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서울특별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조선시대 === [[파일:한양전경.jpg|400픽셀|섬네일|한양의 전경]] [[파일:한양지도.jpg|200픽셀|섬네일|도성도(都城圖)]] {{인용문2|우리나라는 한양만 벗어나도 시골 티가 납니다.|[[박제가]](朴齊家)}} 상기한 대로 이성계가 개성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누대의 수도로 작용했고 이때의 이름은 한양(漢陽)이었다. 다만 지금의 서울특별시보다 면적이 훨씬 좁았다. 조선 시대 국왕과 왕실 사람들이 사는 궁궐들, 종묘,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하는 양반들이 모두 한양에 살았다. 심하게 좆멍청한 새끼가 아니라면 누구나 아는 사대문 등의 서울 소재 문화재들은 이때 생긴 것이다. 한양을 관리하는 '''한성부(漢城府)'''라는 기관이 따로 있었는데 한성부의 책임자인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은 품계가 '''정2품'''으로 존나게 높았다. 수도도 수도지만 왕정 국가였으므로 한편으로는 '''왕이 사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컸다. 조선시대의 [[벼슬아치]] 등용 목적의 [[시험]]이었던 [[과거]]는 최종 시험을 한양에서 치르게 되어 있었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걸어서 오려면 거의 일주일을 들여야 하는 피똥을 쌌는데 이렇게 되면 한양 사는 인간들이 빡세게 공부할 시간에 얘네들은 걸어오느라 시간 다 쓴다... 물론 경비도 엄청 많이 들었다. 과거는 시험 날이나 과목이 바뀌는 경우가 있었는데 서울 즉, 한양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쉽게 바로 아는 반면, 지방에서는 이런 이런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서 기껏 피똥 싸면서 한양까지 걸어온 다음에 시험장에서 [[과목]]이 바뀐 것에 [[데꿀멍]]한 뒤 좆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이 그냥 짱이라는 인식은 이미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서 [[조선]]의 미개한 다른 지방들을 압도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