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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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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원정 === 북아프리카를 수복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이탈리아 반도 재정복을 준비하였는데, 때마침 동고트 왕국의 아말라순타라는 친로마파 여왕이 군림하고있었고, 자신의 아들을 로마인처럼 키우는 등(프로코피우스나 당대 야사에셔는 유스티니아누스와 아말라순타가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그렇다는 말이 있다.) 굳이 친하게 지내자는 나라 쳐들어갈 명분도 없고, 필요도 없어서 이탈리아 방면은 잠시 접어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않아서 아말라순타 여왕과 여왕의 아들이 반로마파인 조카에게 살해당한다. 그러자 유스티니아누스는 땡잡았다하는 기분으로 재정복을 다시 추진한다. 이번에도 원정군의 사령관은 벨리사리우스였지만, 유스티니아누스는 벨리사리우스에게 모종의 위협감을 느꼈는지 북아프리카 재정복 당시 동원된 1만 6천의 절반도 안되는 7천 5백의 군대로 이탈리아를 재정복하라고 명령한다. 사실상 벨리사리우스에게 죽으러가라는 수준이였는데 놀랍게도 벨리사리우스는 이탈리아 남부 장악에 성공하고 전초기지를 세운다. 그러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즉각 증원군을 보내 동고트 왕국의 북동쪽을 치고 동시에 갈리아(현 프랑스 권역)의 프랑크 왕국에 돈을 먹여 동고트 왕국의 북서쪽을 치게한다. 그러자 동고트는 사신을 보내 '아이고 황제폐하 자비점..' 하는 등 사실상 항복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나... 동고트군이 기적적으로 증원군 분쇄하고 프랑크족을 몰아냈으며, 더욱이 정복한 북아프리카 방면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탈리아 전선이 고착화되어버렸고 북아프리카는 다시 야만인들의 손에 들어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당시 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원정은 취소되는 분취기였으나.. 자신감이 급충전된 동고트 국왕이 로마의 사절을 잡아쳐넣는 등 도발을 감행하자 이에 분노한 유스티니아누스는 '다 좆까고 이탈리아 먼저 족친다'는 결정을 내리게한다. 이에 벨리사리우스는 명을 받들어 북진을 감행하고 로마 바로 밑에 위치한 네아폴리스 시를 함락시킨다. 네아폴리스를 함락시킨 벨리사리우스가 로마 함락을 위한 행군을 준비하던 도중 동고트 왕국 내에서는 현임 왕의(아말라순타를 죽인 조카) 무능으로인해 이런 일이 벌어진것이라며 귀족들이 모의해 부르군트 왕국의 왕 비티게스를 왕으로 옹립한다. 그러던 말던 벨리사리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행군했고 때마침 로마 주교(훗날 교황)의 지지로 손쉽게 로마를 손에 넣는데에 성공한다. 직후 비티게스와 그의 군대는 벨리사리우스를 몰아내기위해 남쪽으로 행군을 개시했고 벨리사리우스는 압도적인 적에 맞서는 것보다는 로마시를 방어거점으로 삼고 버티기를 선택했고 또다시 벌어진 치열한 전투끝에 간신히 로마를 사수해냈고, 이후 연달아 벌어진 수차례의 전투 끝에 끝끝내 비티게스의 군세를 역으로 박살내면서 로마의 사수를 성공해낸다. 그리고 때마침 유스티니아누스가 보낸 2차 증원군이이 도착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2차 증원군은 기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정예군이였는데 각각 2부대로 나뉘어져 하나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최측근 환관 나르세스의 부대였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장군으로 승진한 젊은 요한이라는 장군이였다. 벨리사리우스는 나르세스의 부대는 그대로 본대에 합류하고 요한이 이끄는 기병대는 북쪽을 향해 남은 동고트군을 가능한한 무자비하게 박살낼것을 명했다(그리고 후미를 잡혀 포위 당할것을 우려해 결코 적을 뒤에 남겨둔채 전진치 말라는 경고도 했다.) 요한의 기병대는 쾌속 전진을 감행하며 악시무스라는 잘 요새화된 도시에 당도하는데 악시무스의 방비가 철저했고, 요한이 이끄는 기병대는 공성전에 불리하기에 벨리사리우스의 조언겸 명령을 어기고 악시무스 무시한채 진격한다. 또 한참 가다가 우르비누스라는 요새도 마찬가지로 무시하고 진군한다. 그렇게 진군한 요한의 군대는 아리미니움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는데 아리미니움은 이미 그곳에 살던 로마 시민들의 반란으로 동고트군이 떠난지 꽤 된 도시라서 요한의 군대는 환대 받으며 도시로 입성하였다. 또한 아리미니움은 동고트 왕국의 수도인 라벤나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어 이곳을 점거시 라벤나 공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요한이 무시하고 지나온 두 도시의 존재로인해 사실상 고립된 아리미니움은 전략, 전술적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라 요한의 아리미니움 점령 소식을 들은 벨리사리우스는 즉각 철퇴할것을 명한다. 그러나 요한은 벨리사리우스의 명을 어기고 독자적으로 아리미니움을 사수하려하였다, 그러나 벨리사리우스의 생각대로 얼마 안 가 아리미니움은 동고트군에의해 포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벨리사리우스는 요한의 부대를 구원키위해 전군을 꼬라박는 위험을 감수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부대를 이끌고 천천히 도시들을 하나 하나 공략하면서 북상한다는 작전을 수립하고 이에 대부분의 장군들의 동의를 받는다. 그러나 이 작전에 나르세스는 즉각적이고 격렬하게 반대한다(나르세스와 요한이 개인적,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것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르세스는 대략 '우리가 수가 많나? 