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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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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빈으로=== {{흥한 시즌}} 계속되는 혹사와 극장주와의 트러블이 점점 심해지면서 말러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게 된다. 마침 빈 궁정가극장의 감독 자리가 비었고 얼마 후에는 지휘자 자리도 비어서 그 자리 따려고 노력했다. 그의 명성을 잘 알고 있던 몇몇 음악인들의 추천을 받기는 했는데 아직도 유대교 신자라는게 걸림돌이었다. 그 당시엔 카톨릭 신자만이 공직이라 할 수 있는 빈 궁정가극장 감독이 될 수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개종을 해야 했다.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지만. 빈에 입성한 말러는 대대적인 개혁을 부르짖었다. 오페라 극장 내부의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잡고 오케스트라를 최고 수준으로 조련하고 성악가들을 자주 갈아치우면서 최상의 상태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대에 나온 오페라는 거의 다뤘다고 한다. 어느새 말러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휘자"로써만. 여전히 자신의 교향곡에 대한 비판은 늘상 따라붙었다. 빈 필하모닉도 맡았는데 평은 별로였다고 한다. 뭣하러 베토벤 교향곡에 목관악기를 덧붙이느냐고 비난을 받는 등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나이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에 쓴 교향곡이 4번 교향곡이다. 1번 교향곡 정도로 1시간 안팎의 길이를 지닌 교향곡인데 이것도 존나 욕먹었다. 저번에는 너무 악기 편성이 과하다고 욕해서 트롬본 같은 자극적인 악기를 빼고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안 웅장하다고 까였다. 젊어서 쓴 칸타타 <탄식의 노래>를 개정해서 초연했는데 오지게 욕을 처먹고 얼마 안가 치질 걸려서 하마터면 고인이 될 뻔했다. 이때는 항생제가 없었다는걸 기억하자. 감염 잘못되면 온몸이 썩어가면서 죽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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