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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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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직 진출 === 재수끝에 무과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점수가 크게 깎여서 낙방했지만 2번째는 합격했다. 까짓거 재수할 수 있지 뭘그래. 재수해서 서울대 가는게 재수 안하고 서잡대가는 것보다 나은 거지, 안그래? 이순신은 식년무과에만 응시해 2번만에 합격했다. 조선은 무과에 있어 정기시인 식년시로 정예를 선발하고 그외 부정기무과로 여타의 무인을 충당했다. 재수해서 서울대 갔다라는 말이랑 그닥 매치는 되지 않으나 이해하긴 빠르겠다. -_-;; 수시 가 아니라 정시 라고 보면 돼!~ 한번은 상관인 서익이 원칙에 어긋난 인사를 지시했고, 거절했다.물론 나중에 트집잡혀서 파직된건 덤이다. 그 이후 녹둔도에 [[이일]]의 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여진족이 쳐들어오자 이일은 도망치고 이순신은 이경록과 둘이 남아서 주먹질한 끝에 여진족을 무찌르고 조선 백성 60여명을 구출했다. 지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분 녹둔도 전투 전적 보면 무력으로 최소 털린다는 소리는 쏙 들어갈 각, 애시당초 기초적인 무예가 있어야 무과에 급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활 사격실력만 살짝 부실할 뿐이지<ref>그나마도 평타급인데 [[이순신 (무의)|이름 똑같은 자기 부하]]가 워낙 명사수라서 그 부하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을 못 쏠 뿐이었다.</ref> 주먹싸움은 농담으로라도 못한다고 할 수가 없다. 문제는 이일새끼가 그 군공을 지가 가로채고 이순신이 도망갔다고 서로 뒤바꿔서 날조해서 장계를 올렸다. 이 때문에 이순신은 군공을 쌓고도 오히려 백의종군했다. 나중에 여진족 우울한 우을기내를 깨고 사면되었다. [[류성룡]]이 어디 쓸만한 장수 없나 기웃기웃 거리다가 류성룡의 매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때 류성룡은 이순신, [[원균]], [[권율]]을 선조에게 천거했다. 지금생각하면 이때 류성룡은 저기서 원균을 조졌어야한다. 아니면 차라리 동생 인 원연 을 기용 했었어야.. 조졌으면이야 좋았겠으나 류성룡은 노스트라다무스 횽아가 아니다. 단지 결과론이다. 원균이 그래도 무장인데 젊어서 아무 공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시원찮았을 뿐;;; 또한 왜변대비를 위해 마음이 급했던 조정은 원균정도의 무장도 훌륭해보였을 것이다. 문제는 조선이 지금처럼 북쪽이 꽉 막힌 나라가 아니다. 오랑캐들과 일상적으로 사소한 전투들이 벌어졌던 나라이니만큼 무관이 많이 필요했단 소리다. 그래서 성품이 좀 그렇다손 치더라도 무관으로 임관시키고 '잘 싸우기나 하렴' 식이었다. 하도 이순신같은 완전체 코디네이터만 보다보니 조선시대 무관이 다 그럴거라고 생각하진 말자. 원균이는 그냥 [[장거한]]마냥 [[조아생 뮈라|키 크고 덩치가 엄청나서 싸움을 엄청 잘하겠지 또는 저렇게 덩치가 크니까 적들이 쫄아서 못싸우겠지]]라는 기대심리로 뽑아놓은 거지 원균 실력보고 뽑은 거 아니다. 문제는 똑같이 덩치가 컸어도 진짜 인간흉기인 조아생 뮈라와는 달리 원균은 그냥 덩치만 큰 병신이라는 데에 있다. 