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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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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신라해적의 배후는?=== 신라해적 현춘은 포로가 된 뒤 자신의 근거지에 2천5백의 군대가 있다고 진술했다. 또한, 해적 무리에는 3명의 장수가 있는데, 그 중의 한 명은 당나라 사람이라고 다소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9세기 중엽, 당나라는 중앙권력이 약화되면서 각지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을 만큼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당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실패할 경우 바다 건너로 도피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평정될 경우 그 잔존세력들이 신라로 망명하기도 했다 흔히 한국 역사에서 해적이라고 하면 왜구 밖에 모르는데 일본측 기록에는 이른바 신라해적인 신라구(新羅寇)라는 해적집단이 존재하는데 그동안 교과서 및 한국 역사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고 한국측에서는 항상 신라측이 왜구에 의해 피해를 받았다는 피해의식역사만이 남아 있기에 역으로 일본열도를 노략질하는 신라구에 대해서 상당히 신기하지 않을수 없다. 또 다른 설로는 현춘이 포로가 되면서 자신들은 그저 약탈하라는 왕명을 받은 부대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증언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일본 기략이라는 책에 기록이 되어있다고 한다. 다만 현춘이 단순히 왕명을 사칭했을수 있기 때문에 쉬이 맹신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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