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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설명=== {{장인정신}} {{개같음}} *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이모부(포루투갈의 왕 마누엘 1세)의 딸인 외사촌 이사벨라와 결혼했다. (스페인 후계자는 펠리페 2세,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자는 남동생 페르디난트 1세) * [[펠리페 2세]]는 젊을적 결혼을 3번했는데 3명의 아내 모두 병으로 죽어버리고 유일한 왕태자조차 죽자 결국 43의 나이로 동갑인 사촌(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딸인 어린 조카 오스트리아의 아나와 결혼한다. 조카의 나이는 20살. 원래 며느리가 될 예정 이였다. 근대 아들이 죽어서 부인이...... (후계자는 펠리페 3세) <참고로 펠리페 2세는 첫번째 결혼으로 포르투갈 왕위를 가져왔고 3번째부인 아나도 결혼 10년후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 * [[펠리페 3세]]는 작은 외할아버지겸 작은 오촌 당숙어른(오스트리아 대공 카를2세)의 딸 마르가리타와 결혼한다. (후계자는 펠리페 4세) <참고로 작은 외할아버지는 동갑인 여조카 바이에른의 마리아 아나와 결혼한다.> * [[펠리페 4세]]는 첫번째 부인이 죽자 여동생(스페인의 마리아 아나)의 딸면서 외사촌(페르디난트 3세)의 딸 이면서 삼종형제자매의 딸인 여조카 마리아나와 결혼했다. (후계자는 카를로스 2세) * [[카를로스 2세]]는 그야말로 지나친 근친혼의 폐해를 다 보여주는 전형이었다. 원래는 4남이라서 계승권이 없었지만 형들이 전부 요절하면서 계승자가 되었으나 몸이 매우 약해서 6살이 되어서야 젖을 뗐고 10살 때까지 유모의 품을 떠나지 못했다. 온갖 신체 장애를 달고 살았지만 지능장애는 없어서 총신에게 통치를 맡기던 과거 방식을 버리고 친정을 시작했으나 워낙 건강이 좋지 않아서 큰 효과를 못 봤다. 외모가 기형적이었는데 키 자체는 장신이었으나 이게 허리 위가 엄청나게 거인이고 다리가 가늘고 짧은 이상한 구조라서 다리가 몸의 하중을 버티지 못해 걸어다니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1690년대 말이 되자 건강이 매우 나빠졌고 친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졌다. 카를로스 2세는 본래 외조카인 마리아 안토니아(친누나 마르게리타 테레사의 딸)였으나 요절하자 그 아들이 물려받았으나 그 아들도 요절해버리면서 후보자가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와 베리 공작 샤를, 카를 대공으로 압축되었다. 원래는 같은 가문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대공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에스파냐 귀족들이 해외 영토를 보전할 수 있는 프랑스를 새로운 동맹으로 삼아야 한다고 설득했으며 카를로스 2세도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에 앙주 공작 필리프를 후계자로 지명해고 그가 사양할 경우에는 베리 공작 샤를, 그도 사양하면 카를 대공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에 서명한다. 이는 카를로스 2세가 생전에 직접 내린 거의 유일한 결정이며 유언장에 서명한 후 1달 뒤 사망했다. 참고로 가계도를 평면에 그리면 이해하기 힘들어 입체구조로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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