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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압군의 북상과 기나긴 추격전 == 이에 세조는 도총관 강순을 진북대장(鎭北大將)으로 임명, 평안도 병사 3천을 떼줘서 [[영흥군|영흥]]으로 나아가게 하고, 병조참판 박중선(朴仲善)을 평로장군(平虜將軍)으로 임명, [[황해도]]병 500명을 줘서 [[문천군|문천]]으로 들어가게 했으며 장군 어유소에게는 경병 1천을 줘서 구성군을 돕도록 했다. 이들의 지원을 받은 구성군은 5월 15일 [[회양군]]으로 이동했다. 세조는 항복하면 [[유혈사태]]는 없을 것이라며 회유책을 쓰면서 반란군 수뇌부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6월 1일, 구성군이 철령을 넘어 [[안변군|안변]]으로 들어갔을 때, 허종은 영흥으로 들어가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이시애는 200을 이끌고 마곡역에서, 이시합은 홍원의 하탄동에서 진압군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시합이 갑사 출신 차운혁(車云革)에게 잡혀서 위기를 겪나 했지만 바로 탈출에 성공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이후 반란군은 함흥, 진압군은 영흥에 주둔하여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이에 세조는 회유책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뚝배기를 깨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조의 분노에 대해 보고 받은 이시애는 갑자기 함흥에서 철수, [[이원군|이성]] 다보동으로 탈주했다가 북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북청은 진압군과 반란군의 피 터지는 싸움 때문에 헬게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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