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세종대왕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인간상 == {{병림픽}} 오직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배치했다. 상놈이자 원나라 혼혈인 [[장영실]]이 뭐 만드는 재주가 좋다고 엄청나게 총애했으며(사실 장영실은 애비인 이방원때부터 궁궐로 스카웃되었으나 세종이 십분 활용하였다) 문관인 [[김종서]]가 싸울 줄 안다고 북방 수비의 총책임을 맡겼다. ㄴ 장영실이 원나라 혼혈이라는건 그냥 '설'이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아버지가 소주, 항주 출신 중국인이라고 기술 돼 있다 이 때문에 세종 치세에는 모든 것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버지인 [[이방원]]이 왕위 찬탈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양녕대군]] 등 두 형은 왕위 계승권을 스스로 내던졌는데 이에 대한 죄책감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세종대왕은 자기 아버지의 죄를 씻기 위한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있었고 그 때문에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국왕이 되었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도 명군을 일컬어 자기네의 세종대왕이라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를 테면 류큐에 글을 도입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긴 [[순바준키]]를 류큐의 세종대왕이라 칭하기도 한다. ㄴ 조선 후기 왕실 이미지 쌓기용 개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헛소리이다. 양녕이 폐출된건 양녕이 [[병신]] [[개새끼|강아지]]라 그런거지 그와 효령이 양보한게 아니었다. 아들바보였던 태종이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을 정도로 양녕이 [[병신]]이라 그랬던 것. 일례로 막내 동생 성녕이 오늘 내일 할때 충녕은 약을 짓고 있었지만 양녕은 술 마시러 돌아다녔다. 결국 양녕을 내쫓을때 태종은 대성통곡을 했고 "종묘사직에 방해가 된다면 죽여도 된다"라는 말까지 했다. 태종이 먼저의 3남을 잃고(아마 자식 키우시는 분들은 아실거다. 아들 3ㅅ을 다 앞세운 심정이 어떨지를..) 겨우 얻은 넷째이자 실제로는 장남인 사람이 양녕이었다. 아들 3을 다 앞세우고는 이 아들마저 잃을까 노심초사해서 외가에 피접보내 키웠다. 금지옥엽, 말그대로 금과 옥처럼 장중구슬같이 키웠건만 애새끼가 너무나 이상해서 그 태종마저도 지켜줄 수가 없었다.(피접가서 살아 참으로 친했던 외삼촌들도 어쩔수 없긴 했지만 본인이 살아야되니 골로 보냈다.) 폐세자 당시 실록 기록을 보면 태종같은 냉혈한이 매일 눈물을 줄줄 흘리고 목이 매여 어쩔 줄 몰라했다고 한다. 결국 성녕대군 사망에 이르러 '사람의 마음을 가진 것 같지 않다' 라는 말까지 한다. 말 그대로 아주 많이 이상한 놈이다. 또한 아버지의 죄를 씻고 싶은 무의식이 있었다는데 글 쓴 놈이 세종의 마음에 들어가봤던 건지 의문이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태종이 죽여버리고 가문을 박살낸 뒤에 세종은 태종이 죽고 얼마든지 장인을 복권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슨 뜻이겠나? 아버지가 한 일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자신도 인식하고 있었단 것이다. 세종의 치세는 태종의 치세를 부정하기보단 긍정하고 거기서 더 발전시키는데에 중점을 두었고 이는 세종이 아버지의 부패한 대신들을 그대로 기용한데서 나타난다. 대신들이 부패해서 투자는 좀 들지만 그래도 산출해낸 것들은 좋으니까 기용해서 잘 써먹은 것. ㄴ 양녕이 [[병신]]인건 사실인데 그래도 양녕은 자기가 [[병신]]인 줄 아는 [[병신]]이었기에 세종이 왕위를 받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지 아비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좋게 봐줄 만 하다. 그리고 세종이 자기 생각대로 여러가지 정책들을 펼친건 다 [[존나|고추가 발딱 설 정도로]] 강력했던 자기 아버지 덕분인데, 당연히 그 [[따까리]]들을 거두는게 정치에 이로운 것 아니겠냐? 투자와 산출물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왕위 세습했다고 기존의 권력 구조를 다 갈아엎어버리면 잘도 정치가 되겠다? ㄴ 양녕이 지가 [[병신]]인 줄 아는 [[병신]]이었다고? 