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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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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후== ===롯데 자이언츠 시절=== 롯데 자이언츠 신인 중 역대 2위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을 정도로 신명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지만 프로생활 초반기에는 [[박정태]], [[김민재]], [[조성환]] 이라는 베테랑 내야수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손민한]]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 암흑기를 상징하는 선수로써, 손민한은 긍정적 의미의 상징이었지만 신명철은 그 반대였다. 어떻게 보면 롯데 자이언츠 시절 그는 매년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던 선수였다. 단지 그 꾸준함이란게 매 시즌 1할 후반대~2할 초반대 타율, 한 자릿수 홈런, 지옥불맛의 득점권 결정력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파일:신명철새우버거.jpg]] 이 시절에 롯데리아로부터 새우버거 열흘치 쿠폰을 받았다는 짤이다. 2004년 들어와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나 싶었는데 얼마 못가 부상으로 시즌을 접게 되고, 2005년 시즌에 비로소 주전다운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다만 이때의 활약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신명철이 지금까지 해오던 수준에서의 활약이다. 2할 중반대의 타율과 한 자릿수 홈런, 30개 내외의 타점 등등… 당시 주전 유격수였던 [[박기혁]]과 함께 타석에 나오면 롯데 팬들이 과거의 박정태&김민재 콤비를 그리워하게 만들 정도로 안습의 타격을 보여주었다. 급기야 2006시즌에는 타율이 1할 중반대까지 곤두박질치고, 롯데 팬들은 신명철에 대한 기대를 접어가고 있었다. 2007시즌 중반에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투수인 [[강영식]]과의 1:1트레이드가 성사되며 팀을 옮기게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강영식]]과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팀을 옮겼다. 서로 잉여자원 맞바꾸기 성의 트레이드였다. 당시 [[강영식]]은 '''[[권혁]]'''에게 밀려 잉여가 된 상태라 삼성 입장에서는 좌완 스페셜리스트로서의 활용 가치도 미미했다. 그리고 당시 삼성의 내야에는 베테랑 2루수 [[박종호]]의 부상, 내야수 최고 유망주였던 [[박석민]]의 상무 입대에 의해 거의 경쟁이 없었다시피 해서 곧바로 주전 2루수로 기용되기는 했는데… 역시나 명철신은 명철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언제나 해오던 만큼'만' 활약했다. 그러나 삼성 이적 이후 프로데뷔 후 첫 한시즌 100안타를 기록하며 롯데 시절의 미완의 루키에서는 한 단계 진보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8 시즌에 곧바로 DTD하는 쥐마냥 롯데 시절로 회귀본능을 발동하며, 다시 1할 후반대 타율로 처박혀버렸다. 다만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는 4할이 넘는 타율을 보여주며 활약했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는 남겼다. 2009 시즌에 드디어, 꾸준히 주전으로 기용됨과 동시에 우수한 성적을 보이며 리그 초반에는 당시 리그 2루수 중에서는 단연 원탑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50경기 시점까지 3할+ 타율을 유지하자 처음에는 단순한 반짝이라고 생각했던 팬들까지 드디어 신명철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라고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 프로데뷔 후 첫 두자릿 수 홈런을 달성하고 20홈런 고지까지 달성하며 삼성은 박종호 이후 간만에 공수만능 2루수를 얻었다며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타율은 후반기 들어 하락해 3할 타율이 깨졌고, 그 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3할 5푼 타율-50+도루를 달성한 [[정근우]]와 신인 프리미엄을 받은 [[안치홍]]에게 밀려 3위에 머물렀다. 2010 시즌에도 전년도의 대활약은 플루크시즌이 아니라 진짜 기량이 급성장한것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좋은 활약을 이어나갔다. 급기야 OPS에서 정근우와 안치홍마저 제치고 국내 2위에 오르며(1위는 [[조성환]].) 