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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언제 이게 정착되었는가?=== {{선비}} {{진지주의}} 1. 민족적 정체성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성립하였다. 얼치기 탈민족주의자들께선 민족주의가 발현된 건 얼마 안 된 일이라고 까지만 막상 사서에 나온 걸 보면 한민족의 정체성은 꽤 오래 전부터 성립된 흔적이 보인다. ㄴ 물론 지금 견해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신라는 발해를 오랑캐로 보았다. 다음은 당시 지식인 최치원의 생각이다. "발해의 원류는 고구려가 망하기 전에 본래 사마귀만 한 부락이었고, 말갈의 족속이 번영해지자 그 무리 중에 속말이라는 작은 변방 부족이 있어 항상 고구려를 복종해왔는데, 그 수령 걸사우 및 대조영 등이… 문득 황야 지역을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振國·발해 초기 명칭)이라 명명됐다. 그때 고구려의 남은 무리로서 물길(勿吉·말갈) 잡류의 올빼미들은… 처음에 거란들과 손을 잡아 악을 행하고 또 이어서 돌궐(突厥)과 통모하여… 여러 번 요수(遼水)를 건너서 항쟁을 했다가 늦게야 중국에 항복했다." 그는 신라에 대해 '무궁화 꽃이 피는 고향'(槿花鄕·근화향)이라고 표현했지만 발해는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의 나라'라고 비웃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을 북방 숙신(肅愼)족의 특산품으로 인식했는데, 최치원이 이를 이용하여 발해가 '오랑캐' 숙신과 다를 게 없다고 비웃은 것이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서도 발해를 '북적'(北狄), '북쪽의 오랑캐'라고 비칭하기도 했다.(중국식 표현임.) ㄴ 애초에 근대적 민족주의 의식보다는 단결성이 떨어지더라도 같은 언어,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끼리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ㄴ 공통 분모가 있다는 이유로 그게 공동체 의식으로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냐? 빠르게 보면 나당전쟁, 늦게 보면 여몽전쟁. 나당전쟁은 당나라가 쳐들어오니까 신라를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유민과 뭉쳐서 싸웠으니 이게 한민족 통합이라는 설이 있긴 한데 조금 애매하고 ㄴ 오히려 흑치상지나 사타상여 같은 백잔 애들은 당나라에 투항해서 신라군을 조졌다. 고구려 애들도 수나라 시기부터 짱깨들 때문에 국력이 반토막 나고 고구려 점령되던 당시에도 당나라가 주력군이었고 신라는 당나라 애들 보급 셔틀 임무가 더 컸기에 신라보다 당나라에 대한 증오성이 더 컸고 신라는 신라대로 고구려 땅 좀 먹어보자고 안승 같은 고구려 폭도들을 지원했기에 민족주의와 거리가 좀 있다. 신라가 슬슬 죽어나가니까 손가락 빨고 있던 고구려, 백제 출신 호족들은 [[후삼국시대]]라는 대국적인 통수를 친다. 고려 때도 조위총이라는 새끼가 개경(개성)이 왜 고구려 수도냐! 빼애앩! 이러면서 서경(평양) 지역에서 난을 일으켰다. (왕건이 세운 '고려'라는 국호의 유래를 생각해보면...) 이의민은 아예 고려 실권자라는 놈이 갱상도 출신 폭도들을 데리고 후신라를 세우려는 개병신 같은 음모를 꾸몄다. 여몽전쟁은 확실한 게, 여몽전쟁 이전에는 신라 부흥 운동 같은 것도 있었지만 여몽전쟁 이후 일어나는 반란에 백제, 신라 되살리자는 기치를 들고 일어난 새끼가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선 이때부터 고려-신라-백제 후손들이 통합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몽고라는 지구 상의 최대의 적 앞에서 망한 지 존나 오래된 신라, 백제 부랄 애무하고 있을 틈이 어디 있었겠냐. 애초에 임진왜란 때 일본 애들도 머가리가 있으니까 첨부터 좆같지 굴진 않고 좋은 조건으로 회유했지만 막상 그 회유에 넘어가는 케이스는 무척 드물었다. 오히려 왜구 몰아내자는 의병이 일어나면 일어났지. 기득권인 양반 새끼들이 의병이라고 폄하하는 부류도 있지만 막상 평민 의병장도 있었다. 그 대신 평양에서는 임해군을 왜군에게 넘겨 주었다. ㄴ 그건 임해군이 전쟁 중인데도 병신 짓하고 돌아다니니까 그렇지. 왕자 중에서도 역대 최악 쓰레기였다. 