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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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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이때 희생된 인원이 최소 3만여 명이고 최대 8만여 명, 미국에서 조사하기로는 6만여 명인데 당시 제주도의 전체 인구가 30만 명이었다. 대량 살상용 화학 무기도 없고, 전염병도 없었으며, 흉년이나 기근이 들지도 않은 채로 인구의 10~25%가 증발한 것이다. 참혹하기 그지없다. 오로지 인간의 주먹, 인간이 휘두른 칼, 인간이 발포한 탄환에 의해서 인구의 10~25%가 희생된 거다. 말 그대로 6.25전쟁의 축소 버전이다. 희생자들 명단에는 2 ~ 5살짜리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극우들은 이런 애기들도 빨갱이라고 얘기한다. 개소리. 이 참혹한 사건은 당시의 지역사회의 이웃 문화, 그리고 섬의 특징을 고려해보면 더욱 가슴이 아픈데, 이 사람들은 내 할아버지를 내 친구의 아버지가 죽이고 내 아버지가 친구의 어머니를 죽이는 그런 광경을 목격한 거다. 시간이 지나서 체제 경쟁이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로 사실상 끝났지만 이 사건은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더 가해자고, 누가 더 피해자고, 손익을 계산하는 그런 논리로 풀 수 있는 형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이 사건을 명명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말에는 상황을 정의하는 힘이 있다. 4.3 사건, 4.3 항쟁, 4.3 반란, 4.3 사태. 전부 어감이 다르다. 지금 이 사건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가슴 아프기 때문에 4.3 사건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건에 대한 평가를 후대로 보류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주 방언이 이때부터 빨갱이말이란 이유로 빠르게 쇠퇴하였다. 학교선생님들 경험담으로는 학창시절 사투리 쓰면 맞았다더라.. 오늘날에는 제주어 말하기 대회 등등해서 제주 방언을 보존하려고 노력중이다. 제주 도민들을 혹시 만날 일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주워들은 지식으로 4.3 반란이나 사태라고 쉽게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농담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척을 질 수도 있다.''' 90년대생 이후의 젊은 세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 젊은 세대도 4.3 사건에 대해 모를 리가 없고 가족들(증조 할머니, 할머니 등)이나 친척들이 4.3 사건 때 희생된 경우가 대다수라서 여전히 민감한 사항이다. 함부로 선동 자료에 낚이지 말자. 〈순이 삼촌〉이나 《지슬》을 보면 제주도민에게 주워들은 지식으로 나불댈 일은 없을 것이다. ㄴㄹㅇ 진짜 하지마라. 이건 00년생 이후 세대한테도 하면 욕 오지게 먹음. ㄴ99년생이고, 13년정도 제주에서 산 학식이다. 초중고에서 각각 한번씩 현장학습으로 평화공원 갔었는데, 갈 때마다 평화공원에서 대성통곡하는 친구들 많이 있었다. 사건과 무관해 보이는 이 사람들도, 제주도 토박이라면 아직도 마음 아파하고 역린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제주 4.3 사건의 참상은 인간이 어떤 이념이나 사상에 눈이 돌아가버리면 얼마나 끔찍한일을 일으키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잘못된 이념싸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았는지 반드시 역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이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갈래로 갈라져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증오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제주 4.3 사건의 그림자를 보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각주}} [[분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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