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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 헌병무단통치 기간이라고 부른다. 조선인들을 야만스럽게, 물리적으로 다루면서 짐승 취급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동인도회사에서 영감 받고 세웠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서 토지조사사업을 전개했다. 이 회사는 1908년에 세워진 건물로, 한일합방 이전에 세워졌다. 물론 1907년 [[정미조약]]으로 인해서 머한제국은 이미 껍데기만 남은 나라가 되어부렀기 때문에 그런 건 큰 의미가 없다. 러일전쟁에서 이기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청나라 때와 달리 러시아가 미친 척을 하면서 한 판 더 붙자고 말하면 일본은 그냥 좆되는 거였다. 물론 러시아는 더 빨리 멸망했겠지만. 그래서 일본은 러시아를 벗겨먹을 수 없게 되면서 그 대신 유일한 전리품 조선을 빨아먹는 거 외엔 답이 없었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에 10년치 정부 예산을 당겨서 써버렸고 실제로 이때 진 빚을 1986년에야 다 갚았다는 썰이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빼앗기에 정신이 팔린 터라서 교육, 언론에 대한 통제는 일제강점기 중 가장 약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비교적 약했다는 것이지, 아예 안 했다는 건 아니다. 참고로 일제에게 헌병 경찰제와 교원에게 칼 차게 하라고 귀띔해준 게 이완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는 본토의 경찰들도 차게 된 걸로 봐서는 딱히 조선인들이라고 한 건 아닌 듯하다. 1918년에 터진 일본 쌀 폭동의 기록화를 보면 거리의 도망 치는 경찰들이 칼을 패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간극이 커도 7~8년 이상 차이가 안 난다는 것. 대상 불문하고 위압감을 느끼게 하려고 경찰들한테 지급한 걸로 보임. ㄴ 엄밀히 말하면 헌병 경찰 제도는 프랑스에서 시행했던 거였고 지금까지도 운영하는 국가 헌병대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좆본이 개방 당시 유럽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각 나라의 여러 제도를 참고했는데 이게 프랑스 출처다. 물론 프랑스는 봉건제 당시의 기사 혹은 영주 등 각 토지의 소유자가 그 치안 또한 맡게 되는 수백 년을 이어온 유구한 전통과 대도시 및 중요 도시는 경찰이 맡고 지방은 군대와 경찰 사이의 무언가인 국가 헌병대가 맡아서 경찰이 한 지역에 알을 박고 지역 유지들과 싸바싸바하여 부패하는 걸 막으며 국가 헌병대는 군대처럼 잊을만하면 인사 이동이나 주둔지 이동을 통해 그러한 점에서 최대한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만든 결과물이다. 실제 아직도 이런 군대와 경찰 사이의 조직, 즉 준군사 조직을 보유한 국가들은 지방의 부정부패 근절에 아주 적절하게 써먹고 있다. 근데 좆본이 수입하면서 다른 기능은 어디론가 나가리되고 닥치고 주민 통제에만 올인한 이단적인 변형체가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옆 동네 인민 무장 경찰도 티베트나 위구르에서 뭔 일만 나면 갈아엎는 걸 보면 역시 아시아 새끼들은 뭘 해도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한다. 교원들도 제복 입고 칼 차는 건 내지도 마찬가지였는데 군국주의의 원조였던 프러시아가 문관들한테도 군복 나눠주던 전통을 배워오면서 그렇게 된 거라는 모양. 게다가 인력풀도 씹창이어서 창설 당시에도 본토 경찰 중 지원제가 아니라 추천을 받아 조선 경찰을 구성했다. 근데 그 추천 권한을 가진 경찰 높으신 양반들이 당근 양질의 인력은 남겨두고 말썽쟁이 골칫거리들만 쏙 뽑아 떠넘겼다. 