명실상부 국내 최상위 2루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0년에도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지는 못 했다. 2010년 골든글러브 2루수부문 수상자는 [[조성환]]이다. 2011년 초반에는 타격 성적이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을 유지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是夜(시야)에 奎星(규성)이 隕地(운지)하듯 타율이 수직낙하하며 시즌 막바지에는 철밥통 주전 자리가 깨지고 [[조동찬]]과 플래툰으로 기용되었다. 2012년에는 [[조동찬]], [[김경모]], [[손주인]]과 함께 완전한 2루수 자리경쟁을 하는 위치까지 내려앉았다. 그리고 완벽히 롯데 시절로 회귀한 듯한 안습적인 성적을 내버리며 시즌 중간에 주요 전력에서 배제되었다. 그 후 간간히 1군에 올라왔다 내려왔다를 반복했다. 결국 시즌 후반기에 경쟁자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보인 조동찬이 2루수 주전으로 굳어짐에 따라 신명철의 삼성 라이온즈 생활도 막바지로 흘러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3시즌에는 완전히 백업 내야수의 지위로까지 내려앉았고, 주로 2군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가끔 내야수 보강이 필요할 때 1군에 올라와 경기 후반에 출전하는 것 정도에 그치는 활약만을 보였다. 더불어 이 시즌은 신명철의 삼성 이적 후 처음으로 100타석 미만 출전 시즌임과 동시에 0홈런 시즌이기도 하다. 결국 2013시즌이 끝나고 더 이상 삼성에서는 1군 선수로 뛰기 어렵다고 판단해 스스로 팀에 방출 요청을 하였고, 삼성 라이온즈가 이를 받아들여 2013년 11월 28일에 프로 생활 처음으로 무소속 선수가 되었다. ===kt wiz 시절=== 무소속 신분이었던 2013년 12월 6일 kt wiz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 kt wiz에 입단하고 2014년은 창단 첫 해인 팀 사정상 당연히 퓨처스리그에서만 뛰었다.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지만, 경기에 나올 때는 팀의 중심타선에 기용되며 그동안의 1군 짬밥이 헛되지는 않았음은 보여줬다. 이 때 프로에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한 팀의 주장 자리에 올랐다. 2014 퓨처스리그 기록은 91타수 28안타 2홈런 24타점 타율.308 출루율.430 장타율.451 2015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어, 개막전에 선발 1루수 6번타자로 출전했다. 그날 경기에서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조중근]]과 교체되었다. 5월 23일 한화전에서 경기가 끝난 직후 막말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신명철 개인주장으로는 한화벤치에서 먼저 욕을 했다고 한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741789 #] 이유는 예상컨데 5점 앞서있는 9회 상황에서 강경학이 도루를 했다는 거와 투수를 자주 교체했다는 것인데, 한화 벤치는 강경학이 과했다고 생각해 [[허도환]]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5점차는 때에 따라서는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는 점수로, 기만이니 뭐니 해서 화냈다는건 과하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바로 다음날 경기에서 kt타선은 5회에만 7점을 기록함으로써 신명철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6월 10일 롯데와의 경기에선 소속팀 kt가 9회에 5점 리드를 따라잡고 끝내 승리하게되는 놀라운 일도 벌어지면서 새삼 그의 행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br> SBS 주간야구에서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5점차를 승부가 기울어졌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뤘고, (특히 [[안경현]]은 '승부조작'이나 다름없다는 강경한 표현까지 썼다.)신명철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비췄다.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_domestic_baseball/126513/127749 해당 방송보기] 7월 10일 삼성전에서 3회 말 1사 1 2루 상황에서 클로이드의 슬라이더를 오훈규 주심이 스트라이크 판정하자 강하게 불만을 어필하다 퇴장당했다. 신명철 본인은 몸 쪽으로 빠진 볼로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중계 카메라로 다시 확인해 보았을 때, 클로이드의 공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도 문제없을 정도의 구역으로 들어갔다. 신명철은 이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였으며, 이에 오훈규 주심은 신명철의 항의가 심하게 지속되자 퇴장명령을 내렸다.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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