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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독일어에는 Idealismus라는 말이 있다. 이건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데아론', 이상주의', '관념론'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니체는 이 세가지 모두에 반대한다. 특히나 니체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대하고 있으며, 가상세계와 참된세계의 구분을 허구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비판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를 플라톤 사상의 아류로 파악하여 비판한다. 또한 기독교를 하층민에 의한 문화적 운동으로 생각하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 또한 하층민에 의한 운동으로 파악하여 비판하는 입장이다. 의외로, 니체 사상에는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지만 존재론이나 도덕론을 주요한 사상으로 볼 수 있다. 니체가 형이상학을 오히려 완성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 예로,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이 유명함. (하이데거,<니체> 참조.) 정치론이나 교육론 등은 니체에게서 부차적인 사상이며 그런 측면들에서 니체는 엘리트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 허무주의(Nihilism) === 허주무의 = 니힐리즘. 니힐이란 말은 '없다'는 뜻이다. 즉,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는, '무언가가 없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저편세계'가 없다는 뜻이다. 조선식으로 말하면, '저승'이란게 거짓이란 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플라톤이 말하는 '개념세계(이데아계)' 등이 다 거짓이라는 뜻이다. 그것들이 '없다(허무하다)'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니체는 '저편세계'에 대해 허무주의자이다. 그뿐 아니라 저편세계에 근거한 가치체계를 부정한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도덕적 세계질서'에 반대한다) 대신 니체는 지상에서의 삶에 충실할 것을 말한다.(운명애 amor fati) :ㄴ니체는 "신은 더 이상 인간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신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고, 오히려 방황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ㄴ그렇기 때문에, 우리 디시인들처럼 삶을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게 보게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새로운 것이 되려는 의지가 전혀없게 된다. :::ㄴ이 사람이 말하는 허무주의는 수동적 허무주의[염세주의]에 해당한다. 니체가 말하는 적극적 허무주의[창조적 파괴]와는 정반대되는걸 얘기하고 있다. <안티크리스트> 참조할 것. "형제들이여 지상의 삶에 충실하라. 천상의 소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지상의 삶에 독을 타는 인간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참고로 니체는 언어유희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엉덩이를 믿는 자들"이라는 표현도 써서 디스하기도 했다.(독일어로 엉덩이라는 뜻의 Hinterteil이 뒤라는 뜻도 있다.) 첨언: 비슷한 말로, 불교의 '무자성'이 있다. 니힐리즘이나 무자성이나 둘 다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다. 즉, 실체라 부를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관심있으면, <나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와 <선악의 저편> 읽어봐라. ===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 말 그대로 '의지'와 '힘'을 합친 개념이다. '의지'는 쇼펜하우어에게서 차용한 개념이다. 쇼펜은 의지를 물자체로 파악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서문 참조) 니체는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의지야말로 우리에게 가감없이 알려진 것이라 말했다"라면서 비판한다. 그렇지만 의지를 근원적인 무엇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쇼펜하우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ㄴ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매우 논란이 있는 서술이다. 의지를 "근원적인 무엇"으로 본다고? 그럼 니체는 저편 세계를 끌어내린 다음 그 자리에 힘에의 의지를 가져다 놓았나? 그런 식이면 니체는 종래의 형이상학을 그렇게 비판해놓고서 자기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한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 형이상학을 했다는 비판도 어떤 서적에서는 하는데, 이는 니체를 일관성 있게 읽는 데 매우 큰 지장을 준다. ㄴ애초에 어쩔 수 없는 한계 아닌가? 현재에 대한 해석방식일 뿐이다. 철학 자체의 한계를 깨부수려 몸부림쳤으나 끝내 실패한 학자가 니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만은 깨부쉈을지도 모르지만. '힘'개념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니체가 말한 힘을 오해한다. 즉, 그것을 물리력이나 근력 완력 재력 권력 등으로 오인하곤 한다. 이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Seht mir doch diese Überflüssigen! 이 잉여인간들을 봐라! Reichthümer erwerben sie und werden ärmer damit. 그들은 더 많이 소유하지만 그럴수록 더 가난해진다. Macht wollen sie und zuerst das Brecheisen der Macht, viel Geld, 그들은 권력을 원하며, 무엇보다도 권력의 지렛대인 돈을 원한다. — diese Unvermögenden! 이 무능력한 자들은! 그보다 힘이란 자신의 관점을 유지하며, 자신의 관점과 통념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이를 새로이 해석하고 평가하여 그를 뛰어넘고 또 창조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된다. (안티크리스트, 차라투스트라 참조) "행복이란 무엇인가?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 힘이 증대했다는 느낌." - <안티크리스트; 모든 가치의 전도 제1권>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곧 창조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장 '천 개 그리고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아 참고로 예전에 한국에서 처음 이 책이 번역될 때 권력의지라는 표현을 쓴 책도 있는데 이 번역은 실수이다. 이 번역대로하면 니체는 정치철학을 한 게 된다. 