적어도 조아생 뮈라는 딴게 다 병신이라도 싸움 하나만은 미치도록 잘했는데 아일라우 전투에서는 나폴레옹 머가리 따기 일보직전의 러시아군에게 오줌을 지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아생 뮈라였다. 근데 원균은 뭐냐? 전투만 시작되면 도망치기 바쁘다. 북쪽 변방 오랑캐 방어에, 오만 왜구한테 털리고 왜변까지 결국 시기가 하 수상해지자 조정은 해안방비를 서두르게 된다. 실제 왜란이 터지고 몽진한 선조가 전쟁대비용(이라고 말하진 않았다...)으로 성을 쌓을수록 백성의 삶이 힘들어졌음을 몰랐다고 탄식하며 내린 교서가 있을 지경이다.<ref>사실 모르지는 않았지만 민심을 달래기 위한 교유서이다 보니 립서비스 한거라고 보면 된다. 대규모 토목사업은 백성들에게 원성사기 딱 좋고 나아가 왕권마저 실추되는 일이었지만 전쟁준비상 무리하게 강행했다. 특히 경상 방면에서는 대규모 축성공사에 유생까지 동원하여 진행해왔으며, 유생들은 원래 축성공사 같은 역에 동원되지 않는 이들인데 지역의 여론을 형성하는 지위에 있다보니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실제 전란이 일어난 후 영남관찰사이던 김수가 도망했다고 해서 지탄을 받고 유명한 의병장인 곽재우의 경우 상소를 올려 '김수의 죄는 머리털을 뽑으며 세어도 모자란다'며 극악하게 까다 못해 직접 잡아죽이겠다고 난리친 일이 있을 정도이다. 이같은 지방 여론때문에 도저히 함께 싸우지 못할 상태가 됐을 수도 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 도망간건 정말 잘못한 일이 맞다.)</ref><ref>그러나 급한 전쟁준비도 그렇지만 선조의 이미지 실추는 이 외의 일들도 있다. 이 인간은 의주로 튄걸로도 모자라 사직이라 일컫는 종묘의 신주는 아들인 광해에게 맡기고 조정도 반갈라서 나눠준 후 알아서 하라고 해놓곤 정작 본인은 요동으로 망명가겠다며 징징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강을 건널 기세로 혈안이 되자 정철과 류성룡은 '왕이야 강 건너갈거 같고, 가고나면 연락이 안되니깐 걍 광해한테 왕 물려주라고 할까??'라고 의논하고 윤두수 횽아는 '너 거기가면 걍 동네아저씨 돼'라고 막말까지 퍼붓기에 이른다. 여담으로 미친듯이 개성으로 갔다가, 완전 미쳐서 평양까지 가서 4일 후 한다는 소리가 '어선을 풍족하게 하라'<s>반찬투정</s>였다.... ---- 조선왕이 망명오겠다는 공문을 받은 명나라는 이뭐병 싶기도 하고 막상 대놓고 오지말라고는 못하겠고... 결정적으로는 조선에 왜놈들이 쳐들어왔다고 보고가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조선왕이 망명하겠다고 하니까(이건 미친듯한 왜군의 진군속도도 한몫했다. 개전 후 평양성 털리기까지 불과 며칠 안걸렸다. 부산 상륙해서 죽자사자 걷기만 해도 힘든데 탄금대를 비롯한 육상전투까지 병행해서 온 속도다;;;) 예전 소문대로 '이 쉐들이 진짜 왜놈들이랑 짜고 쳐들어 올 모양임???'하고 의심을 풀지 않았다. 하니 '정 오고싶음 오는데 수행원은 백명만 데려오셈^^'이라고 답을 보내고, 배도 전부 자기쪽 나루에다 묶어두어서 헤엄이라도 쳐서 올래?? 식으로 대응했다. 왕은 사냥한번만나가도 수행원이 이삼천은 된다;;; 결국 명나라도 못 오게 막은거다. 이러다보니 임란 후반부로 갈수록 왕의 권위가 땅바닥서 굴러다녔다 카더라.... 신하들이 '광해에게 선위하심이 어떠심??'하고 갈궈도 보통때 같음 역모라고 난리칠 일임에도 그 말 한 신하들을 처벌도 못했다니 말다했음;;;</ref> 원균 역시 급한 마음에 오용된 무인 중 하나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원균이 바친 뇌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카더라.. 