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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시절=== {{노예}} 아무래도 극장주가 같은 유대인이라서 나을 줄 알았는데 씨발 연봉이 부다페스트 시절보다 짜고 업무 강도는 존나 쩔었다고 한다. [[가네바야시 세이콘|세이콘]]에 굴려진 불펜투수마냥 굴려진 셈이다. 그래도 이 시절에 선배 음악가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부다페스트 시절에 브람스와도 교분이 있었고 함부르크에 와선 대지휘자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ref>바그너에게 마누라 뺏긴 NTR 피해자이기도 하다.</ref> 와 차이코프스키의 칭찬을 받았고 그 외에 영국으로 가서 지휘도 하고 그랬다. 또한 후배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브루노 발터는 말러 사후 말러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60년대까지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와 함께 말러 음악의 전도사가 되었다. 이무렵에 작곡된 교향곡이 2번<ref>흔히 부활교황곡으로 알려진 작품이다.</ref> 과 3번<ref>100분에 육박하는 존나 쳐 긴 교향곡이다. 아마 이거보다 더 긴 교향곡은 없을걸? 좀 창렬하긴 하다. 인정한다.</ref>,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등을 작곡했다. 작곡시기는 대개 오페라 시즌이 끝난 여름 휴가기간에 이룬 것이다. 이 무렵에 한 차례 이혼하고 말러에게 찾아온 나탈리 바우어-레흐너(Natalie Bauer-Lechner, 1858~1921)를 걍 말동무 겸 비서 삼아 지냈다. 두살 연상의 나탈리는 구스타프 말러의 여친은 커녕 썸녀조차 못되었다. 나중에 말러와의 결혼에 골인한 알마는 늙은 년이라고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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