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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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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적 == 비판과 반박만 있고 한 일에 대해선 전혀 언급 없는 정조는 그냥 그저 그런 임금, 해석에 따라 노답 개새끼로 끝나버려 추가한 문단이다. 정조 시대가 왜 대중적으로 정조 전-후 임금보다 좋게 평가받고 조선 르네상스라고 여겨지는 이유를 설명해보자. '''일단 서얼을 타파했다.''' -> 사실 먼저 시작한 건 영조지만 정조가 본격적으로 타파하기 시작했다 볼 수 있다. 서얼이 뭐나면 홍길동전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운운하는 거처럼 조선은 조강지처 마누라 외에 첩한테 낳은 자식 즉 어머니 신분이 평민이면 서자/서녀, 천민이면 얼자/얼녀로 부르고 존나게 차별했다. 그전까지 서얼금고법이란 법으로 서자들은 문과 응시에 제한이 있었다. 아무리 높게 올라가도 이른바 한품서용 이라는 좆같은 제도로 인해 고위직 승진이 막혀있었다. 이런 차별을 받던 서자의 자식들을 아무 걱정없이 과거시험을 치룰수 있게 해줬고, 그렇게 과거에 나온이들이 성균관에서도 서자 출신이라고 차별받으니 손수 나서서 차별하면 뒤진다고 손을 썼다. 물론 서얼금고법은 갑오개혁 정도나 되야 사라졌지만, 물꼬를 터준건 정조다. 원래 서얼들은 청요직이라 불리는 3사 언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정조는 서얼을 언관직에 준하는 관직인 규장각 검서관으로 중용하였는데 이들 중 특히 잘 알려진 인물로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가 있다. 이들은 정조의 업무를 도우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부정부패 관리에게 죽창을!!''' ->정조 할애비 연잉군 영조가 늙어갈때 조선 관리들의 기강은 그야말로 개판이어서 지방 수령들이 환곡을 강제로 떠맡겨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내시 새끼들이 사적으로 뒷돈받아 부정을 저지르는 지금의 헬조센과 같은 뇌물이 진리인 세상이었다. 정조는 거기서 암행어사를 존나 철저하게 굴려서 누가 어떤 부정을 저지르고, 누가 어떤 짓을 했는지 샅샅이 보고받아 죄 지은 놈은 싹 다 처벌했다. 흔히 학자로 유명한 정약용도 정조한테 암행어사 임무받고 수색해서 수원 유수 서용보가 일도 잘했지만 살짝 뒷돈좀 받고 향교땅좀 슬쩍했다고 바로 꼰질러서 서용보는 실각되었다.<ref>고로 빡친 서용보가 [[정약용]]을 탄핵해 버렸다.</ref> '''관리들이 사치부리는것도 안넘어감''' -> 고위 관리들의 마누라가 비싼 가체 쓰는 것도 안 넘어갔다. 사극에 나오는 왕실 여자들의 존나 리젠트머리같은 커다란 가발도 유행했는데, 그게 존나 비쌈.-> 정조가 그딴 거 하지 말라고 왕명으로 내리고 관리들이 사치부리는것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서 존나게 갈굼. '''전염병 사태 방역''' ->정조 임기 10년때 전국적으로 홍역이 퍼져서 지 아들내미 문효세자도 죽었는데, 정조는 거기서 구휼하고 발병률을 계속 보고받으면서 전염병 퇴치에 힘씀. 메르스나 사스나 신종플루,코로나 터질때 대책이랍시고 낙타 가까이 하지마라, 밖에 나가지 마라 하는 직금의 대통령새끼들은 아가리 각도 좁혀야 한다. '''숭문중무''' -> 숭문은 말할 것도 없고 중무만 설명하겠다. 당시 무신 백동수를 시켜 무술 시범을 보이고, 사검서관을 통해서 이를 기록해 무예 관련 책을 펴내는데, 이게 무예도보통지다. 이건 중국 무예 정립책보다 더 앞선 책이라 상징적이다. 여담이긴 한데 '무예도보통지'는 무예도 보통지가 아니라 '무예'(무술) '도보'(그림과 해설) '통지'(종합서적)다. 나중에 친구한테 아는척하다가 재수없다고 귀싸대기 맞도록 하자 '''책덕후''' -> 책덕후라 어떻게 들었는지 청에서 <사고전서> 만든다는 소식 듣자마자 그거 사려고 총알 장전하고 사신 보냈는데 빠꾸먹고 만들고 있던 도서 목록을 얻어오는 데 성공했다. 청에 사신이 갈 때마다 신하들에게 책 좀 사오라고 할 정도로 책 수집에 열심이었다. 정조가 책 수집하고 덕후새끼들마냥 봉인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활자나 목판으로 찍어내서 전국에 뿌렸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활자기술은 유럽과 달리 대량생산엔 적합하지 않아 책을 많이 생산하진 못했지만 지식보급에 신경쓰려는 모습은 보였다. 