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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전=== 이시기 영화들은 심각한 관리소홀 + [[6.25 전쟁|김일성개씨발새끼의 불장난]]로 대거 소실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다. 그나마 [[한국영상자료원]]이 피똥싸가면서 옛날영화들을 복구해서 조금씩 사료가 발굴되고 있는 상태. 지금까지 발견된 사료만 모아서 설명해보면.... 헬조선에 영화자체가 들어온건 언젠지 모르겠으나 1910년 니폰진이 세운 헬조선최초의 영화관인 고등연예관<ref>훗날 '우미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우미관이 [[야인시대]]의 우미관패할때 우미관이랑 똑같은지 야인시대 본사람이 추가바람.</ref> 이 세워진걸 보면 대한제국시기에 영화가 헬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영상다운 영상의 원조라 추정가능한 것은 연극+영화짬뽕이던 1919년작 <의리의 구투>였고, 진짜 영화 원조는 일제가 만든 원숭이 후빨영화라는 <월하의 맹세>였다고 한다. 1920년대 나운규선생이 1924년 영화회사 조선키네마를 설립해 1926년 항일영화<아리랑>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터졌다. 이 영화는 순수 한국인이 스스로 만든 한국영화였기에 사회문화계에서는 한국영화의 시초로 인정된다. <아리랑>으로 대스타가 된 나운규는 1927년 나운규프로덕션을 만들어서 폐결핵으로 35세에 요절하는 1937년까지 띵작들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전해진다. 요사이 서구에서 발성영화가 들어와서 1935년 한국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제작됐다.<ref>참고로 이때 처음으로 춘향역을 맡은 배우는.... [[문예봉|무뇌봉 동무를 소개합니다!]]</ref> 그리고 [[상록수]]의 원작자가 직접 감독한 <상록수>가 나온적이 있다고 한다. ㄴ그거 만들려다가 좆본이 방해해서 못만든걸로 알고있는데 [[중일전쟁]]이후론 [[8.15 광복]]까지 수많은 일뽕닦이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중일전쟁~광복이전 한국영화의 대표작으론 1938년 [[심재설|심영]]이 주연으로 나온 한일합작영화 망루의 결사대와 무뇌봉동무가 주연을 맡은 수업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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