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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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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카의 반란과 하기아 소피아 건설 === 이리저리 내정에 안정되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이제 외부로의 확장을 목표로 하려고하는데 이젠 '니카의 반란'이 터진다. 자세한 전후사건은 생략하고 기본만 설명하면 이렇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선 전차시합이 유행했는데 대표 팀이 녹색파와 청색파가 있었다. 각각 한명씩 이 두 팀의 기수가 유죄 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을 받아야하는데, 어찌저찌 구사일생했고 또 마침 그 사형장에있던 사제들이 이 두 기수를 구해 교회로 데려가고 이에 당연하게도 군대가 나서서 교회를 포위하자(교회는 성전이라 무기 가지고 못 들어가고 폭력 쓰면 안된다) 이에 두 팀이 황제한테 두 기수를 사면해달라 요청한다. 당연하게도 황제는 이딴 개소리를 들어줄 이유가 없었기에 무시했고, 이렇게되자 두 팀이 폭동을 일으켜 황제를 죽이려 시도하고(실패한다) 도시를 박살내기 시작한다. 이에 유스티니아누스는 깜짝 놀라 요구를 들어줄 터이니 진정하라 했으나 이젠 음식 나중엔 새 황제를 요구하며 폭동은 더욱더 거세져갔다. 결국 유스티니아누스는 재화와 몇몇 측극들을 대동해 도주하고 멘탈이 박살났는지 퇴위까지 진지하게 논의하나가 테오도라의 '왕좌에 앉아 죽는게 평민으로 사는것보다 낫다' 라는 말에 멘탈을 추스르고 폭도들을 진압하기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우선 벨리사리우스와 문두스(장군들)에게 명을 내려 군사를 소집하고 최측근이자 환관인 나르세스에게 꿍쳐온 돈을 청색파에게 먹여 녹색파와 분열을 일으키도록 한다. 본디 청색파였고 청색파의 안배를 여러차례 봐주었지 않냐며 또 옹립된 황제는 녹색파라며 이간질 시켜 청색파의 일부를 해산시킨다. 이후 벨리사리우스와 문두스에게 옹립 황제를 납치해오라 명했지만 경비가 너무 삼엄하여 실패하고 결국 군대를 동원한 진압에 나서고 하룻밤 동안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결국 폭도들은 약 3만의 사상자를 내며 대패하고 뿔뿔이 흩어지며 니카의 반란은 끝을 맞이한다. 반란의 종결 직후 유스티니아누스는 폭동으로인해 손상된 도시의 재건에 나섰고, 폭동으로인해 파괴된 기존의 대성당을 개축하여 현재의 이스탄불 하면 생각하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건설케한다. 이렇게 반란 문제도 어찌저찌 수습한 유스티니아누스는 과거 로마 약탈의 복수를 명분으로 전 로마령 북아프리카에 세워진 반달 왕국의 재정복을 계획하나 때마침 반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이가 동로마식 기독교를 신봉하고 친 로마적 인사라 흐지부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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