아니지 그리고 요한이 이끄는 부대는 정예 기병 부대인데 이걸 안 구한다고? 님 대갈빡 수준이?' 라면서 벨리사리우스의 작전을 맹비난했고 이 직후 요한 부대의 전령이 아리미니움의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에대해 말하면서 나르세스의 '요한 부대를 구원해아한다!'라는 안에 무게가 실린다. 결국 벨리사리우스는 나르세스의 안을 받아들여 요한 부대를 구원키위해 병력을 북상시킨다. 먼저 벨리사리우스는 군을 세개로 나뉘어 하나는 해로로 하나는 해안가로 나머지는 산을 타 아리미니움으로 향하하게한다. 해안가로 향한 부대는 조용히 이동하며 적의 도시가 보이면 밤에 도시 근처에 대규모로 불을 질러 대규모의 군대가 도시를 포위한것처럼 적들을 속였고, 그러던 사이 나머지 두 부대는 아리미니움을 향해 맹렬히 진군하고 있었다. 먼저 해로를 향해 오던 부대가 아리미니움에 나타나자 남쪽의 대군에대한 소문을 들은 동고트군은 예상치 못한 로마군의 함대가 보이자마자 바로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때 요한군이 추격을 해 동고트군을 분쇄하는대에 성공했다면 이탈리아 정복은 매우 수월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요한군은 오랜 포위로인해 굶어죽기 직전의 상황에 몰려 적을 추격할 여력이 없었고 로마군은 매우 크나큰 기회를 놓치게 된다. 어찌되엇건 본대와 요한의 부대는 합류하게 되었고 이제 차근차근 이탈리아를 정복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였지만 여기서 또 일이 꼬이고 만다. 구출된 요한이 벨리사리우스보다 먼저 자신을 구원하자는 안을 낸 나르세스에게 먼저 감사를 표하자 본인에게 먼저 감사를 표함이 맞다고 생각하던 벨리사리우스는 이에 분노한다. 이후 둘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싸웠는데 이는 곧 군내의 분열로 이어진다. 기존에 벨리사리우스와 함께 싸우던 군인들은 대개 벨리사리우스를 지지했으나, 증원군과 그 외의 병력은 '결국 나르세스가 없었으면 이 승리고 뭐고 없는거였잖아?' 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나르세스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는 역할을 맡았기에 군대는 사실상 반쪽으로 나뉘어져 버린다. 이 분열은 조금씩 조금씩 싸여오다가 메디올라눔 구원전에서 표출된다. 메디올라눔은 이탈리아 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중 하나로 로마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동고트군에의해 포위를 당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벨리사리우스는 즉각 군대를 북상해 메디올라눔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르세스는 너무 위험하다며 우르비누스를 먼저 함락해 우르비누스 -> 아리미니움 -> 메디올라눔 이렇게 안전하게 진로를 뚫어놓고 가야한다고 주장하였고 그리하지 않는다면 나르세스와 그의 부대는 따로 행동하겠다는 엄포를 내건다. 또다시 자신의 안이 나르세스에의해 반대 당하자, 분노한 벨리사리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가 그에게 내려준 명령장을 들먹이며 오직 자신만이 군대를 어디로 움직이고 어디서 싸울지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나르세스는 그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학에 능했던 나르세스는 명령장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로마에 이익이 될 때에 한해서' 라는 구절을 들먹이며 메디올라눔 구원전은 로마에 이득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고 당황한 벨리사리우스는 말로 해봐야 답이 안나온다는걸 알고 나르세스의 안대로 하기로 한다. 그렇게 군대는 우르비누스로 진군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르비누스에 도착한 나르세스는 우르비누스의 방비가 너무 철저하니 차라리 적의 수도 라벤나를 공략함이 더 낫다 라고 말하며 요한을 설득해 나르세스 본인은 동고트 왕국의 수도인 라벤나로 요한은 근처 지역의 정복을 맡기로 하였다. 문제는 이 행동을 벨리사리우스의 동의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한 일이라 벨리사리우스는 무척이나 분노했고. 참을만큼 참았다고 판단한 벨리사리우스는 본국의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직통으로 '나르세스가 내 말 안들어요!'라고 항의하는 편지를 썻고, 이 편지를 받은 유스티니아누스는 즉각 나르세스를 소환해 해임하고 다시 한번 벨리사리우스만이 유일한 원정대의 총사령관이자 현장 지휘관임을 공포했다. 이후 드디어 군대를 원하는대로 주무를 수 있게된 벨리사리우스는 빠른 속도로 이탈리아를 정복해나가며 비티게스의 군대를 깨강정 내버리고 비티게스를 사로잡는데에 성공하고 전후 협상에 나서기 시작한다(이 때 즈음에는 로마군의 위엄이 워낙 높아 로마군이 나타나기만 하면 줄줄이 도망치기에 바빴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확장에 겁을 먹은 사산조 페르시아가 로마와 맺은 화평 조약을 깨고(이 화평 조약을 맺기위해 유스티니아누스가 피똥 싸면서 노력했다) 동부 침공을 개시한다. 이런 급사태가 벌어지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일단 벨리사리우스를 불러와 급한 불 먼저 끄려했다. 그러나 벨리사리우스는 다 이긴 전쟁을 그만두고 돌아갈 맘 따위는 없었기에 명령장에 '원로원이 결정한 바...'(사실상 이 때 즈음엔 거수 기관 이외로는 기능치 않았다) 라는 부분을 문제삼아 유스티니아누스 본인의 직명이 아닌 이상 못 믿는다면서 일주일간 더 뻐팅기고 결국 동고트의 수도인 라벤나를 초토화시키는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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