명나라에 사신 보낼 때 요동에 사는 조선계 사람이 사신들을 보고 "이 동네 애들은 대부분 너희들과 같은 족속이라능~" 소리도 한 걸 보면 한국은 민족적 정체성이 빠르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는 근대에 발생하고 성립되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당시 정치적 집단에서 기원하여 일본의 혈연주의와 결합되어서 생긴 용어이다. 당장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성립되려면 다른 민족이 존재해야 하고 다른 민족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민족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도달하게 된다. 근데 이것은 구분할 필요성이 있을 때 성립이 되는데 전통 사회에서는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 왕의 정통성은 중국의 황제가 책봉했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만일 민족주의가 전통 시대에 존재했다고 가정하면 한민족은 다른 이민족의 황제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로서 어떤 씨족이 한민족의 백성들을 통치한다. 이것은 매우 절대적이며, 한민족의 상놈들은 이를 거스르면 역적이 된다. 간단하게 이렇게 되는데 아무리 봐도 전통시대 사람들이 근대적인 가치인 민족을 생각해두고 행동을 하였다는 점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아둥바둥 중국과 연결시켜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고 했지 그럼 왜 외세가 침략하였을 때 우리 조상들은 민족주의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였는지 살펴보자면 갑자기 어느 날 기묘한 복장을 한 불량배 무리가 자신과 이웃의 사유 재산과 생명을 약탈하는데 이걸 두고 보기보다는 쫓아낸다는 것에 가까웠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민족주의 내에서는 민족이라는 속에 왕, 양반, 평민, 노비 등이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것으로 묶여있는데 지금도 몇몇 분들은 현실 하층민하고 자신을 엮기 싫어하는데 과거는 오죽했을까? ㄴ정확히는 민족 구분은 일정 부분 있었으나 (대개 요, 금, 송같이 민족 통일을 이룬 영웅이 등장한 이후 각자 민족 팔이를 시작했다.)그냥 화이론처럼 신분제하의 외세배격 정도로 선을 그었다.즉 자기국민보호까지는 있어도 그게 만민평등이라는 신분적 화합은 역모였던 것이라.. 이것은 노비가 왕에게 말하길 "왕이시여 우리는 같은 민족입니다. 그러니 멀리 이민족 황제라는 인물의 권위를 빌린 통치를 그만두시고 우리와 같은 한민족의 대표자이신 왕으로 통치를 하십시오" 를 했을 때 무슨 반응이 나올지 생각해보면 편하다. 그리고 여담을 추가하자면 민족이란 단어 자체도 일본이 서양식 nation 개념을 민조쿠(民族)로 번역하여 읽은 일본식 문자를 그대로 수입해서 민족이란 단어로 쓰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애초에 민족이란 단어는 조선시대 때 조상들이 우리민족끼리 우리민족만세 요지랄은 안 했다 주상전하 만세 이 지랄은 했어도 말이다. 민족주의 개념은 일제시대 때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쪽바리 새끼들에게 반발하기 위해 선동할 거리가 필요한데 무지하고 똥만 치우던 조선 백성들에게 깨우쳐줘야 할 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맨날 논밭이나 매고 원시인 수준으로 사는 놈들을 정신을 깨야 독립을 하든 뭐든 할 게 아닌가? 애초에 이조 개새끼들이 기득권 유지 위해서 백성들을 그냥 무뇌아로 만들어버렸고 상위 귀족 새끼들이나 권력 나눠 먹고 배워 처먹기 때문에 이 귀족 새끼들과 일부 왕족 새끼들이 나라 팔아먹고 나라가 망하고 일본에 들러붙는 바람에 조선은 씨가 말린 것이다. 일부 소수의 애국자들 제외한 90%의 개새끼들이 다 팔아먹었는데 무슨 나라가 존재할 수 있던가. 그런데 나머지 농사나 짓던 천민 백성 놈들은 나라가 바뀌었어도 관심은커녕 나라가 망했는지 바뀌었는지 먹혔는지 알지를 못 할 수밖에. 왜? 지금 아마존에 사는 현대사회와 단절된 소수 원시인들한테 아이폰 가져다주면 만지긴 하겠니? 