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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오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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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여파 == === 조선 === 당연히 유교탈레반 씹선비국가였던 조선 정서상 아버지의 무덤을 웬 미친놈이 파헤쳤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었고 코쟁이 양놈들은 애미애비도 없는 개씹새끼들이라는 여론이 일었고 사건의 당사자였던 흥선대원군은 눈깔이 뒤집혀서 3년 뒤 신미양요까지 당하자 그때부터 척화비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천주교 박해가 더 심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남연군은 왕이었던 고종의 할아버지가 되는데 왕의 할아버지 묘가 파헤쳐졌다는건 조선 백성들의 자존심에도 어마어마한 상처가 된다. 당장 입헌군주제인 현대 일본에서 어떤 외국인이 [[히로히토]] 무덤을 파헤쳐서 시체를 인질로 삼으려고 한다면 온 일본 국민들에게 규탄을 받을 일이다.(근데 히로히토 씹새끼가 한 짓을 보면 그새끼는 부관참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새끼이긴 하다) 물론 오페르트의 병신짓은 직접적 원인이고 흥선군의 쇄국은 양반들의 민심을 회유하려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흥선 집권기 초중반에는 양반들 존나 조지고 다녀서 권력이 위태해졌는데 이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었고 당백전으로 내수시장이 작살나자 시장개방을 보류해두기 위해서 쇄국을 결정한 것도 있었다. === 독일 및 서양 반응 === 무덤을 파헤친다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납할 수 없는 미개한 짓이기때문에 독일에서도 욕을 존나 쳐먹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은 유대인이었는데 유대인 혐오 감정이 심해지던 근대 유럽이었으니 오죽하랴. 이후 본국인 프로이센에 송환되어 무덤 도굴과 수군 제독 사칭죄의 2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무덤 도굴은 불기소 처분이 났으나 수군 제독 사칭죄가 인정되어 감빵에 갔다. 근데 이놈은 뻔뻔하게도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이라는 책까지 발매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다르게 반성하는 느낌의 책이라고. 게다가 이놈이 유대인이었기때문에 유대인 혐오증이 더 심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과연 유대인이나 할법한 짓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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