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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옴피의 난===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상당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룩하여 주요 가문 중 하나로 부상하였다. 메디치 가문의 일원인 살베스트로 데 메디치(Salvestro de' Medici)는 정의의 기수로 뽑힌 후 반(反)구엘프적인 개혁의 일환으로 귀족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대 아르테와 인민 평의회의 권력을 줄이는 법안을 추진하여 대 아르테 소속 실세들의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집권층의 실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소 아르테 소속인들과 도시 서민들이 메디치 측에 가세하여 대규모 폭력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가 바로 치옴피의 난이다. 도시의 하층민들, 특히 직물산업 노동자들이 주가 되어 발생한 치옴피의 난은 1378년 5월에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그럭저럭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으나, 6월부터 성난 군중들이 공화국 실세들의 저택에 불을 지르는 폭력양상을 띄게 되더니 7월에는 폭도들이 아예 정부청사를 장악해 버렸다. 이로 인해 피렌체 공화국 정부는 노동자 계급에 의해 접수되어 버렸고, 이들은 반란의 주도자인 미켈레 디 란도(Michele di' Lando)를 정의의 기수로 내세워 프롤레타리아 정부를 수립하였다. 미켈레 정부는 서민들의 부채를 탕감하고, 하층민들에게 부과된 세율을 낮추는 등의 개혁에 착수하여 피렌체의 서민층은 혁명의 달콤한 결과물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정부는 수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대립하였고 그들끼리 유혈투쟁을 벌이게 되어 쇠락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는 기존의 지배계층인 대 아르테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었다. 대 아르테 계층은 서민층의 봉기를 막을만한 충분한 무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경찰력을 대대적으로 증원했으며, 피렌체 직물 노동자들의 정치적인 입김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럽의 다른지역에서 노동자를 수입하여 이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였다. 결국 대 아르테는 프롤레타리아 정부를 무너뜨리고 혁명의 주동자 160여명을 사형에 처하는 한편, 미켈레와 살베스트로를 추방하여 피렌체 공화국을 원 상태로 되돌렸다. 비록 서민들의 정치적 투쟁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지만, 서민들은 그들 편에 선 메디치 가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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