이 때 이순신은 처음으로 권율을 만났는데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이후로도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고<ref>사이가 좋았다기보다 충무공과 권율은 서로 예를 갖추고 공무에 최선을 다 하는 사이였다. 난중일기상 군인 징발 문제로 충무공께서 권율을 까는 기록이 있다.</ref> 급기야는 이순신이 자신의 수군에서 쓰던 함포 중 몇 개를 권율에게 뗘다 줬다. 권율은 이걸로 행주대첩의 결전병기로 활용했다.<ref>전란중의 공무원으로서 개인적인 군공만 탐하지 않고 서로 최선을 다 했기에 이런 장면도 나올 수 있는거다. 원균 시키는 명나라에서 보낸 1,000정이 넘는 화약무기를 혼자 사용하겠다고 난리를 치는지라, 뭐 저런 새끼랑 큰일을 같이 하겠냐며 충무공께서 한탄하신 바 있다.</ref> 그리고 원균에게는 지금까지모은 병력을 전부 반강제로 주게되었는데 그원인이 조선왕조실록 역사상 희대의 씹노답새끼 [[선조]]다. 아이언4 원균은 챌린저가 쓰던계정을 먹고 자기가 챌린저라는 자기최면에 빠져 챌린저계정을 아이언4로 만들어놓는다. 그 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느껴진 선조는 갓애드머럴을 다시 소환하고 양학방송을 킨다. 그래봤자다. 나름 임금님이신 선조, 이연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원균을 앉혔다. 그런데 이순신의 파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파직시키고, 원균앉히고, 칠천량에서 조선수군과 군비를 깡그리 수장시키기까지 일년도 채 안걸렸다. 그제서야 '내가 죽을수도 있겠다' 싶어서 치트키를 입력하긴 한다. 치트키가 상당히 웃긴 한문인데 일명 '상하언재(머 할 말이 있겄니;;)교서'다. 나름 임금이란 사람이 제손으로 쫓아낸 공무원에게(곱게나 쫓아냈나...) '할 말은 없는데..;; 다시 와줘 징징징' 스킬을 구사하신 거다. 이 얼마나 모양빠지는 일인지 대충만 봐도 그림이 나온다. 그런데 징징대는 척 하며 삼도수군통제사 임명교서를 내린 건 좋은데 품계를 정2품 정헌대부에서 종3품 절충장군으로 강등해서 내린 것이다. 이는 ' 내가 겁나 급해서 널 다시 오라고는 했는데 너 사실 맘에 드는건 아니야' 하고 무언으로 시위한거다.<ref>이후의 정황들이 흠좀무하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하면, 충무공께선 명량 승전 후인 정유년 10월에 접어들어 아산 습격을 인지했고 14일에 아들 면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아들이 죽고 부친으로서 미칠것같은 상황(게다가 정유년 초엔 본인이 서울로 압송당해 고문당하고 불과 얼마 후인 4월 10일 전후로 모친인 변씨부인마저 사망하신 상태였다.)인 11월 중순에 명량승첩에 대한 조정의 군공기를 읽게 되는데 부하인 안위가 통정대부로 본인과 동급에 가자됨을 알게 된다. 충무공께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일인지 그냥 그랬다고만 적으셨지만 일반인이라면 피꺼솟...(더 대단한건 이래도 임금 욕 한 줄을 안 쓰셨다;;;; 그노무 임금시키땜에, 혈육들이 사망했음에도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상복도 못 입는 상황에 내몰렸는데도;;)공교롭게도 군공기를 읽은 다음 날 면사첩을 수령했다고 기록하고 계셔서 떡밥중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면사첩은 '칼의노래'에서 증폭된 대표적 떡밥.</ref> ㄴ 씨바... 