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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 ===러시아 제국=== {{제국}} {{통수}} 대홍수 사태가 끝나고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은 자신들의 자치권을 조건으로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 복속됬는데 러시아제국은 코사크들에게 코사크들의 자유로운 공동체 문화가 자신들이 행하는 억압적인 농노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자치권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등 온갖 노역에 동원되었고 또한 러시아 제국의 군대로 강제로 징발되어 시베리아 원정에 동원됬다 또한 코사크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 때와 같이 여전했다 그와 같은 여러 불만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1709년 흐멜니츠키 때와 같이 마제파라는 코사크 지도자가 스웨덴과 동맹을 맺어서 러시아 제국에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이 러시아 제국에 패하면서 반란은 진압되고 러시아의 보복조치로 수많은 코사크들이 학살되고 마제파는 도주하는 도중에 죽는다 이때 이후로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성을 파괴하고 러시아 제국에 대한 독립의지를 분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어에 대한 출판물의 출판 금지와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한 왜곡을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제국의 멸망 그리고 소련의 설립=== {{좆망}}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렇게 시간이 흘러 1867년 알랙산드르 2세가 농노해방령을 발표 했는데 그것은 법적상으로의 허울이었고 그법이 현실에 저촉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20세기 초까지 러시아에서 농노제는 남아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노들은 농노제에 대한 불만과 지주들의 착취와 대우 그리고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가혹한 근로환경 그리고 근로시간과 대우들에 대한 문제로 불만이 많은데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지는 바람에 전비까지 싹다 끌어않고 또한 배상금 까지 지불하는 바람에 제정은 박살이 났고 그 비용을 농노들과 노동자들이 껴안게 되었는데 그런 경제난에 라스푸틴이라는 좆큰 사이비 교주새끼가 황후를 지 좆집으로 삼고 황제의 신뢰를 등에 업고 나라 정책을 지 좆처럼 휘둘러서 개판으로 했다 그래서 러시아 민중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평화 시위를 했는데 황제는 민중들을 총으로 쏴 죽여서 1905 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 생기게 되었고 황제에 반대하는 활동은 점점 더 격앙되고 과격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황제 이새끼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러일전쟁과 비교되지도 않을 막대한 전쟁비용이 발생하고 독일과 전쟁할때 독소전쟁 초창기때 처럼 러시아 병사들이 고기방패처럼 존나게 갈려나갔다 그래서 전쟁을 중단하자는 의견과 황제를 퇴위시키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결국 황제는 2월 혁명 이후로 퇴위 된다. 황제가 퇴위되고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간의 정책 차이와 1차 세계대전 종전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빗는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전쟁을 종전시키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는데도 자유주의자들은 전쟁을 계속하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결국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과의 갈등과 혼란이 가속화 되었고 결국엔 사회주의 세력들이 승리 했는데 사회주의자들도 전쟁에 대해서 찬반이 갈렸다. 볼셰비키는 전쟁을 반대하였으나 이때까지만해도 볼셰비키는 사회주의 내에서도 소수에 불가했기 때문에 다수인 몐셰비키들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혼란은 가시지가 않았고 맨셰비키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은 '전쟁반대' '평화조약 채결'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한 볼셰비키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볼셰비키의 위세와 당원들의 수가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볼셰비키들과 임시정부와의 갈등의 골은 커져가다가 라브르 코로닐로프를 중심으로한 자유주의 백군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그 갈등의 골은 터져버린다 결국 볼셰비키와 임시정부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국민들의 지지른 바탕으로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러 관공서를 점령하고 반대세력들을 분쇄시켜서 볼셰비키들의 승리로 끝나고 레닌은 소련의 설립을 선포한다. ===적백내전 및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설립===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인}} 10월 혁명이 성공하고 소련이 설립 됬다고는 하나 볼셰비키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같은 수도권의 주요 도시들만 장악했지 러시아의 지방 도시들은 백군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한편 러시아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러시아 치하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오스트리아가 장악하고 있던 서쪽 갈리치아-볼히니아 지방과 통일하고 갑작스럽게 독립을 선포해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설립을 선포한다 그리고 패전의 연속과 러시아 국민들의 계속되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으로 레닌이 독일과의 굴욕스러운 종전 회담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채결하게 된다 이로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치하에서 벗어나는 대신 독일의 괴뢰국이 된다 그후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망하고 한동안 독립국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다가 1921년 적백내전에서 볼셰비키들이 승리하면서 소련의 침공으로 다시 소련 치하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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