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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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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개 == === 학생들의 시위 === [[파일:부마항쟁.jpg]] 10월 16일 부산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선언문을 낭독하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파출소를 습격해 점거했으며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그리고 당일 백 명 이상의 학생들이 연행되었다. === 시민들의 참여 === 대학생이 살짝 시위하고 런하는 게릴라전을 반복하다가 그날 저녁부터 미래가 없던 동-똥수저(직장인, 짱깨집, 노숙자, 그 외)들이 대학생들의 시위에 호응해서 죽창을 들었다. 이들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 경찰, 어용언론 건물을 까부수면서 죽창을 들었고 다녔고 부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존나 빠르게 마산까지 확산되었다. [[파일:부마항쟁 진압.jpg]] 물론 각하는 왜 이런 사태가 생겼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엄령부터 터뜨려서 강경 진압을 한다. 그리고 따까리라는 [[차지철|강철 수레]] 새끼도 박수 치면서 무조건 박정희가 옳습니다만 외쳤다. === [[10.26 사태]] === {{참조|10.26 사태}} 몽둥이로 끝내지 말고 총으로 전부 죽여버리자는 차지철의 궤변에 반인반신이 동조하다가 재규어한테 총 맞고 사망한다. 반신반인이 이 항쟁이 악화되면 200만 명 정도 죽이려다가 그 말 듣고 빡친 쌍도 출신 갓슬레이어 김재규한테 대신보구를 맞고 사망한다. 사실 이건 김재규가 법원에서 얘기한 게 전부고, 실제 조사 결과로는 (당시 궁정동에서 생존한 경호원에 따르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간에 전부 전차로 깔아뭉게버립시다."라고 말한 것이 들렸다고 한다. 200만 죽이자는 얘기는 진실인지 아닌지 딱히 알 수 없다. 이후 박정희가 죽고 나서 잦아들었던 부산 민심은 훗날 부산 출신의 박종철이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망하자 [[6월 민주 항쟁|한 번 더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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