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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열두삼천리벌'이라고 불렸던 비옥한 안주평야를 기반으로 본 지역의 주 산업이 되었다. 농경지 면적은 해방 이전(연도 불명) 313.97㎢로 전체 면적의 45.35% 정도를 차지하여 경지면적이 평균적으로 35% 수준이었던 평남 내 타 지역보다 높았다.<ref> 위의 책, 1989.6, 제1장 지리개관-제2절 면적, p.4.</ref> 1938년 통계에 따르면, 안주군 주민 15,751세대 90,261명 중 농업 종사자는 10,943세대(69.47%),66,686명(73.88%)에 달했다. <ref> 위의 책, 제5장 경제, p.240. 이하 안주지방 업종별 세대 및 인구는 본 페이지를 따랐음. </ref> 특히 쌀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연 생산량은 일제강점기 기준으로도 약 20만 석에 육박, [[평원군]]과 함께 도내 수위권을 다투었다. 농업생산량을 기반으로 부농(富農)도 많이 거주했다. 안주에서 난 쌀은 철도편이나 청천강 수운, 황해 연안 해로 등을 통해 [[평양]],[[진남포]],[[박천]],[[개천]] 등지로 반출되었다. 하지만 안주 농업에는 문제점도 적지 않았는데, 미곡 대다수가 진남포를 거쳐 일본 본토로 수출의 탈을 쓰고 수탈당하는 정도가 심했고 1926년에는 이웃 [[평원군]]과 함께 일제가 쌀 증산 목적으로 지주들에게 수리(水利)조합의 시설비, 치수(治水)사업비를 떠넘기고 도시발전사업 비용도 전가하는 폐단이 있기도 하였다. 이는 지주들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ref> 위의 책, 제5장 경제-제1장 농업, p.21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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