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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에 대한 쉴드 === 이렇게만 보면 정조가 사실 숨겨진 악으로 조선 다 말아먹은 폐급왕처럼 묘사가 되니, 하늘에서 노발대발하며 억울해 속 터져 할 수 있기에 위의 대한 비판을 좀 쉴드 쳐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붕당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그 기반을 붕괴시킨 것은 정조의 실책이 맞다. 근데 이건 영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는것이 당시는 이미 붕당정치가 망할대로 망해서 노론 벽파가 지들만의 세상을 이루어가던 시점이다. 즉 조선 중기와 달리 붕당정치가 제기능을 하기에는 너무 썩어버렸다는거다. 노론 벽파를 마땅히 견제할만한 정치세력도 없었다. 있어봐야 힘없는 노론 시파+환국 때 살아남은 몇 안되는 남인 정도였음. 영조때에 개나발좀 불던 노론 씹선비들과, 이들의 비호를 받는 정순왕후가 못 깝치게 견제하려면 썩어빠진 붕당정치 기반을 왕이 박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향약이니 서원이니 영정조때 날려버리고, 붕당정치에서 가장 핫한 관직중 하나였던 이조전랑직이 이때쯤에 이미 힘있는 붕당이 독차지하고 언관기능도 못할때라서 결국 날려버린거다. 왕 입장에서는 어쩔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무리하게 왕권 강화를 시도해 그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까이는 것도 정조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 이때 왕권을 한계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탕평을 하기가 수월하지 못했다. 이미 영조때보다 훨씬 더 세력간의 관계는 복잡해졌고, 치밀하게 양쪽을 살펴서 한쪽에 힘이 더 치우치지 않도록 조율을 하고 찍어누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조는 평생을 세력간의 조율을 원만하게 하는데 힘썼다. '''문체반정''' 사건도 정조가 위의 비판처럼 일방적으로 욕먹기에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사건이다. 어머니 신주를 불사지르고 "나 예수믿을꺼야! 제사 꺼져! 공자 주자 OUT!"을 외치던 남인계열 인사 윤치충이 결국 잡혀가 처형당한후(신해박해) 노론중에서도 씹선비 of 씹선비인 벽파새끼들이 남인들을 전부 잡아다 죽여야 한다고 눈을 벌겋게 뜨자, 정조가 남인을 어떻게든 구제할 방법을 찾다가 생각한 정국 뒤집기 방책이 문체반정이다. 가뜩이나 벽파놈들 견제할 세력이 없는마당에 남인들마저 물고나면 누가 씹선비들을 견제하나? 결국 정조는 노론 벽파에서도 제일 잘나갔던 박지원이 쓴 그 유명한 글 <열하일기>를 문제삼게 된다. 열하일기는 패사소품체의 글로 당시에는 상당히 진보적인 방식으로 쓰여진 글이었다. '''"너 이 노론 벽파새끼들 니들 글쓴 꼬라지 봐봐. 뭐? 니들이 이단이니 사문난적이니 이따위 말 할 자격 있어? 니들 중 가장 잘나간다는 박지원이 쓴 글좀 봐봐 씨발"''' 이 때문에, 열하일기는 한때 반남 박씨 문중 내에서 태워버리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간신히 보전되어 후세에 전해진다. 결국 이런식으로 노론새끼들이 남인을 족치려한 하나의 폭주도 찍어누르고, 남인의 희생도 2명 처벌하는 것으로 최소화하였던 것이 문체반정이다. 정조가 일방적으로 까일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조가 박지원을 싫어했던것은 아니고, 벽파중에서도 정조 코드에 맞는 인물은 좋아했다. 단지 남인좀 살려보고자 정조가 치사하게 정치적으로 그가 쓴 글을 이용한 거지. 그리고 솔직히 조선 왕들중에 조선 초기 왕들 몇을 제외하고는 사실 정조만한 대단한 임금도 그닥 없었다. 즉 조선중기 전란과 전후 병신임금들 크리로 동시대 서양과 비교해서도 한참 뒤쳐진 기술발전 상태에서도 뭐만하면 대가리에 든 것 없이(유교적 논리나 역사 등도 정조 자신에 비해서도 돌머리) 빼애액만 일삼던 씹선비 패거리들이 전 관료 지식인 계층 등을 점거한 국가상태에서 자기가 왕으로서 영조가 싸지른 똥을 치우고 현실적으로 타협치고 이끌고 봉합하고 꾸려나가다 보니 이런 타협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스탈린식 숙청짓거리나 하며 집권기간이 훨씬 긴 선대 영조와 비교해서도 훨씬 민생 등 통치를 잘한 것은 분명하다. 비유하자면 필리핀 정도 부정부패에 엉망인 나라 임금으로 집권했는데 당장 미영독 같은 최선진국 수준 왜 못만들었냐 빼애액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기술차이 수준이나 상태 벌어진 정도는 더욱 심해서 집으로 치면 빗물이 뚝뚝 천장에서 새는 집이었으나 정조가 그나마 없는 기반 상태에서 어찌어찌 공사해서 고쳐놓은 정도. 