풋 글쓴 놈 최소 역사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 듯.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난뒤에 단종 죽이라고 세조 갈군게 양녕이다만? 양녕이 세종 상대로 역모 못한 건 힘이 없어서지(힘이 없었다기 보다 제정신 박힌 신하라면 아무도 병신을 왕으로 추대 안해주니까) 왕위에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몇 년을 집권했는데 기존의 권력구조 어쩌고 하냐. 집권 초반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거야 4,5년 얘기고 그 정도 지나면 어느정도 권력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복권이던 권력 구조 재편이건 가능함. 세종이 자기 생각대로 정책 펼친 게 가능했던게 죄다 태종 덕인 거하고 [[따까리]] 거두는 거하고 무슨 상관? 애시당초 정치에 이롭다는 이유로 따까리를 거둬야 할 지경이었다면 그 따까리들의 기득권 때문이라도 자기 생각대로 정책을 펼칠 수 없었다. 양녕은 이방원이 총애하는 첫째였으나 세자로 책봉되고 나서 공부도 안하고 사냥이나 다녔다. 한 번은 이방원이 아들 불러놓고 시험봤는데 하나도 못 맞춰서 [[존나|고추가 설 만큼]] 화가 났을 정도로 공부를 안 했다. 근데 공부만 안 했으면 되었는데 이 새끼는 지 애비 닮아서 [[성관계]]를 존나 좋아했다. 문제는 건들고 다니는 여자들이 지 큰아버지 정종이 총애하던 기생, 사대부 첩 등 일반 여자가 아닌 [[도덕]]적으로 [[존나|고추가 설 만큼]] 문제가 될 만한 여자들을 건드린다. 아들바보인 이방원은 어떻게든 이 새끼 버릇을 고치려고 했으나 사대부 첩을 주기적으로 따먹고 애까지 낳은게 들켜서 당시 실세였던 사대부들이 들고 일어나 저새끼 폐위하라고 상소를 올린다. 결국 양녕은 폐위되고 세종이 왕이 된다. ㄴ어떤 역알못이 정종이 양녕 할아버지라 적었는데 정종은 이방원의 둘째 형인 이방과였다. 그러므로 가족 관계상 아버지의 형이므로 큰아버지가 맞다(화나서 내가 할아버지 지우고 큰아버지라 수정했다). 위 위 위 놈이 [[존나|고추가 설 정도로]] 웃기는게 어떻게든 양녕을 미화하려는게 눈에 보이는데 최소 양녕 후손인 듯? 태종이 이성계 몰아낼 수 있었던 건 일단 이성계가 이방석한테 왕위 물려주려는게 신하들 눈에도 워낙 가당찮아 보이기도 했고 이방석이 막내라 정통성도 없었고 업적도 없었고 워낙 태종이 [[ㅅㅌㅊ|유능한지]]라 태종이 왕자의 난 일으켜도 신하들이 "아 그래? 씁 어쩔 수 없지"하고 납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양녕 [[좆밥|고추쌀]]이 능력도 없고 주변에 세력도 없고 인망도 없고 심지어 태종이 밀어주지도 않는데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자기 아버지와 같은 일을 저지른다고? 이 새끼는 반란이 혼자서 깃발 들고 일어나면 자동으로 되는 줄 아나보다. 당장 양녕이 깃발 들고 일어나면 동조할 [[병신]]은 있을것이며 하다못해 자기 처가도 다 망했는데 휘하 세력은 있냐? 이 새끼는 반란을 안 한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이 새끼 밑에 한 30명만 있었어도 반란 일으키다 [[끔살|거열형]]당했을 듯. 진짜 양녕 미화하는 수준하고는. 양녕은 문종 사후 수양새끼 지지했다. 그냥 태생이 멍청한 새끼야. 일화로 양녕이란 이놈이 수양한테 단종을 죽이라고 말하면서 수양이 머뭇거리니 '너같은 넘이 내 조카라니.!!!' 이러고 깠었다. 정작 지가 죽이란 사람은, 짐승축에도 못드는 본인을 죽을때까지 지켜 준 친동생의 손자였다. 아무튼 최악의 병신 형을 둔 세종이었지만 세종은 끝까지 양녕을 처벌하지 않았다.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거주지를 멀리 강제 이주시키는 정도가 다였다.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왕자리를 주려고 병신짓한 거면 세종이 왕이 된 다음에는 병신짓을 안 했어야 정상이다. 근데 세종이 왕위에 올라간 후에도 양녕은 이웃의 처를 강간해서 따먹거나 사냥 연습한다고 민간의 가축을 쏘아 죽이기도 했다. 심지어 자기 며느리를 따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졸라 미친 새끼다. 실록에 적힌 내용이라 빼박이다. 얼마나 말썽이 많았으면 양녕대군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끊이질 않았고 세종은 노이로제에 걸릴 거 같은 나머지 양녕대군 관련 상소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세종은 양녕을 크게 벌하지 않았는데, 이게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왕정시대에서는 엄청난 거다. 첫째라서 자기보다 적통있는 형이 있는데 왕이 그 형을 죽이지 않고 놔둔다? 이건 전 세계 역사에도 보기 드문 일이다. 