즉 인성왕이신 분들이 추천의 형식으로 발령 받았으며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강압 정책을 방침으로 삼았기에 초창기의 악명은 쩔어줬다. 초딩 세대는 한 6학년 즈음에 잘 만든 가구를 헌납 안 한다고 이토라는 순사 새끼가 멀쩡한 사람 머리를 터트려 죽여버린 소설을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뱀발로 정작 왜경으로 악명이 높은 야인시대 미와는 기병 출신으로 기병대로 왔다가 조선에서 경찰로 전환된 특이한 케이스라는 듯. 우리 증조 할머니는 14살에 시집왔다가 이제 막 신혼 벗어날 즈음에 증조할아버지가 헌병 새끼한테 끌려가서 매 맞고 매독이 올라서 돌아가셨기에 2001년 99세로 타계하실 때까지 80여 년을 독수공방 하시며 남편 없이 우리 할아버지를 키워내셨다. 씨발롬들. 한 술 더 떠서 우리 할머니는 정신대 안 끌려가려고 할아버지한테 시집 왔었고... 문화 통치 시절 없어졌지만 일제가 중일전쟁 일으키고는 국가총동원령(1938)을 때리고 전시 체제로 들어갔기에 이때는 헌병 경찰이 아닌 그냥 헌병 새끼들이 반도 뿐만이 아니라 열도에도 배치됐다. 얼마나 지랄 맞았는지 자국민들에게도 켄페이타이라고 하면 ㅉㅉ 노답 새끼들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다. 헌병은 본토인 일본 제국 내지에서도 특별 고등 경찰과 함께 양대 악의 축으로 일본인들에게서도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일본 제국이 패망하자마자 일본 국민들도 나라 망한 건 속상한 일이긴 하지만 저 새끼들 족칠 수 있게 된 건 정말 다행이라면서 줘 패고 다녔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 헌병은 가슴에 병과장 배지를 달아서 표시하는데(완장은 본래 헌병 보조원(군무원)한테 달아주던 게 헌병까지 차게 된 거)당근 집에 올 때 그거 다 떼어버리고 왔지만 옷에 난 배지 구멍 보고 알아 맞춰서 줘팼다고 한다. 08년도 쯤인가에 나온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인가 하는 영화에 본토 배치 헌병 출신인데 땅개로 전환되어서 이오지마에 전출된 병사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병사들도 저 새끼 헌병 출신이래... 노답 ㅉㅉ 하는데 알고 보니 상관과 야간 거리 순찰 중 가정집에 쳐들어가서는 시끄럽게 짖는 개새끼한테 총으로 쏘라고 상관이 명령하는 걸 허공에 대고 쏘고는 죽였다고 보고했는데 씹눈새 개새끼가 짓는 바람에 상관한테 맞고 전출을 당한 거였다. (개 주인인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그 남편이 아끼던 개라며 아내와 자식들이 통사정을 해도 짤없이 기어코 죽인다. 저 상관은 총성이 개소리보다 훨씬 시끄러운데 총 쏘면 마을사람 다 깨는 것도 모르나 보다. 병신 새끼.) 1960년도에 나온 맨발의 겐에서도 초반부에 등장한다. 거리에 처칠 루스벨트 얼굴을 그려놓고는 지나가는 시민들 쫓아가서 왜 안 밟고 가냐고 지랄을 하는 건 애교고 짐 까서 먹을 거 나오면 밀수품이라고 압수를 해가는 새끼들로 나온다. 주인공 가족은 뺏길 바에야 먹자고 눈앞에서 미친 듯이 집어먹지만 결국엔 쳐맞고 뺏긴다. 같은 나라 국민들한테도 이렇게 묘사되는데 안 봐도 뻔하지... 갑오개혁 때 정식으로 폐지되었던 태형을 조선의 아름다운 문화라고 되살렸다. 이른바 조선태형령. 벌금형에 처해졌는데 못 내면 몸으로 때우라고 해서 맞고 나와야 했다. 더 엿 같은 건 같은 죄인이라도 조선인만 맞았고 일본인이나 외국인은 안 맞았음. 또한 즉결처분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순찰 다니는 헌병들이 언제든지 지나가는 조선인을 때리는 게 가능했다. 적당한 구실만 만들면 땡이었으니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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