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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강했던 대마도, 그 원인은 신라인=== 신라해적들의 일본침공은 894년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869년 큐슈섬. 신라해적이 조공물을 약탈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게다가 신라해적은 일본 통 치부의 외항에 대담하게 잠입, 조공으로 바쳐진 비단을 탈취한다. 이후 일본 조정에서는 신라인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은의 산출지인 대마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화살 전쟁이 벌어졌는데 화살이 비같이 날아왔다. 적들은 모두 화살을 피해 도망쳐 돌아갔다” <부상략기 中> 45척이라는 거대한 규모로 대마도를 침공한 신라해적. 하지만 그들은 왜 그렇게 쉽게 퇴각해야했을까. 어떻게 일본조정에서는 대마도에 대한 방비를 철저하게 준비했을까. 일본 사서는 해적과 수비군의 전투를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적고 있으며, 대마도 수비군은 매우 위력한적인 석궁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 석궁은 조준이 정확하고 관통력이 뛰어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실제로 전사자들은 거의 화살에 맞았다. 860년대부터 일본은 신라의 침략에 대비해 해안가 취약 지점에 석궁을 집중 보급했다. 대마도 방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본격화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인 663년, 백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한 후 일본은 신라의 침입에 대비해 카네다성을 축성했고, 700년대부터 수많은 신라인들이 일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 신라인들은 일본 각 지역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이 집단 거주하던 곳을 신라군, 탁전군이라 불렀다. 이렇게 일본 남부 큐슈를 중심으로 신라인들이 늘어나자 일본의 중앙정보는 위기감을 느꼈고, 중앙정부는 이들이 일본과 결탁해서 큐슈의 지방호족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위기감에서 일본 중앙정부는 대마도의 수비체계를 점검하고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였던 석궁부대까지 배치했다. 예상 외로 강력한 저항을 했던 대마도 수비군과 강력한 무장의 배경에는 일본에서 세력을 확대해가던 신라인들이 있었고, 일본 내 신라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강화했던 대마도 수비대가 신라해적을 맞아 선전을 펼쳤던 것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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