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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운동]]의 발발 ===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사회주의가 조선에도 확산되고 독립운동가들도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로 조금씩 나뉘기 시작했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고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었고,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이듬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자 조선 내에서도 스스로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당시 조선 내에서는 [[스페인 독감]]이 심각하게 유행하고 있었으며 무능한 총독을 가진 총독부는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 독감은 조선을 크게 흔들었으며 독립 여론은 더욱 고취되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독감이 종식되어가던 1919년 1월 21일, 우리나라를 말아드셨던 [[고종(조선)|고재앙]]이 마침내 사망했다. 당시 고종 독살설이 조선 전역에 퍼지고 있었고, 조선 백성들은 일제에 대해 분노해 먼저 일본 도쿄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3.1 운동]]이 일어났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이런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없었단 총독부는 단순무식하게 강경진압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상황은 점차 격화되었고 결국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일본 내에서까지 큰 질타를 받으며 총독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타로 [[사이토 마코토]]가 총독으로 부임했으며 총독부는 기존의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와 민족 분열으로 노선을 바꾼다. 한편 3.1 운동을 계기로 대한 국민 의회, 상하이 임시정부, 한성 임시정부 등이 생겼는데 이들은 1919년 9월 상하이에 집결해 통합 임시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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