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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 ==== 배경 ====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패전국의 식민지 분할을 위해 민족자결주의(1민족 1국가)를 주창했고 여기에 조선인들이 낚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일련의 민주화 민권 운동으로 인해서 일본 본국의 분위기도 많이 부드러워진 것도 한몫했다. 이에 따라 머국적으로 조선 민중들은 [[3.1운동]]을 펼쳤지만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에 맞섰던 영국 총독부와 달리 일본 총독부는 피도 눈물도 없었기 때문에 자근자근 짓밟혔다. 그래도 일본은 기존의 통치 방식에 대해서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고 총독을 교체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일본 해군 제독으로서 처음으로 총독에 올랐던 사이토 마코토는 취임하여 한국 땅을 밟자마자 강우규 의사의 폭탄 의거로 죽을 뻔하였고 이에 느낀 점이 있었는지 어떤 카드를 꺼내게 된다. ==== 문화통치(민족분열통치) ==== 교육 과정에서는 민족분열통치로 소개된다. 3.1운동을 진압한 조선총독부는 서구 열강들이 "아무리 그래도 너같이 식민지 관리 좆같이 하는 새끼는 처음 봤다."라며 갈구니까 일제는 좀 더 유화적인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국제적인 언플을 했다. 황당한 것은 당시 서구 열강들도 저마다 식민지를 하나씩 운영하고 있었고 일본은 서구 열강들에게서 식민지 통치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일본보다 더 좆같은 새끼들이 일본을 욕하는 것도 아이러니. 그 주요 내용은 총독을 군인이 아닌 문관 출신으로 임명하겠다는 것, 헌병을 경찰로 바꾼다는 것, 선생들에게 칼을 차지 않게 한다는 것, 언론의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 조선인이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한다는 것(제2차 조선교육령, 1922) 등이었다. 그러나 말만 그럴싸할 뿐이었고 실상은 처참했다. 문관 출신이 총독으로 부임한 사례가 광복까지 단 한 명도 없었고, 경찰은 그냥 헌병대가 옷만 경찰 옷으로 갈아입고 꼴에 보통 경찰이라고 인원은 오히려 더 늘었으며 교육은 좀 더 심해져서 일본어가 주가 되었고 고등 수준의 교육은 온데간데 없이, 4년제였던 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 해당)가 6년제로, 고등보통학교도 3년제에서 5년제로 늘고, 일본어 교육 시수만 늘렸다. 그리고 은근슬쩍 조선의 학교 교정에 심었던 무궁화는 전부 뽑히고 사쿠라로 교체되었다. 머학교 진학하고 싶다고 했는데 다른 것만 던져주는 좆본 새끼들 ㅉㅉ 물론 "사범학교와 대학 설치의 길이 열렸다."라는 얘기도 했다. 친일 활동을 하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허락하지 않았지만. 언론은 당연히 검열이 더욱 빡세져서 조선의 언론이 대부분 망하거나 일본의 앵무새로 돌아섰다. ==== 여파: 독립 운동 진영의 분열 ==== 이 시기에 이르러서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협력했던 독립 운동 세력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1910년대에 크게 두 노선으로 구분되었던 독립 운동 세력(왕정복고 지향 vs 근대 공화국 지향)은 운동의 전개 방식과 이념 등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개중에 몇몇 우익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는 '타협적 민족주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실상 일본의 개로 전락하기도 했다. 1925년에는 치안유지법이 발효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갈려나갔고 40년대에 이르러서 탄압의 대상은 민족주의 등 다른 대상까지 확장되었다. 그렇게 자주를 외치는 사람들이 갈려나갔고, 이는 오늘날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 ==== 식민지 경제 ==== 1910년대에는 회사령, 토지조사사업, 어업령, 임업령 등을 통해서 일본 기업이 조선 시장에서 성장할 기틀을 닦으면서 자원을 값싸게 약탈하는 식의 정책을 꺼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192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며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 많아졌고 시장은 이에 따라 과잉 공급의 상태가 되었으며, 결국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물건을 팔 새로운 시장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이 시기에 들어서는 회사령을 철폐하고 경쟁을 하거나 물건을 매매할 조선의 기업을 제한적으로나마 설립하도록 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대다수의 재력을 일본인과 친일파가 먹어서 조선인은 상대가 안 될 것이므로 일본 기업 설립의 간소화를 위해 회사령을 철폐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요컨대 1920년대의 조선은 일본이 생산한 제품들을 판매하기 위한 확대된 시장이었던 셈이다. 