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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헤르만 호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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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에 대한 그의 견해 ==== '''선 3줄 요약: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은 뵘-바베르크가 설명한 현재재와 미래재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되었으며, 마르크스의 착취론을 배제하고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이론을 적용시킨다면 우리가 투쟁해야할 대상은 부당한 권력으로 사유재산을 갈취 및 착취하는 국가이다.''' "마르크스는 본질적으로 옳았다." 미제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의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 나는 미제스-라스바드 전통의 오스트리아학파가 마르크스주의의 타당성에 대해 정확하지만 완전히 다른 설명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미제스가 마르크스주의에 그토록 철저하게 반대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호페의 또렷한 관대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다음과 같다: 호페는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적 가정을 제거하고 현실세계에 대한 그들의 분석만을 받아들인다. 이로써 1.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괴롭혀온 교활한 마르크스주의적 레토릭과 그것을 초래한 '다중논리주의(polylogism)'를 묵살하면서 2.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많은 중요한 통찰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호페의 생각이다. 호페는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지만, 그것의 다중논리주의를 완전히 거부한다. 대신에, 완전히 다른 맥락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을 통합시키는 방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보편적인 논리적 원칙으로 받아들인다.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역사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의해 정의된다; '지배계급(ruling class)'은 공통의 이익을 가진다; '계급지배(class rule)'는 착취를 수반하는 소유권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계급이익(class interest)'은 중앙집중화의 경향이 있다; '착취적 지배(exploitative rules)'의 중앙집중화와 팽창은 세계지배를 향한 지속불가능한 시도로 이어진다." 호페는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적 기초인 다중논리주의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좁은 측면인 마르크스주의 정치학과 '사회적 힘(social forces)'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주장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호페는 그것들 모두가 본질적으로 정확하다고 말한다. 호페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 착취이론은 현실세계의 분석에서는 정확하지만, 잘못된 영역에 이론을 적용했다. 마르크스주의 착취이론에 대한 호페의 재구성은 이러한 비판을 기초로 한다. 호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적용상의 오류를 신속하고 결단력있게 다룬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따르면, 만약에 노동자가 5일동안 노동했음에도 3일의 생산가치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은 착취이다. 그러나, 진실은 노동자들이 임금 계약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착취는 참으로 기이한데, 모든 당사자에게 상호이익을 가져다주고, 매일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쾌적함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이익과 자본가의 이익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노동자는 미래의 더 큰 재화와 현재의 더 작은 재화 중 더 작은 것을 받아들이는 반면, 자본가는 반대의 선호를 가진다. 마르크스는 '현재재(present goods)'와 '미래재(future goods)' 사이의 교환이 '할인(discount)'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점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은 어떠한가? 일단 지배계급이 국가권력에 대한 접근 여부에서 구별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호페는 세계를 바라보는 '오스트리아학파-자유주의(austro-libertarian, 이하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적 관점이 마르크스주의 착취이론을 실현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호페는 착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호페에 따르면, 착취는 누군가 1. 그가 '전용(homesteading)'하지 않았거나, 2. 저축하지 않았거나, 3. 생산하지 않았거나, 4. 이전의 '생산자-소유자(producer-owner)'로부터 계약을 통해 취득하지 않은 희소자원에 대한 부분적 또는 완전한 통제를 성공적으로 주장했을 때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 비추어본다면, 국가는 착취라는 업무에 전적으로 전념하는 기업이라 볼 수 있다. 국가의 착취는 피해자를 양산한다. 