파 시도를 하였다. 이로써 인민군은 3사단 일부가 수암산 일대에, 13사단이 유학산 우측면을 담당하게 되어 공격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사단]]에게 이는 기회였다. 다음날인 8월 21일 새벽에는 [[한국전쟁]] 최초의 전차전이 다부동 계곡에서 벌어졌다. 이날 인민군의 [[T-34]]와 미군의 [[M26 퍼싱]]이 다부동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포탄을 주고받는 모습이 마치 볼링경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하여 이 전투를 볼링장(Bowling Alley) 전투라고 불렀다. 게다가 이날 오전에는 인민군 13사단의 정봉욱 중좌가 11연대 지역의 작전지도를 갖고 국군으로 귀순하여 적의 사기가 꺾였고 이 지도에 따라 인민군의 포진지를 유엔군 전폭기들이 융단폭격하여 적의 화력을 무력화시켰다. 이 폭격으로 인민군의 화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으며 마침내 8월 28일 국군은 다시 수암산을 탈환하였고 끝내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이처럼 [[1사단]]은 인민군의 8월 대공세를 끝끝내 막아내며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광역시|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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