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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8월 노동당 전원회의== {{망함}} 이때 빨치산파가 압승했음이 확정되었다. 반김일성 세력인 연안파의 윤공흠과 서휘는 김일성 따까리들에게 비난을 받았는데 여기서 윤공흠은 개인숭배라는 핵심이 아닌, 김일성의 간부 정책을 비판하고 김일성파의 지지를 받던 최용건을 비판하는 병크를 저지르게 된다. 이는 김일성 지지자들이 다수였던 전원회의 참석자들을 자극하였고 윤공흠은 억지로 단상에서 끌려내려오게 된다. 결국 윤공흠과 서휘는 중국으로 탈주한다. 그리고 최창익이나 박상옥이 이래저래 뭐라 말하지만 윤공흠과 서휘부터 탈주한 상황에서 이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국 윤공흠, 서휘, 최창익, 박창옥은 숙청 당한다. 이를 눈치챈 소련과 중국은 피가 거꾸로 솟는 수준으로 빡돌아서 소련의 미코얀과 중국의 [[펑더화이]]를 김일성을 극딜하기 위해 보냈다. 그둘은 북한을 집단 지도 체제로 돌리기 위해 김일성이 한 조치를 몽땅 해제하라는 말로 협박을 했지만 지들 권력쌓기에는 신이 들린 재능을 자랑하는 김일성은 교묘히 자기 잘못을 숙청한 애들에게 돌려버린다. 그리고 1958년 [[중, 소 국경분쟁]]이 터지기 시작하자 김일성은 반종파 투쟁을 하겠다고 먼저 펑더화이에게 내정간섭 걸고 넘어져서 사과를 받아내 반대파들의 희망을 박살내버리고 1957년 7월까지 200여 명의 반대파 인사들을 숙청해버린다. 이때 [[김두봉]]도 실각 처리 당한다. 그리고 최창익은 벌집핏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놈이 조질 때는 훗날 [[황장엽]]이나 [[장성택]]이 숙청될 때 뒤진 사람과 수가 거의 비슷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그리고 감옥에 있던 [[박헌영]]은 이때 머가리에 바람 구멍이 나면서 남로당파도 망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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