삐까번쩍한 저택으로 왜 고쳐놓지 못했냐고 떼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10만큼 벌어진 격차를 6만큼으로 정조가 줄였으나 사후 왕이 똑똑하니 크게 해쳐먹지도 못하고 기도 못펴고 산다는 것을 느끼고 양반관료들이 합심해서 [[세도정치]]로 뭉쳐버리자 사실상 김씨왕조 나오면서 국가망조 테크로 다시 가는거다. 덧붙여 정조의 문제점이기도 하고 또 쉴드이기도 한 거는, 정조 스스로가 너무나도, 초월적으로 잘 난데 있다. 정조는 당시 유학자들 중 가장 권위있는 학자였다. 심지어 워낙 독서를 좋아했던터라 세종대왕님도 하지 않은 유교 경전 외우기를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싸그리 싹싹 달달 외우고 있던 사람이 정조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유교 경전이였다는 것. 게다가 주자의 저서에 정조의 주석을 달아서 이를 책으로 출판하자는데도 아무 반론이 없었다. 말그대로 이황, 이이 급의 대유학자이다. 또한 유학 이외 국가 통치를 위해 필요한 학문들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였다. 심지어 체육이나 밀리터리, 의학, 예술에서도 전문가였다. 문체반정 역시 스스로 다 해 봤는데 별게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해 금지시킨 거라고 보는게 합당할 듯하다. 유학적 질서를 파괴시킬 것을 우려한 것이다. 명색이 그는 대 유학자이며 유학의 국가인 조선의 임금이었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후대의 평가가 권모술수적이다, 배후조종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그것도 어찌보면 스스로 모든 방면을 다 조종 또는 조정할 수 있어서 했던 거다.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정조의 개인적 삶을 보자면 그리 하는게 맞았고 또 그리 오랫동안 그리 해온게 놀랍다면 놀랍다. 스스로도 본인의 먼치킨적 재능을 잘 알았으니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긴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정조의 실수라면 실수고 운명이라면 운명이지만, 정조는 본인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하면 본인같은 먼치킨이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고로 본인이 죽더라도 다음 왕이 그가 만든 정치체계, 즉 모든 방면을 왕 1인이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로 보인다. 그러나 정조는 스스로가 '타고난' 먼치킨임을 몰랐고 후대의 왕 그 누구도 그처럼 국정을 통솔하지 못했다. 몰랐다기보다는 누구나 노력하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만 딱 맞는 정치체계를 구성하여 넘겨주었고 후대 왕은 이를 따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조 본인이 여러 일을 제대로 해보기 전 좋지 않는 타이밍에 급사한 것이 가장 크다. 아들 순조가 몇살때 집권을 하였는지 생각을 해보자. 자신에게 남아있는 과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하늘로 가버렸으니 세도정치로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이였고 수명은 뭐 어떻게 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라 마냥 정조 책임으로 가기도 뭐하다. 그리고 비판하는 내용에 지방의 수령들 못 믿어서 자기가 너무 간섭했다고 까는 내용도 있던데 이런 간섭은 세도정치 때 일어난 일들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수준이다. 세도정치 때의 부패한 관료집단이 하루아침에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세도정치 초기 때의 관료집단은 상당수가 정조 때에도 관직생활하던 인간들이였다. 중앙정부에서 계속 간섭하고 감독하지 않으면 언제 부정부패를 한가득 저지를지 모르는 집단이 당대의 관료집단이였는데 이들을 간섭 안 하는게 오히려 직무유기라 볼 수도 있다. 이래저래 극강의 먼치킨이고 청나라의 옹정제를 연상케 하는 워커홀릭이었지만, 다들 나만큼 노력하면 나만큼 할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고 옹정제같이 아들복이 있지도 않았다. 건륭제도 소소하지만 순조보단 나았다. 이게 패착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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