오해할까봐 덧붙이는데 관점주의는 기회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 위버멘쉬(Übermensch) === 1. 위버멘쉬란, 독일말로 '뛰어넘는(Über) 인간(mensch)을 의미한다. 영국말로는 overcomer 혹은 superman이라고 한다. 어려우면 그냥 초인이라고 하자. ㄴ요즘엔 극복인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인간을 뛰어넘은 인간이 초인(위버멘쉬)이다. "인간이란 초인과 원숭이 사이에 놓인 줄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 반복해서 말하면 위버맨쉬(초인)은 종래의 인간형을 뛰어넘은(극복한) 인간을 지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버멘쉬(초인)은 종래의 도덕이나 신앙을 뛰어넘은 인간을 지시한다. 예를 들어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에 대한 니체의 글귀를 읽어보자. "누구도 이 페르시아인(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중략) 차라투스트라는 역사상 최초로 도덕을 고안해낸 인간이다. 성실성을 통한 도덕의 자기극복,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의미이다."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다지도 영리한가?' 3. 도덕에 대해서는 그쯤하고 신앙에 대해 말해보자. 신앙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다시 말해 니체에게서 '신앙'의 의미는 종교적 믿음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종교적 믿음을 포함하여, 이데올로기적 믿음 등도 유사종교로 파악한다. 이를테면 니체는 기독교 신앙, 국가주의 신앙, 공산주의 신앙, 혹은 민주주의적 이상까지도 모두 신앙으로 인식한다. 달리 말하면, 니체가 말하는 신앙이란, 인간에게서 주체적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집단적 규범 혹은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Dort, wo der Staat aufhört, — so seht mir doch hin, meine Brüder! Seht ihr ihn nicht, den Regenbogen und die Brücken des Übermenschen? 국가가 소멸하는 곳. 거기서 나를 보라,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에게는 무지개와 위버멘쉬들에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 덧붙임 ; 니체는 이상 혹은 이상주의에 반대한다. 이는 존재론이나 관념론에 대한 니체의 반감 때문일 것이다. 독일어 Idealismus는 이상론 혹은 관념론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니체에게서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 개념을 깊이있게 논하지 않는다. 4. 진화론 니체의 위버멘쉬(초인) 개념을 다윈의 진화론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생각이다. <우상의 황혼> '반(反) 다윈' 항목을 읽어보면 니체가 생각하는 '극복(혹은 진화)' 개념은 다윈의 그것과 많은 측면에서 다르다. 그렇다해도 니체가 '극복' 그 자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설정했음은 분명하다. 다윈은 정신적인 강함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이 영국적인 천박함이다. 5. 대립되는 개념; 최후의 인간(Der letzte Mensch) '최후의 인간'이란 인간말종이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형을 의미한다. 그에 따라, 힘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극복'하고 '생성'시키는 인간형인 위버멘쉬(초인)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 모든 가치의 전도(Umwertung aller Werte) === 가치전도란 기존의 미덕(virtue) 혹은 악(evil)이라 불리는 것들을 해체하고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도덕들(순결, 자비, 검소함 등) 따위는 "한 때 여러 민족들에게 억압 받던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보았다.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는 것을 '선'이라 칭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약자였으니까 지들 유리하기 위해 떠벌린 헛소리에 불과하고, 유대인들은 이런 지들식 선악을 구분해 약자인 자신을 정당화하고 보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즉, 자신들이 가난하고 힘이 약한 것을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선하고 고귀하기 때문에"라고 속이고, 다른 민족들이 풍요롭고 강한 것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악하고 천박하기 때문에"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다른 자들과 격이 다른 "숭고한 존재"로 속임으로써 힘을 키워갔다 보았다. 즉, 유대인들의 유대교랑 뒤이어 이를 계승한 기독교의 도덕은 전지전능한 신이 만든 보편적 도덕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기만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도덕이란 인간의 감각에 좋냐, 나쁘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보았다. 니체 또한 그 순간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줄 지라도 후에 그 경험이 자신에게 이롭다면 그것은 선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즉, 유대인들의 도덕은 기독교에서 광고(hyping)하는 것처럼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기준으로 만든 '실체가 없는 거짓'이라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니힐리즘이다. 선과 악도 인간이 감각이 있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인간은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엄근진|보편적인 진리처럼 알려진]] [[나뮈충|흉물스러운 가치에 휘둘리지 말고.]] 이를 부수며, [[디키충|자신의 본능에 충실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개척해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힘에의 의지), "자신"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가치"(도덕을 포함한)를 창조하라 이야기한 것이다. ㄴ 그러니까 니체의 사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도덕적이라 불리는 것들을 비판하고 배제하는 너 나 우리 디키러를 위한거다. ㄴ당나귀 말타는 소리하네..... 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임... 니체가 말하는 강한 인간은 디시 놈들처럼 자기보존에 급급한 '최후의 인간'이 아니라 자기를 발산하며 파괴하기까지 하는 신화적인 인간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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