당장 저 북쪽의 꿀꾸리우스 왕조만 봐도 형은 물론 고모부까지 죽이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왕정에서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면 죽는 게 진리다. 게다가 가만히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양녕은 졸라 말썽을 피우고 다닌다. 다른 왕이었으면 진작에 모가지 날라갔을 거다. 한 예로 소헌왕후의 상중에(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 마누라 즉 제수씨다.) 소헌왕후를 위한 불사를 치르고 있던 절 경내에서 고기를 구우니 이를 말리던 효녕대군을 비웃었다. 이때 양녕이 필살 헛소리를 하나 날리는데 바로 '나는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거늘 거리낄 것이 없다' 이다. 예의랍시곤 눈꼽만치도 없던 놈임에도 살려둔 것은 아마 세종도 형이 얼마나 병신인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죽일 명분도 충분한데 왜 안 건드렸는지는 네가 세종대왕이 아니라면 알 수 없다. 그래도 추측해보자면, 아무리 형 스스로가 병신이라 쫓겨난 거지만 자기가 형자리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있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처벌하라고 난리를 피우지만 정작 형을 죽이면 "형을 죽인, 천륜을 어긴 쓰레기"라고 뒤에서 손가락질할 씹선비들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종이 했던 일을 보면, 세종이 진심으로 원했던 정치는 고려 말부터 자기 아버지 때까지 이어져 온 그런 권력 암투를 이제 씻어버리고 진정한 유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끝끝내 형을 처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세종의 인성은 ㅆㅅㅌㅊ임이 틀림 없다. 문제는 이 양녕대군이 너무 오래 살아서, 자기 아들 문종이보다도 오래 살아서 자기 손자 단종을 내쫓는 선조반정에 결과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ㄴ 계유정난 아니냐?? 문종이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세종은 가족 복이 지지리도 없다. 가족 복...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헷갈린다. 아들을 많이 둔 것은 왕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지만 그것이 사후에 불리하게 작용했던건 맞다. 그러나 세종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들이 다 좀 많이 잘났다.(누구 아들이라고 못났겠나..) 이래저래 까이고 죽고 해서 그렇지 안평대군, 금성대군 이 사람들이 때만 잘만나서 왕됐음 적어도 임란기 선조나 인조보단 훨 잘했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뭐 적장자이신 문종은 아버지를 빼다 박았는지 거의 완전체셨다. 이런 완전체 장남이 일찍 사망하리라고 어느 아비가 예측하겠음?? 수양따윈 형님앞에선 그냥 고개숙인 동생이었을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처럼, 수양이 문종치세때도 은근 당패를 만들어 설치고 다녔다고 알고 계신 분들은 실록 읽어보시길 바란다.(문종실록은 2년치밖에 안되서 짧다.) 다만 세종께선 맏며느리 복이 극악하셨다.... 문종의 첫 부인인 휘빈 김씨는 체구가 크고 박색이어서 당대의 꽃미남 스타일(진짜다. 키도 크고, 관우 스타일의 긴 수염에, 늘씬하셨다고 하는 당대 기록이 있고, 어진도 그러했다는 후대 기록이 있다.)인 문종이 관심이 없었다. 남편이 관심이 없으니 이상한 짓(그냥 미신적인 짓거리들;;;을 말함)하다가 걸려서 쫓겨났다. 두번째 부인인 순빈 봉씨는 아담한 미인이었으나 성정이 그닥 좋지않아 문종이 싫어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대사건이 터진게, 레즈비언질을 하셨던 거다. 욕구는 있고 궁내에 남자는 내관과 남편 뿐이니 뭐... 거기다가 술먹고 행패부리는 일까지 있으니 알콜릭+레즈비언.... 이건 뭐 용서불가능한 상황이라 쫓겨났다. 마지막 부인인 이는 바로 단종의 어머니인 권씨인데 권씨는 원래 세자시절 후궁으로 승휘로 책봉되었다. 순빈봉씨 이후 세자빈으로 삼긴 했지만 단종을 낳곤 산욕으로 사망한다. 즉 생전에는 왕비인 적이 없다. 진짜 겁나, 독하게 며늘 복이 없으셨다. 며느리라도 든든한 집안 사람으로 살아있었다면 계유정난이 성공했을지 의문스러운 지점이다. 단종 즉위시 할머니도, 어머니도(심지어 문종은 마누라 문제로 넌더리가 났는지 권씨 사후 계비도 안들였다;;;) 안계셨으니... 안습 ㅠ 솔직히 부정적인 평가도 있는법이다. 노비종모법 확대시킨것땜에 백성들이 살기 힘들었음.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