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나선정벌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정벌 이후 == 진짜 안좋은것은 이 과정에서 원정 비용 전부를 조선에서 대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조선은 쌀이 모자랐기에 별 수 없이 청나라로부터 군량을 사들였으나...태반이 썩어문드러진 쓰레기였다. 원래 이 정도쯤 되면 원정이고 뭐고 때려치고 나와야 했으나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뭐다? 속국이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썩은 쌀을 씹으며 싸워야 했다. 전리품 획득조차 마음대로가 아니라 조선군 원정대 총사령관이 직접 청나라 지휘관에게 찾아가 간청해서 겨우 러시아제 수석식 머스킷 하나 빼돌려왔다. 그후 조선군은 나름대로 수석식 머스킷을 복제해 써보려고 했으나, 기술도 없었고 가격만 비쌌으며 복제품도 성능이 좋지 못해 그만두었다. 다만 조선도 아주 병신은 아니라서 무기 발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18c까지는 그런대로 기존 조총을 개량하고 또 개량해서 잘 써먹었다.<ref> 흔히 조선이 임진왜란 이후 개인화기의 정비가 서구에 뒤쳐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는 사실 편견이고 적어도 18c 까지 조선이 지속적으로 개량해 사용한 조총은 당시 서구의 머스킷과 성능에서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ref> 물론 당연스럽게도 [[효종]]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기고 돌아온 조선 원정군에게 포상 하나 내리지 않았다. 역시 [[인조]] 새끼의 후계자답다. 전쟁 나가서 개고생해도 포상 그딴 거 없는 건 헬조선 유구한 전통이니 그러려니 하자. ㄴ 포수들이 나선정벌에 나서는 대가는 베 15필이었는데 당시 기근이 들고 장인들이 일년 동안 일하는 대가로 봄에 베 1필을 받는 것에 비하면 후한 편이어서 포수들이 서로 가겠다고 해서 선발에 어려움이 있었음 [[분류:전투]]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