이런 일본의 속셈을 알아차린 몇몇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물산장려운동]]을 추진했지만 과잉 수요와 헬조선 상인 특유의 바가지, 생산 능력 부족, 국내산의 열악한 품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좆망했다. 교과서에서는 일제의 간섭과 방해 때문에 실패했다고 설명하는데, 이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알 필요가 있다. 그나마 장점을 찾으라면 1910년대에 비해 강압적인 통치가 어느정도 누그러진 것도 사실이고 조선어(한국어) 신문도 매일신보 외에는 금지되었던 1910년대와 달리 검열이 있기는 했지만 허용되기도 있다. 언론 자유도 20년대 초중반에는 나름 보장되어서 조선총독부 통치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조선인들에게 일본어로 교육하는 거를 반대한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하였다. 물론 일본의 한반도 통치의 궁국적인 목적인 한반도의 완전한 일본(내지)화 (내지연장주의)는 1920년대에도 변하지 않았으며, 1920년대 자체의 일본이 패망 전에 가장 민주주의적인 시대였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1930년대가 되면서 전부 흐지부지 해졌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조치는 조선인들을 위한 게 아닌 조선의 독립을 막고 통치의 편의성을 위한 조치였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1920년대 동안 계속 유지되었지만 세계 대공황이 터지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 [[치안유지법]] ==== 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에서 동시에 사회주의도 한반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레닌]] 슨상이 "약소 민족을 독립시켜주자. 우리 소련은 약소 민족이 그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라는 연설을 하면서 많은 국내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였고 사회주의는 정말 순식간에 조선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경제는 공장 존나 빡시게 돌려서 물건 존나 만들고 물건 존나 많이 파는 식으로 발전하는 게 정석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이 순순히 일을 해줘야 하는데 당시 조선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열악한 노동자 대우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파업과 시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공장 생산 라인들이 단체로 멈추거나 일부는 파손되기도 하였다. 사회주의가 좆같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은 얼마 안 가서 사회주의자들을 싹 청소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법, 이른바 <span class="plainlinks">[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105112136445 치안유지법]</span>을 제정하게 된다. 내용은 그럴싸하다. 치안 유지에 악영향을 줄 놈을 미리 색출해서 잡는 것이다. 문제는 치안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준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국가보안법]]의 애비 수준이다. 이를테면 [[너]]가 생긴 게 사회주의 운동을 할 것같이 생겼다면 체포될 수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없다. 이전까진 그래도 직접 항일 운동을 하거나 밀서를 주고받다가 걸리거나 하는 직접적인 행동 등 체포의 근거가 있어야 했지만 이 법이 생기면서 '수상하게 보이는' 행동과 용모만 있어도 체포, 구금할 수 있었다. 적어도 국가보안법은 정으니처럼 몸무게가 존나 나가서 빨갱이짓 할 거 같다는 우덜식 이유로 그냥 지나가고 있는 파오후를 잡아가지는 않는다. 이걸 가장 잘 써먹었던 대상이 바로 언론이다. 조선 신문에 뭔가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잡을 만한 단어가 보이면 바로 그걸 트집 잡아서 폐간 시켜버렸고 결국 조선의 언론은 친일로 돌아서거나 멸망했다. 즉 일제 패망 후 전직 일제 고등 형사 출신들이 보였던 '빨갱이 때려잡기'는 갑자기 튀어나온 스킬이 아니다. 이 시기부터 일제에게 꾸준히 애먼 사람을 족치는 스킬을 배워가며 다져왔기에 수십 년 후에도 잘 써먹을 수 있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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