물론 그 지식보급이 양반에게만 한정되었다는 게 문제이다. '''상업장려''' -> 금난전권을 없애버림으로써 노론 씹선비새끼들과 유착하여 상품조달, 판매 독점권을 누리고 횡포를 부리던 시전 상인에게 빅엿을 선사하였다. 당시 한성에는 국가 공식 중앙 상인인 육의전<ref>육의전은 시전에서 가장 인기있던 6가지 상품을 뜻한다.</ref> 외에 시전이 난립하여 여타 난전들의 상행위를 억압하였는데, 정조는 이를 보고 육의전 외 시전에 대해 독점 판매권을 없애버렸다. 이를 '신해통공' 이라 한다. 덕택에 숭례문 밖 난전상인이나 흥인지문 밖 난전 상인들은 나름 시전 눈치 안보고 장사할 수 있게되었다. 또한 공장<ref>당시 상민 수공업자들을 공장이라 불렀다.</ref> 안을 폐지하여 전국의 공장들이 꼴리는만큼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게 하였다. 독점 민간상인 몇명의 횡포가 줄어들면 양반 백성 안가리고 전 국민과 국가적인 편익이 증가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야 될 일을 경제학 개념도 없던 시대에 왕이 직접 캐리해서 했다. '''공노비 해방시도''' -> 공노비를 해방시키기 위해 공노비안을 없애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기 전에 사망하였다. 공노비 해방은 그 아들 순조가 하게된다. '''초계문신제 실시''' -> 노론 씹선비들이 지들이 왕에게 하고싶은 말만 하고 지들 가르치고 싶은 학문만 경론하는게 싫었던지, 기존의 성리학 교재인 4서에서 탈피하여 6경을 직접 공부해 이를 신진 관료들에게 직접 가르쳤다. 좀 독특한 왕인건 맞는듯하다. '''장용영 설치''' -> 조선의 수도방위군이었던 훈련도감이니, 어영청이니, 금위영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노론 씹선비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에 정조는 자신만의 친위부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만든게 장용영이다. '''격쟁''' -> 정조는 자기가 정약용 시켜서 만든 계획도시인 수원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수원에 행차를 나갔는데 그때마다 백성들이 자기 앞에 나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허락했다. 들어보니 억울할만 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 그자리에서 신하들을 족쳐서 해결방법을 내오라고 닦달을 했다. '''문학 성취''' -> 위에 나왔듯이 지랄같은 성격에 자기들한테 꽤 안좋은 정책을 펼쳤는데 원래같으면 들고일어날만한 놈들이 성리학적으로 씹압살을 해버리니 개기지도 못했다. 조선 왕으로는 유일하게 '홍재전서' 라는 문집도 냈다. 그 이외에 여러가지 고서에 주석도 달고 경연도 자기가 신하들한테 배울게 없어서 때려쳤다. 또 경연을 때려친 인물로는 연산군이 있는데 이유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수원화성 건설''' -> 오늘날 정조가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를 가지는데 사실상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는 업적이다. 격쟁 문서에도 언급이 되어있듯 정조는 수원을 신도시로 만들기 위해 수원화성을 건설했다. 이 화성이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고 수원의 대표 랜드마크가 됐다. 정리하자면 비판과 마찬가지로 정조가 근대화니 뭐니 그런짓거리 한건 그냥 그때 근대화 주장했던 학자들 중용한거 빼곤 없지만, 적어도 나쁜짓 하는 새끼들은 철저하게 족쳤고, 위기가 생기면 그걸 처리하려고 항상 노오오력을 한 군주는 맞다.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능력의 출중함도 부정할 수 없음. 이후 임금들이나 영조 포함 이전의 임금들과 비교해봐도 단순하게 몇가지만 열거해 봐도 확실히 왕으로서 능력 있고 업적 있고 국가와 백성 생각하고 발전시킨 왕 맞다. 단지 이 정도로 부패 척결 캐리 했다고 백성들에게 [[세종]](+[[문종]]) [[성종]] 이후 등장하신 '세종대왕이 재림하신 성군' 운운하며 칭송받았던 것은, [[능양군]] 이후의 말아먹은 조선 후반기가 얼마나 이전만 못한 개병신 상태였는지는 안봐도 4K UHD 파노라마로 재생되는 기분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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