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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고조선 다음으로 오래된 왕국이지만 고조선 못지 않게 기록이 없다.<ref>사실 삼국시대 이전에는 기록이 대부분 부실하다.</ref> 기원전 5세기 부터 왕의 칭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형사취수제와 12월 영고의 풍습으로 보아 수렵이나 유목민족의 습속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성곽과 궁전 감옥을 보유했다고 한다. 우가, 저가, 마가, 구가라는 왕을 뽑을 수 있는 선제후 세력인 4가加가 있었고, 이 가들은 사출도를 다스렸다. 이 사출도와 더불어 왕이 다스리는 지역을 합쳐 중앙 5부라고 불렀다. 왕권이 약하던 시기로, 애초에 선제후들이 왕을 뽑은대다가, 흉년이 들면 왕의 모가지를 따버렸다. 여기서 왕의 제사장적인 성격 역시도 유추 가능하다. 말, 주옥, 모피를 생산했다. 1책 12법<ref>1을 훔쳤다가 걸리면 12로 갚는 법</ref>과 우제점법<ref>전쟁 터지면 소 잡아서 소 발굽으로 점 치던 것</ref>으로 유명하고 역법으로 은력(은나라의 달력)을 썼다. [[순장]]과 [[후장]]의 풍습이 있었고 죽은 사람에게 옥갑을 넣어주었다고 전한다. 계급은 왕과, 그 밑의 가. 그리고 그 밑에 부유층인 호가 있었으며 그 밑에 하호라는 피지배층과 노비가 있었다. 법체계는 고조선의 8조법과 유사했다고한다. 기원후 3세기 경에 [[선비족]]에게 개털리고 반쯤 망했다가 고구려한테 기원후 6세기 초쯤에 합병당해 완전히 망했다. 기록은 별로 없지만, 이후 삼국시대의 2개 국가인 고구려와 백제가 스스로를 부여의 계통이라고 자처했던 만큼, 한국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언어학적으로 [[고립어]]인 [[한국어]]의 원본이 되는 말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언어적 계통 상으로 고구려, 백제를 거쳐 일본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일본제어]]와 [[한국어]]를 묶어서 부여어족이라는 어족을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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