이 피해자들은 만약 착취없는 사회의 가능성, 즉 사유재산이 보편적으로 존중되고, 지배계급에 의해 체계적으로 침해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의식을 가진다면, 착취자인 국가를 타도해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로-리버테리언 이론에 입각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재조명하고 재해석한 호페의 설명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핵심인 다중논리주의 가정을 완전히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서로 모순되는 논리적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타고난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 이와 반대로, 호페의 접근법은 하나의 논리적 원칙 기준의 보편적 적용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의 접근법은 두 가지 요점을 가진다. 우선 미제스와 호페 사이의 표면적 차이를 명확히 설명한다. [역주: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미제스와 호페의 서로 다른 대우는 사실 표면적인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논리에 기초한다.] 또 마르크스주의 착취이론이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이념적 어젠다임을 강조한다. 호페의 마르크스주의 재구성이,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파생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을까? 현대 정치의 기초가 되는 다중논리주의적 가정을 벗겨낸다면, 많은 집단적 관계가 실제로 호페가 말한 착취의 방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간의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것이 바로 국가의 '법(law)'과 '입법(legislation)'이다. 다른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특정 인종, 특정 종교, 특정 성별, 특정 계층에게 특권적 능력을 부여하고, 이전에는 오직 애매모호한 형태로만 존재했던 집단적 연대를 확고히 구축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법이다. 서로 다른 집단의 차이는 교역을 통해 스스로 해결될 수 있지만, 국가가 그러한 관계에 진입하는 것은 집단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제도적으로 확립시킨다. 예컨대, 남녀갈등을 살펴본다면 이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만약 국가가 여성을 보조하기 시작한다면, 남성은 자신들이 차별받고 학대당한다는 인상을 받게되며, 권리를 되찾기 위한 유일하 방어수단이 조직하고 연합하는 것이라는 결론내리게 된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인종문제 혹은 성별문제에 있어 특히 폭발적이지만, 환경보호나 소수자 우대정책 등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갈등을 발생시킨다. 진정한 착취는 '국가가 보조하는 착취(state-subsidized exploitation)'이다. 마르크스는 생전에 착취의 본질을 파악해냈지만, 착취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에 의한 것이라고 잘못 진단했다. 오늘날에도 정확히 같은 오해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의 국가 착취, 즉 인종, 젠더, 종교, 격차, 그리고 환경에 대한 갈등의 근원을 잘못 진단함으로써, 사람들은 반자본주의 신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 다른 인구학적 집단이 본질적으로 충돌할 운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호페에 따르면, '완벽한 자본주의(clean capitalism)', 즉 모든 사회적 관계가 자발적인 교류와 연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체제가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갈등과 착취를 유발한다는 환상이 생겨났다. 다시 말해, 완벽한 자본주의 하에서 착취는 없다. 잘못된 판단은 종종 사람들이 인간정신의 구조에 대한 다중논리주의적 이해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역주: 오늘날 정부의 페미니스트 정책에 반대하며 젊은 남성들을 위주로 반페미니즘을 넘어서 여성혐오적 발상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으로만 다를 뿐만 아니라 정신적 구조도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마르크스가 밝혀낸 진리의 핵심인) 착취와 갈등에 대한 호페적 이해가 명확해진다면, 우리는 착취와 갈등을 파악하기 위해 장황한 설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적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논리적, 구조적 다양성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훨씬 더 직접적이고 단순한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국가 그 자체이다. [역주: 젊은 남성들은 종종 여성들이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정책을 원하지만, 남성은 보다 자기객관화가 잘되기 때문에 그런 편파적 정책에 반대하고 진정한 공정과 정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이는 분명 다중논리주의에 입각한 설명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이고 정확한 설명은 국가가 남성 열위와 여성 우위의 착취구조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에 대한 호페의 이론은, 과거의 마르크스주의 정치학과 그것의 파괴적 영향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지난 백년 동안 급격하게 발전한 사회과학계에 만연한 다중논리주의적 패러다임, 그리고 사회과학이 탄생시킨 국가의 '간섭주의(interventionism)' 기관들을 뿌리뽑고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이것이 진정으로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에서 무엇이 가장 근본적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다중논리주의와 착취이론 중에서 더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 호페는 국가와 국가의 이익에 저항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착취이론을 유지하지만, 그것의 인식론적 기초는 멀리 던져 버린다. < 한스-헤르만 호페: "마르크스는 본질적으로 옳았다." - 계급투쟁과 착취의 오스트리아학파적 재구성 > 출처 : 미제스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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