해군참모총장의 계급을 대장에서 은근슬쩍 준장으로 내린거네. 선좆 병신새끼... 좀 지나니 이연은 수군을 폐하겠다며(잘나가던 수군을 하루만에 쳐말아잡숫더니 이시점에 거의 미친듯....그럼 통제사 임명교서는 왜 내렸냐) 헛소리를 한다. 사실 이게 이연만의 문제도 아닌게 비변사 당상이란 시키들이 계속 부추기기도 했다. <ref>구차한 쉴드 하나 치자면...이연이나 비변사 당상들이나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 그랬다. 전선 열두척뿐인데 제아무리 이순신인들 뭘 우짤라고 이랬던거다. 말그대로 데우나 엑스 마키나인걸 몰라서 그랬다카더라.....</ref> 난이 또 터져서 왕이 다시 몽진간다 치더라도, 시간을 벌려면 최대한 수군이 서해를 막아주길 바래야 하는게 상식이다. 비록 전멸하더라도 말이다. 도로사정이 병맛같았던 조선땅이고 보면, 서해가 뚫린다는건 바로 마포나루에 비단이불 깔아놓고 일본군을 맞이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물론 일본이 수륙병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는 볼수 없는 행태를 저지르긴 했지만 이건 그냥 결과론이다. 전쟁흐름상 최악을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이순신은 이를 우려한 때문에 그 전력으로라도 바닷길을 막아보고자 필사적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행보라고 밖에 볼 수 없다.<ref>이 내용이 바로 그 유명한 상유십이 장계의 주 내용이다. 하도 열두척이 유명해서 열두척으로 잘해볼게염 이라고만 했다고 생각하지만, 장계 전체의 맥락상 '서해를 눌러 막아야 한강침탈도 막을수 있으니 열두척으로 전멸하더라도 막아보겠음.' 정도로 읽는게 맞다. 뼛속까지 유학자이셨던 충무공이시다보니 암만 엿같은 왕이어도 최우선으로 지켜야했다.그래서 열두척이나마.... 하고 고집피우신거다. 말그대로 여기서 죽겠음.</ref> 그런 상황에서 수군을 폐하라는 헛소리가 작렬하자 이순신은 장계를 하나 써 올린다. 일명 상유십이 장계.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 전선의 수는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고 있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얕잡아보진(도모하진?? 침범하진?? 해석은 많다. 한문음은 '불감모아의'다.) 못할 것입니다.<ref>완전 빡치신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천한 신' 이란 말은 워낙 자주 쓰이는 관용구일 뿐이고, '잘난 내가 살아있으니까 함부로 못올거요'라는, 약간은 거만해보일 수도 있는 말을 왕에게 직접적으로 하신 것이니...;; 하지만 평소 인품상 그러실 분이 아니긴 해서 '그냥 죽을때까지 막아 볼테니 그동안 도망이라도 잘 가시쇼' 정도로 읽는게 나을듯;;;</ref> 같은 상자 돌림이라도 격의 차이가 현격하다. 이연의 상하언재 와 이순신의 상유십이. 그리고 더 웃음이 나는 것은 상유십이 장계를 받아본 의심병 환자의 표정이다. 이연은 아마 왜적보다도 이순신을 씹어먹고 싶지 않았을까 ㅋ 전란중 분조와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분발한 아들 광해조차 의심해서(이것도 겁나 웃긴게 그렇게 하라고 했던게 이연이다.<ref>이래놓고 본인은 중국으로 망명가겠다고 찌질거려서 왕으로서의 체통따윈 똥딲은 휴지쪼가리가 되었다. 그나마 왕실의 명예를 지킨 이가 스무살도 안된 광해이고 그외 장성한 아들 3놈은 싸이코패스다. 