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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 {{고인}}{{심플/북괴}} [[관구검]]의 [[옥저]]초토화이후 [[함경도]]지역에 들어온 [[말갈족]]을 견제하기 위해 [[신라]]가 [[삼척]]에 진을 두면서 처음 진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ref>[[고구려]]는 책성(現 연변 혼춘시 서남쪽 두만강가에 있는 온특혁부성)을 동부욕살의 소재지로 승격시키고 함경도지역에 동부욕살휘하의 여러 군을 설치하여 이들을 견제한 것으로 보인다. </ref> 이 북진은 삼국통일이후 잠깐 폐지되었다가 선덕왕 치세인 782년, [[황해도]]개척을 위해 [[평산군|대곡군]]에 패강진(浿江鎭)을 두면서 재설치되었고 828년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淸海鎭), 829년 [[남양군|당성군]]에 세워진 당성진(唐城鎭), 846년 [[강화군]]에 설치된 혈구진(穴口鎭)등이 신설되었는데, [[후삼국시대]]에는 모두 [[왕건]]의 휘하세력이 되었다.<ref>단, 패강진과 북진의 경우 [[닉 퓨리]]의 기간세력으로 있었지만 닉 퓨리가 뒈-짖하고 왕건의 세력으로 들어옴.</ref> 왕건이 [[평양]]을 재건하고 [[발해]]멸망이후 그지역에 무혈입성한 [[여진족]]들을 축출하고 [[요나라]]와 여진의 침공을 막기 위해 [[평안남도|패서]]에 12개진을 신설하면서 한국전역, 그중에서도 [[평안도|북계]], [[함경도|동북면]]에 빠르게 확산되었다<ref>후술할 29개진중 [[백령도|백령진]]만이 남한지역에 있었다.</ref>. [[예종#고려 16대왕 예종|예종]]시기 5도양계가 정비되었을 때까지 총 29개진이 설치되었다. 초창기에 진은 진두(鎭頭)라 불리는 진장(鎭將)이 통치했지만 이후 진장<ref>7품이상의 관료</ref>, 방어진(防禦鎭)한정으로 방어진사(防禦鎭使, 5품 이상)이 관리하게 되었다. [[조선]]의 경우 1397년 5월부터 1398년 10월까지 일시적으로 도를 폐지했던 몇개월동안 도가 있던 자리에 2~4개진을 설치, 첨절제사(僉節制使)를 그곳에 파견시켜 지역의 군사적 기반을 마련시켰다. 하지만 도가 재설치되면서 주인이 도절제사로 바뀌었고 고정된 영을 이루게 되었다. 1421년, [[세종대왕|갓종머앟]]님이 진관체제를 시행하면서 군사기지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의 군제가 [[제승방략]]으로 바뀌면서 그지역에 대한 이명 비슷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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