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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면적 배경(실질적 배경) ==== 당시 국제적 상황은 대한민국이 혈맹을 자처하던 동남아의 공산주의 최전선인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패망하고, 섬나라이지만 상임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이 퇴출당하면서 오늘날 국가도 아닌 유사국가 신세로 전락한다. 반면 중공이 중화민국을 대체하여 중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물론 당시 미국이 소련 견제를 위해 중공을 밀어준 건 알지? 그런데 그렇게 밀어준 우리 중꿔가 지금 와선 G2를 참칭하며 미국한테 개기고 있다. 이게 새옹지마다. 물론 당시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는 소련과 중국 사이를 이용한 미국의 외교 전략일 뿐이었다. 한국은 중공과 미수교한 상태였으며 6.25 때 중공의 행패 때문에 영향으로 사이가 매우 나빴다. 그렇기에 아무리 중공이 미국과 친하다고 해도 한국에게는 엄연한 적국이었으며 한국에게는 "미국이 소련, 중공과 합의해서 아시아에서 물러나면 어떡하지?"라는 공포심이 생기던 시기였다. 실제로 닉슨은 미군 철수를 계획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한국의 우방국은 [[중화민국]], [[베트남 공화국]], [[필리핀]], [[일본]] 정도였는데 중화민국은 UN에서 퇴출당하고 사실상 유사국가가 되어버렸으며 [[베트남 공화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패망했다. [[필리핀]]은 내전이 터져서 지들끼리 싸운다고 정신없었다. 그리고 [[일본]]은 전쟁이 금지된 나라이다. 사실상 미국이 빠지면 아시아에서 한국을 [[소련]], [[중공]]으로부터 지켜줄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자강론이 대두되며 [[자주국방|미국이 없더라도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으며 군국주의화가 진행되었다.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려고 했던 시기도 딱 이때였다. 또한 [[7.4 남북 공동 성명|당시 남북 간에 화해 뉘앙스]]는 국력 차이를 이용한 시간벌이일뿐이었다. 이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해 고기 방패 정도로 생각했기에 지원한 수준은 딱 공산 폭동이 일어나서 망하지만 않을 정도로 간단한 농산품을 나눠주는 수준이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 [[소련]]이 북한에 퍼준 건 동독 수준 이상이었다. 따라서 이 당시만 해도 북한의 국력과 경제력은 한국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 당시 [[김일성]]은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중공]]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경제 지원금들을 경제 발전에 사용할 생각은 안 하고 전부 군사력 증강에 때려 박았고 그 결과 순수 군사력은 북한이 한국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에 비해 당시 한국은 군사적 투자보다는 사회 기반 시설 건설 등 내부 경제 성장에 모든 걸 몰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공백을 남북 화해 분위기를 만들어서 시간 벌 생각이었다. 아마 이게 유신 헌법이 통과하게 만든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때 김일성 병신이 경제 개발을 1도 안 한 덕분에 북한은 이후 [[고난의 행군|처참한 대가]]를 치르지만. 쉽게 말해서 남들 심시티 할 때 북괴 혼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꼴이다. [[김일성|무능한 자]]에게 돈을 투자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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