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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바야시 세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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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바야시 도태콘 == {{진실}} 중딩때부터 야구했는데 존나 못해서 그냥 야구동아리 있는 어떤 공립고교에 진학. 본인 말론 돈 없어서 갔다고 하는데 지 실력 부족해서 못 간걸 돈 핑계댄다. 찌질이새끼. 거기서도 또 존나 못해서 난카이 호크스([[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 캠프도 인맥빨로 가봤지만 당연히 병신 같으니 못들어가고 죄다 탈락. 참고로 이때 당시 난카이에서 투수로 뛰던 [[김영덕]] 前 OB, 삼성, 빙그레 감독 덕분에 운좋게 갈 수 있던 건데 나중에 자기 자리 가로채고(지 주장) 삼성 감독으로 갔다고 씹어댔다. 배은망덕한 새끼. 그래도 일본을 너무 사랑한 세이콘상은 일본 사회인야구 리그라도 뛰려고 했는데 입단테스트 다 떨어지고 좆같은 팀에 겨우 붙음 ㅋ 그나마 몇달 안가 쫒겨나서 한국으로 이민옴 ㅋ 그래서 당시 한국 "아마추어"리그에서 좀 던지다가 힘들다고 때려침. 60년대 한국이 북한 베트남보다 못살때 프로리그가 잇었겠냐? 진짜 동네 공놀이 좀 하면서 그걸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노리타들은; 세이콘 선수 경력 = 사회인야구 투수 경력 세이콘은 지 메모할때도 일본어 한자 섞어서 쓰고 틈만나면 일본프로야구 후장빨아주면서 한국리그 깎아내리는데 안달이 나 있는데 자기가 일본에서 도망쳐온 패배자라는것에 대한 자격지심+트라우마로 그럴 확률이 높다. 나무위키 보면 한때 노리타들이 무슨 선수시절에도 레전드급이었다는둥 떠들고 세이콘도 틈만 나면 지 선수시절 언급하면서 뭔가 잘나간 투수인척 하는데 당시 흔했던 일본에서 도망쳐온 패배자 1이었다. 잘나가는 선수였으면 장훈처럼 남았겠지. 나무위키에선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동아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 1961년 봄, 같은 지역에 살던 재일 대한야구협회 최태환의 인맥으로 난카이 호크스 2군 캠프에서 테스트 받을 기회를 얻었다. 김성근은 이때 프로선수와 실력차를 절감했고 그들의 훈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를 했다고 회고했다. 난카이 호크스의 테스트에 탈락한 후 김성근은 사회야구팀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팀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김성근은 자신이 충분히 실력은 있었지만 재일교포 차별 때문에 사회인 야구팀에서 번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분야는 재일교포가 거의 차별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많은 재일교포들이 그런 이유로 스포츠 분야에 진출하여 성공했기 때문에 김성근의 해명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구단 사장이 협회 규정을 바꾸면서까지(일본에서 학업과정을 밟은 외국인도 일본인과 똑같이 대우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영입한 장훈의 예시로도 김성근의 주장을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일본에서 선수생활 힘들다고 한국와서 바짝 벌어볼까? 하고 뛰던 장명부가 30승 450이닝 넘게 던지던게 초기 프로리그였다. 그것보다 못한게 실업리근데 무슨 기업은행 팀의 에이스였다느니 국대였다느니... 지 새끼 데이슌과 마찬가지로 선수로서의 재능 0점이다. 22살에 투수를 때려친다. 지 인터뷰에서 지가 밝히기로는 선수시절에 맨날 양주 퍼마시고 다음날 등판하고 해서 욕 많이 쳐먹었다고 자랑했다. 얼마나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하면 22살에 투수를 때려치냐 ㅉㅉ... 인간적인 혹사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글쎄? 평균구속 120km는 나올까 싶었던 사회인야구 수준인게 당시 실업리그고 주말에만 했었는데 혹사를 시키려고 해도 혹사를 할 수나 있을까가 의문이 든다. 참고로 실업리그라는게 말 그대로 직장인들 잔치나 하는 거라서 선수들은 대부분 적당히 뛰다가 못뛸거같으면 야구 때려치고 자기 팀 모기업에 입사하는게 일반적이었다. 당시에 이런 재일교포 많아서 그 인맥빨로 야구 일찍 때려치고도 OB 코치로 들어가게 되니 그게 세이콘 전설의 시작이다. 원래부터 지 능력으로 증명한거 없는 새끼였음 나무위키에선 이런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김성근에게 이런 이미지는 의심스러울 뿐이다. 프로 1군 감독만 살펴봐도 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 한화다. 아마지도자, 2군 감독, 코치, 독립구단 합치면, 3년이상 현장을 떠났을 때가 없었다. 프로야구 태동기부터 201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감독직을 역임했다. 이중 소위 배고팠던 구단은 태평양과 쌍방울뿐이고, 나머지는 죄다 대기업 구단이다. 30년이나 대기업 구단 여러 곳을 다닐 만큼, 커리어가 화려한 사람은 절대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정말 실력은 있으나 뒷배 없는 사람이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는 장호연이 잘 보여준다. 야구판은 배경 없는 사람이 (자기들 보기에)실력믿고 나댄다 싶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김성근처럼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던 사람이 아웃사이더였으면, 야구판은 진작에 아웃사이더 천지였다. 이새끼가 재일교포 차별 빼애액거리는건 강도질하다 걸려서 총맞은 흑인이 인종차별 부르짖는거랑 차이가 없다. 상대방의 도덕심과 양심을 건드려서 지 실패담 그리고 좆같은짓에 대한 비판을 멈추려는 비열한 새끼들이고 이런 새끼들 때문에 차별이 생기는거다. 즉 이새끼는 재일교포 차별을 받은게 아니라 차별의 원인이다. 극심한 화상으로 한쪽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지경임에도 이를 악물고 위대한 야구 선수가 된 장훈 선생과 너무 비교가 된다. 솔직히 야구선수로서 고생을 말하라면 장훈 선생이 하려면 더했다. 근데 장훈 선생이 그걸로 남을 찍어누르려고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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