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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자세하게 == 이 양반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한테 털렸을 무렵 성장했고 그 이후 혼란해진 30인 참주체제 하의 아테네에서 살았다 패전 국가가 흔히 그러하듯 사회 전반에 이대로는 안된다는 어떤 위기 의식이나 비판의식이 맴돌고 있었고, 소크라테스는 그 원인을 부패한 민주제와 참주들의 금권정치에서 찾았던 철학자였다 당시 아테네 사회는 19세기 영국과 유사한 점이 있었는데, 귀족 계급이 분명히 실존하고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있긴 하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민들의 호감과 동의를 사야만 했다는 점이다 이 호감과 동의를 얻는 방식이 바로 '돈 뿌리기'였다. 그래서 차츰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금권민주주의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의 매관매직이 일어나면서 장군을 추첨(사실 뒤에서 조작해서 지들이 바라는 새끼 끼워넣고)으로 정해서 군대를 지휘하게 하는, 그런 개병신같은 일까지 일어난다. 전력이 후달려서 스파르타 함대를 상대로 잠깐 작전상 후퇴를 한 유능한 해군 지휘관을 국민 정서법으로 모가지 뎅강 한 적도 있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원인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제도에 반대하며 '구두장이가 구두를 수리하고 선박공이 선박을 수리하듯 국가라는 배는 누가 수리해야 하겠는가?'라는 소리를 떠들고 다니다가 참주들에 의해 사형대에 올라가서 죽었다. 즉 당시 맥락으로 살펴보면 어느 정도 엘리트주의가 필요하기는 했었다. 현대 민주주의도 사실 대중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조화시켜 쌍방간의 동의하에 굴러가고 있으니까 근데 플라톤은 자기가 경애하고 사랑하던 스승의 죽음에 너무 낙담한 나머지 민주주의 일체를 부정하고, 군사적인 전체주의국가였던 스파르타를 교범으로 삼아 이상국가의 형상을 짜내어버린다 그리고 이게 판타지 망상 딸이 아니었던 것이, 아테네 외의 다른 국가에서는 유명한 철학자를 초빙해서 조언을 듣는다는 형식으로 그 철학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법령을 고치는 등등의 일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솔론이 그러했고 스파르타도 (진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리쿠르고스라는 입법가의 손에서 그렇게 했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생각하면 편하다 플라톤의 국가는 이상국가에 대한 논증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실천적으로 그러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하나의 지침이었다. 그 국가라는 책을 들고 플라톤은 그걸 건설해줄 도시국가를 찾아서 그리스 세계를 헤매고 다니지만 결국 못 찾는다. 즉 플라톤의 엘리트주의는 엘리트주의이긴 한데, 당시에 '매우 우연한 이유로 부를 얻은 부자들에 의한 엘리트주의'에서 '지식과 철학을 공부한 자격 있는 철학자들에 대한 엘리트주의'로, 돈이 아니라 지식을 자신의 계급적 근거로 찾은 엘리트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고 '전쟁과 같은 위기수단에 있어서조차 민주라는 이유로 전문성 없는 개인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민주주의'에서 '항구적인 방어적 수단을 갖출 수 있는 체제'를 요구한 것이고, '필요량 이상의 부를 가진 인간들에 의해 정의가 망쳐지는 사회'에서 '국가가 감독하여 부를 균제함으로서 정의가 망가지지 않도록 감시할 수 있는 세계'를 주장한 것이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솔직히 유치한 부분도 굉장히 많았고, 변증적으로 그런 유치한 수준의 민주주의에 대한 반론으로 설정된 플라톤의 국가 담론은 어느정도 사회에 반영된 다음 다시 부숴져야 했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너무 신화적이었고 또 플라톤이라는 천재가 가진 문학적 철학적 재능이 너무 위대한 탓에 하나의 교조적 도그마로 자리잡아 버려서 13세기까지 아무도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철학에 반론을 제시하질 못했다. 심지어 전혀 관련없어보이는 그리스도교에서조차 플라톤의 천상 국가론을 가져와서 근거로 삼을 정도였으니 뭐... 플라톤을 전체주의자라고 매우 심하게 비판하는 버트런드 러셀도 '국가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지 않기는 힘들다'라고 말할 정도니까.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에 의한 회의주의가 만연하기 이전까지 존재했던 위대한 고대 철학자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등 모든 철학자들의 관념과 사상을 전부 흡수해서 '국가를 건설한다'라는 어떠한 실천적인 목적을 위해 정치적 귀결을 지으려고 했던 최초의 철학자였다. 이 과정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논증을 전부 집대성하기까지 한다. 윤리 시간에 형상과 현상, 동굴의 비유 등등을 들어보았을 텐데 그게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결론나냐면 -> 그러니까 이데아적인 국가를 가장 크게 모방한 국가가 최선의 국가다 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데아적인 국가라는 것은, 실재하는 국가로서, 탁자의 이데아 컵의 이데아가 그렇듯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 국가다. 이 논증은 사실 매우 연결고리가 빈약한데, 경험과학과 사유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결국 이 국가는 체제 지속성과 안정성을 다른 국가의 모든 영역을 포기해서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결론지어지게 되어버린다. 