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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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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 {{인간도살자}}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을 거하게 터뜨렸다. 그간 제정 러시아 내에서 좌익 지식인들이 세를 불리고 노사 갈등이 존나게 터져도 그래도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차르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차르야말로 찬란한 태양빛이나 다름없고 지금 백성들 처지가 힘들어진건 단지 간신배같은 구름이 황제 폐하의 은혜를 가린 것일 뿐이라는, 참으로 순진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 때 처신을 잘 했으면 러시아 혁명때의 비참한 최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날려버린 좆병신이 니콜라이 2세였다. === 사건의 발단 === 1905년 1월 22일<ref>제정 시절 러시아는 지금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아닌 율리우스 달력을 써서 그 당시로 치면 1월 9일이다.</ref> 게오르기 가폰이라는 신부가 노동자를 불러다 놓고 황궁으로 향했다. 브치로프의 공장에서 노동자 3명이 부당하게 해고되어서 노동자들이 들끓고 있을 때 황제에게 바칠 탄원서를 내려고 간 것이다. 이 가폰이라는 신부는 사실 정부의 스파이였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노동자들이 과격한 노조에 가입하는 걸 존나게 막으려고 별의별 수를 썼는데 그 중 하나가 어용노조였다. 분노한 민심을 조금이라도 덜 위협적인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이유였고 가폰 신부의 임무였다. 가폰 스스로도 과격한 혁명보다는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노동자의 진정한 이익과 당국의 선한 의지를 조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비밀경찰의 첩자를 자청한 것이다. 결국 신부라는 직위와 고결한 이상을 내세워서 노동세력의 민심을 수습하고 우두머리 격인 존재로 올라설 수 있었다. 시위대의 수는 존나게 불어서 무려 5,6만명 가량 되었다.(그 신부는 30만 드립쳤다고)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는 200만 가량의 대도시인걸 감안하면 엄청 많은 거다. 탄원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인용문|폐하! 저희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와 주민, 처자식과 늙은 부모들은 정의와 보호를 구하기 위해 당신께 갑니다. 저희는 가난 속에 억눌리고 힘든 노동 속에 모욕 당하면서도 비참한 운명을 묵묵히 참아내며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희의 인내는 고갈됐습니다. 고통을 견뎌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저희는 일을 멈추고 고용주에게 최소한의 생존권만이라도 보장해달라고 간절히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요구는 거절됐습니다.}} 게다가 이때 정부당국은 공업화의 자본을 얻기 위해 과격한 수출장려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러시아 국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물가가 폭등하였다.(인플레이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수출 정책은 기근 중에도 계속되어서 민중의 고통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농민은 인플레와 기근에 시달리고 노동자도 인플레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아주 엿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 발포 === 그러나 그 시각 황제는 황궁이 아닌 인근 별궁에 머물고 있었고 돌아온 것은... [[파일:황궁에서의 발포.jpg]] [[파일:피의 일요일.jpg]] 황궁 앞에서 군인들이 시위대에 발포하고 시위대 뒤편에선 대포(!)도 발사되었다. 아비규환 속에서 [[코사크]] 기병대가 우왕좌왕한 시위대에게 칼부림하고 그랬다. 그날은 일요일, 성당에 예배하러 갈 거룩한 일요일이 피의 일요일이 되고 말았다. 황제는 뭘 했냐고? 탄원서는 씹었고 시위대 온다 어떡하지 하고 묻자 걍 쏴버리죠 하는 신하의 대답에 그러라고 별 생각없이 말한 거다. 심지어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인용문|'''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다행히 충직스러운 군인들이 이들을 물리쳤다. 하느님이시여, 이들을 보우하소서.'''}} 지금까지 황제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나고 모스크바, 바르샤바(당시 러시아 제국령) 등 주요 도시에서 노동자들이 총들고 군인과 대치하고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 정박한 전함 포템킨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거대한 나라가 한순간에 개판되었다. 그 희대의 뻘짓이 결국 자신과 가족과 황실과 제국의 목을 죄게 될 것임을 멍청한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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