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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인용문|'''13세기에 몽고의 기병이 폭풍처럼 유라시아를 석권할때, 그들은 오직 남송에서 가장 격렬하고 지속적인 저항을 받았다. 1235년 원나라 군대가 처음 송을 공격했을 때부터 1279년 광동 애산崖山 전투에서 승상 육수부가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을 때 까지, 장장 40여 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여 몽고의 몽케 칸도 남송의 합주성에서 전사하였다. 장원 출신의 재상 문천상을 중심으로 한 남송의 사대부들이 최후의 궁지에서도 혈전을 벌이며 송 황실을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은 송 왕조가 3백 년간 사대부들을 우대한 것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었고, 송대 문관정치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한 것이기도 했다.'''|진정(金諍), 중국 과거 문화사 中}} {{인용문|''' "역대 이래 몸을 던지며 나라에 순국한 자는 유독 송 말에 많았다. 패망을 구하진 못했다고 해도, 요컨대 나라가 사대부를 양성한 보람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 |청나라의 고증학자 조익趙翼. 이십이사차기에 송을 평가하기를.}} 북송과 남송을 합하여 송대는 중국사 통틀어 최약체로 평가를 받는다. 황조의 성립과정도 [[군벌]]들을 제어하는게 제 1목표일 정도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관이 우대받고, 지방군이 약화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산 전투에서 보여준 남송 정부의 결정과 행동은, 비록 그 결과가 비극이긴 하나 송의 허약한 군사력과는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 중국사를 떠나 세계사 전체를 보아 살펴도 한 나라가 망할 때 그 국가를 이끈 지도부가 이 정도의 결기와 각오를 가지고 행동한 사례는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선양을 받았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왕조를 멸망시킨 전대의 황족까지도 국가와 운명을 함께한 사례는 더더욱 말이다. ㄴ 세계사 뒤져보면 이렇게 끝까지 항전하다 멸망한 사례 하나 더 나옴. [[비잔틴 제국]]이라고. 애초에 세계를 털어먹고 다니던 몽골군에게 이렇게 끝까지 개겨가며 악착같이 한족의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한거 자체가 진짜 대단한거다. 당장 [[서하]]랑 호라즘은 몽골의 침략에 그대로 짓밟히며 개털려나갔고 러시아도 신나게 밟혔다. 중앙아시아로 진출한 몽골군은 셀주크 튀르크, 아바스 왕조와 맞다이를 까며 칼리프의 모가지를 따고 당시만 해도 세계적인 도시였던 바그다드를 개박살내서 잿더미로 만들었다. 근데 남송은 무려 44년을 뻐겼다. 서하는 칭기즈 칸이 직접 유언으로 서하인을 지구에서 삭제하라고 한 덕분에 칭기즈 칸에게 한번 밟히고 칭기즈 칸 사후에 더 밟히며 서하인이라는 존재가 말살당했고 호라즘 왕조는 몽골과 접촉한지 2년만에 제국이 박살났다. 폴란드도 몇번 깨졌고 러시아의 크고 작은 공국들도 몽골에게 박살났으며 헝가리도 간신히 버텨서 몽골이 정복 포기하고 돌아가서 살아남았지 안 그랬음 끝끝내 박살날 위기였다. 그런데 남송은 동맹국도 없이(이때 고려도 쳐맞고 몽골에게 기는 중이라 누굴 도와줄 형편이 안 됐음) 44년을 버텼고, 대부분의 중신들이 항복하지 않고 남송의 신하로써 죽음을 맞이했다. 항복하지 않고 끝끝내 남송과 운명을 함께한 남송 최후의 군대와 신하들. [[송태조|송태조 조광윤]]에게 선양한 이후 송 멸망까지 충성을 바치며 남송과 운명을 함께한 후주의 시씨 가문. 패배하고 사로잡혔지만 쿠빌라이의 설득을 거부한 뒤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문천상(양양성 전투 이후 몽골군에 사로잡혔다. 이 사람의 운명도 기구한데, 애산에서 자신이 충성을 다하던 황조와 백성들이 스스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걸 몽골군의 진영에서 보고 있었다. 이후 4년 뒤 수많은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남송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고 순국한다.) 어린 황제에게 최후까지 교육을 마무리 지은 뒤 가족들에게 나라와 함께 죽을것을 명하고 황제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육수부. 다시는 왕후장상의 씨로 태어나지 않겠다는 처절한 유언을 남긴 송소제, 황궁과 거처를 모조리 불사른 뒤 남아있는 배를 모두 묶어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던 남송의 마지막 군대. 그 남송의 마지막 군대를 끝까지 이끌며 어떻게든 포위망을 돌파하여 해릉산까지 나아간 후 후일을 기약하며 빠져나가려 했으나 폭풍우를 만나 전멸하며 하늘이 정녕 대송을 망하게 하려면 우리 군대를 모조리 바다 속에 가라앉게 하라는 눈물겨운 유언과 함께 바다에 수장된 장세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장세걸 휘하에서 종군하였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식들과 손자를 남긴 주씨 성의 한 노인까지. 이 주씨 성의 막내 외손자. 주중팔, 다른 이름으로는 명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 주원장은, 애산 전투 이후 90년이 지났을 무렵, 오랑캐의 나라 원나라를 무너트리고 '''한족의 국가 [[명나라]]를 다시 세우게 된다.''' {{각주}} [[분류:중국]][[분류:역사]][[분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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