이런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 스파르타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계급의 위에서, 철학을 배운 왕으로서 군림하며 전문성과 자격을 가지고 국가 전체를 영도하는 '철인왕' 개념을 만든다. 즉 매우 뛰어나고 우수하며 철학을 깊이 공부한 누군가가 왕이 된다면 그 국가는 최고이자 최선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지도자론,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건 현대적으로 검증하면 병신같은 소리다. 이 이론의 당위는 '최고의 선을 깨달은 사람은 악함이 악한 것을 알기 때문에 선하게 행동하지 절대로 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라는 건데, 이건 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짓는 사회적인 동기의 힘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영국 사회에서 실지왕은 멍청해서 실지왕이 됐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똑똑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됐나? 무엇이 옳은지 아는 사람을 지도자로 옹립했다는 것 만으로는 절대 어떠한 선성의 실현이 보장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것이 수 많은 야심가들의 가슴에 불을 당겼고 그들의 권력애를 이상주의적으로 정당화시켰다. 그래서 한동안 플라톤의 사상의 영향이 미치는 곳에서 모든 지도자들은 자신이 철인왕임을 주장했고 아무도 플라톤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이러한 설정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와 근본적으로 동떨어져 있다. 민주주의는 최고의 지도자인 대통령조차, 일반 민중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민중에서 연속되어있지 않고 단절된 어떤 계급적 구분을 가진 신성한 누군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이렇게 민주론을 파괴하고 계급론을 정당화시켜버렸다 또 동시에 '천상의 국가를 지상에 모방한다'라는 신정국가론과 현실국가론 쌍방을 만족시키는 국가담론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후대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오니아 학파 및 거의 모든 그리스 유물론자들을 배격하면서 플라톤은 입이 마르게 칭찬하고 감각계는 미지의 영원한 세계보다 열등하다는 그의 관념을 받아들인 '신국'이라는 저서를 저술한다. 이게 그리스도교 세계에 흡수되어서 왕권신수설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왕은 권력을 신에게 받았당께 오홍홍 하는게 그냥 중세 신민들이 미개하니까 신이 받았다고 하니 그런갑다 하고믿었나보다...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런 막연한 동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왕권신수설을 옹호했을 리가 없다 즉 저때 설정된 철인왕 개념을 플라톤 본인은 철학을 공부시켜서 참된 위정자로 만들어야한다 는 식으로 사용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어떤 왕이 철인왕인지 아닌지 구분해주는 권위는 교회이며, 교회가 그것을 인정했으니 우리는 꿇어야 한다'는 식으로 사용하게 된다.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봉건제+교회에 의한 인격적 지배를 바탕으로 한 세계 전체를 일종의 독재정으로 파악한다면 플라톤의 이론은 확실히 독재정에 부역한 게 맞다. 참주정과 철인정치는 다르다고 했는데 그 지도자가 자격 없는 타이러니인지 참주인지를, 수십겹의 현실적 장막에 둘러쌓여져 있고 은폐되어 있는 현실 세계에서 모두가 어떻게 판단하라고? 결국 모든 참주는 다 철인인 척 했고 저런 이상적 구분은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전혀 없었다.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판단을 대리해주는 게 권위다. 그러니 교회가 얘는 착한왕 얘는 나쁜 왕 구분해서 널리 퍼뜨려 주는 역할을 대행했던 것. 어떤 정부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권위를 교회가 손에 넣는 식으로 쓰였을 뿐. 즉 투명하게 체제적으로 파악했을 때 플라톤은 그냥 독재정을 주장했던 게 맞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정>귀족정>시민정>/민주정>과두정>참주정 이라는 정치설을 제시함으로서 집권자의 윤리적 기준에 따라 같은 정체라도 완전히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제시하고, 플라톤 말처럼 군주정이 성립되면 최고의 정치체제가 되나 현실적으로 볼 때는 거의 모든 군주는 다 참주가 되므로 군주정은 좋지 않다, 최고의 정치체제는 반전되었을 때 최악의 정치체제가 되므로 시민정과 민주정을 오갈 수 있는 민주주의가 가장 올바른 제도라는, 차악선택론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옹호를 성립시킨다) 또 전체주의, 국가주의 즉 파시즘과 나치즘을 독재정으로 파악한다면 아주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파시스트와 나치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서 이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점이다. 플라톤이 제시한 '가정 해체', '국가주의 교육' ,'문화 검열' 등등을 사상적으로 가져올 뿐만 아니라 제도적 도구까지 제공한다. 플라톤을 부정적으로 독해하는 견해는 그 전까지는 반반이었는데 나치와 파시즘을 겪은 다음 플라톤 사상에 대해 전반적인 회의를 가지는 게 철학계의 분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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