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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위장결혼식 사건과 최규하의 대통령 취임== 이제 다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의 내용을 전개해보자.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1979년 11월 10일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 경제불황과 석유를 포함한 자원문제는 우리 국내경제에도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본인은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헌법에 규정된 시일내에 국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여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정부를 이양한다는 것을 정부방침으로 하였으며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헌법문제에 관한 한 본인의 의견을 개진한다면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현행헌법에 규정된 잔여임기를 채우지 않고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빠른 기간내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하게 들어서 헌법을 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정을 바라라는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면서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착실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슬기로운 길이며 또한 순리라고 믿습니다. 이 말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조속한 시일 내에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 선거를 치루겠다. 2.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정부 방침으로 한다. 3. 최대한 빨리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가져오게 하겠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비롯한 야권 인사들은 최규하의 담화에 반발했다. 이들이 최규하의 민주화 약속 담화에도 불구하고 반발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에 반대한다. 2. 유신잔당이 헌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즉각 사퇴하라. 1979년 11월 24일 야권의 이같은 요구에 정부가 대응하지 않자 야권이 먼저 움직인다. 전 대통령 윤보선을 주축으로 하여 재야 인사 400여 명이 서울 YWCA회관에서 위장 결혼식 사건을 계획하고 이곳에 참석하였다. 그 후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는 척 하면서 일제히 정부를 규탄하고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 등을 반대하는 시위를 개최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재야 인사들을 미행하던 경찰들에 의해 금세 진압되었다. 1979년 12월 6일 최규하가 담화에서 밝혔듯이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었고 최규하가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대통령에 피선되자 하루 뒤인 1979년 12월 7일, 1975년 2월 13일 부로 대한민국에 적용되고 있던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의결한다. 긴급조치 9호에는 개헌 논의에 대한 언급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최규하가 이 조치를 해제하여 개헌에 대한 논의가 합법이 되었으며 활발하게 진행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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