임해군/순화군 두놈은 전란중에도 하도 개막장 짓거릴 해대서 백성들이 일본군에 그냥 넘겨버리는 사태까지 겪다보니, 광해 저놈도 내 아들인데 다른 아들놈들과 달리 왜저리 잘났는지 몰라서 의심했다 카더라....</ref>)오만 난리를 피운 이연이라 이순신에게도 그랬다. 명량해전 후 어사육, 주를 내리는데 이순신이 이를 받고 엄청 민망해하는 내용이 난중일기에 실려있다.(다만 충무공께선 먹었다고 기록하시진 않았다. 아마도 안드신 모양..) 모친상 중이던 이순신에게 '고기쳐먹어' 하고 어사품이라며 내리는 이연의 심리상태를 보면 아들들이 왜 다 그 꼬라진지 알수가 있다.<ref>사실 세종도 황희에게 이런 적이 있다. 황희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어사육을 내렸다. 그런데 상황이 매우 다른게, 황희는 고령으로 사직상소를 주기적으로 올렸지만 결국 윤허가 안되었다. 모친사망시에도 고령이라 세종은 진심으로 황희의 건강이 염려되어 <s>죽어버려서 일 못시킬까 봐...</s> 고기를 내린 거였다. (결국 황희는 본인 나이 팔순이 넘어 <s>조선초기에 팔순이면.... 초 장수만세하신 황희님</s> 참고로 조선왕 중 팔순 넘긴 왕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영조]]임금이다. 제위기간 52년에 82살 사망의 위엄. 세종이 죽은 다음 해에 겨우겨우 사직할 수 있었고 바로 사망.... #유정현# 과로사 수준임;;;) 그런데 충무공께서는 불과 몇달 전에 본인을 파직시키고 죽여버리겠다고 고문하고 앙앙댔던 왕이, 싸움 한번 이기니까 특별히 챙겨준다며 모친상중인 충무공께 고기를 내렸다. 말그대로 이 뭐 병.... 놀리냐??? 세종대왕과 이연은 이리 다르다...</ref> (유교사회에서 부모상이 괜한 일이 아니다. 3년간 부모님의 무덤옆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풀만먹고-부모상 중에 술먹고 고기먹다 걸리면 난리나는 거다- 사는 것이 바로 3년상이고 상제가 해야할 의무이며 그 기간동안 임금이 불러도 즐때릴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 조선조에 재위기간 짧은 왕들 중 상이 연달아 나서 건강을 해쳐 정작 재위기간이 짧은 왕들이 종종 있을 지경이다. 그 대표격이 완전체의 아드님이시자 본인 또한 완전체이신 문종. 충무공은 죄도 없이 파직되어 고문당하고 건강까지 해친 마당에 이연이 뭐 할말이 없소 라고 모양 빼가며 교서를 내려도 '울엄마 돌아가셨셈!!!'<ref>게다가 충무공 모친이 돌아가신 상황이 매우 공교롭다. 모친이신 초계 변씨 부인은 당시 굉장히 고령이시긴 하셨다. 그런데 아들 형제 중 요절한 2명을 대신해 셋째아들인 순신이 어머님을 가까이서 모시려 하다보니 여수 모처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들이 서울로 압송되고 더 이상 여수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아산의 본가로 가기위해 배를 타고 오시다가 안흥량 쯤에 내려 사망하신걸로 보인다. 충무공께선 모친의 임종을 못 지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놈 때문이다;; 여담으로 변씨부인께선 본인이 사용할 관곽을 배에 싣고 오셨다. 워낙 고령이고 병중이라 오래 살지 못하실 것은 아셨겠지만 관을 싣고 오시다니 예감이 있으셨던 듯.</ref> 한마디면 다시 그 징글징글한 통제사 안하셨어도 됐다. 그것이 조선사회다. 근데 하셨다....ㅠ) 조선 조정 파벌 싸움질은 거의 일본 제국 대본영 수준이네ㅋㅋㅋ ㅗㅜㅑ 수도 털리는 와중에도 치트공 견제 오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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