그래서 그동안 일반 백성을 천시하고 더럽다고 줘 패고 심심하면 때려 죽이던 양반씹종자 자손들 중 정신 차린 새끼들이 시작한 게 바로 쪽바리 새끼들이 즐겨 쓰며 민족주의 내세워 깡패질 할 때 쓰던 민조쿠 단어 자체를 그냥 수입해서 민족이라 부르며 거기에 韓을 붙여서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독립운동에 주된 단어로 사용하여 백성들을 깨우려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처음이야 이조 왕권 복귀니 뭐니 이 지랄로 시작은 했겠지. 근데 이게 먹히겠는가? 또다시 개좆쓰레기 바닥에 똥이나 뿌리고 다니는 미개 시절로 간다고 하는데 어떤 미친 놈이 동조하나? 그러나 이것도 너무 늦어버린 게 일제시대 때 일본식 교육으로 조선인 자체를 일본인으로 흡수해버리려고 하는 정책들이 먼저 나오면서 독립운동은 대대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다. 일본 놈들이 치밀한 것이 조선은 완전한 극과 극의 신분 사회인 점을 캐치해서 상위 기득권층은 작위와 돈으로 매수하여 나라를 자발적으로 팔게 만들고 하위층은 서서히 일본식으로 가르쳐서 완전한 합방을 노린 것이 제대로 먹혀 들어간 것이다. (이 부분이 통할 수밖에 없는 게 이조 새끼들은 사실상 백성에게 뭘 해준 게 없다. 그저 빨대로 피만 빨아 먹었을 뿐이다. 이러니 어떤 미친 새끼가 이조 왕조에 충성을 하나. 국민이 똑똑하면 내 똥구멍을 국민이 따먹는다고 생각해서 뭘 가르친 적도 없는 샊기들이) 이런 방식이 지금도 통할 수 있다는 걱정이 되는 건 현 대한민국의 사회는 극과 극의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고 저 당시엔 '교육'을 '자본'으로 바꾸면 현 상황이나 조선 시대나 다를 게 없는 상황이 된다. 이 당시 배움이 기득권을 필수 요소였다면 요즘 한국 사회는 돈이다. 돈을 지키고 독점하는 자들과 돈을 못 가지고 바닥만 전전하는 한국 사람들. 만약 이 점을 파고 들어서 짱깨나 쪽바리 러시아가 이때와 같은 전술을 사용한다면 이 나라는 단숨에 또다시 무너질 확률이 높다고 장담한다. 무조건적인 충성만 요구하면 나라가 팔려나간다는 사실을 우린 지난 역사에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독립세력이 선동을 해도 제대로 안 먹힌 것은 나라를 뒷받침하고 있는 중·하위 세력이 점차 일본 문화로 편입된 시기에 돌입을 했던 것이 주요했다. 천조국의 폭격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반도는 일본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남선이 민족은 일본 단어를 수입한 것이니 겨레라는 단어로 대체하자는 소리도 지껄였지만 전혀 그딴 건 이제 소용없게 되었다. 병신들이 민족을 쓰든 겨레를 쓰든 관심도 없고 국사도 필수 교육 항목에서 제외하는 나라에서 뭔 좆을 빨라는 소리로 쓰고 부르든지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무슨 상관있겠냐면 조선인은 대대로 근시안적 시각만 봐왔고 지금도 다를 게 없다. 그냥 눈앞의 것만 잘하면 된다. 과거 따위? 한국은 그딴 건 상관없고 지금이 중요하다 생각하며 같은 실수 반복 행동하는 미개한 잡놈인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ㄴ일본제국 망한 게 이 논리인데 일본 까면서 자기들은 또 그걸 따라하신다 항봉무녀 찍고 싶으셨나? 위에 소리에 대해서 반박을 해보자. 먼저 우리나라 왕이 중국 황제에게 책봉받는 형식인 건 맞는데, 원나라 지배시기를 제외하고는 중국 황제가 우리나라 국왕을 갈아 치우는 건 불가능했다. 조선시대에 책봉 못해주겠다고 밀당한 적은 있어도 책봉 거부되어서 물러난 적은 없다. 즉 중국의 책봉은 형식적인 것에 가깝지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고 봐도 된다. 아, 고려 시대에 왕 갈아 치운 거 인정 못한다고 쳐들어온 적은 있네. 그렇다고 책봉을 받지 말고 주체성을 되찾으라고? 자체적인 달력(우리나라 달력은 중국에서 받아온 걸 그대로 썼었다.) 연호만 쓸려고 해도 당장 쳐들어올려고 드는 애들에게 너희 책봉 안 받아^^ 우리도 황제임^^ 하면 바로 전쟁 시작이다. 민족하고는 관계 없다고. 서양권에서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잘 녹아 살던 거(얘네는 유전자가 엄청 섞여있다. 교류 많았거든) 달리 동양권에서는 중앙집권국가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서로 간의 배타적인 영역이 정해져서 그 안에서만 교류하는 상태였다. 이 점에서 동양권에선 민족이라는 단어가 없었지만 그와 유사한 개념이 생겼다고 보는 거고. ㄴ근데 원시적인 민족주의 비슷한 감정들은 세계사 보면 다들 있었다. 이란만 봐도 유력자들이 파르티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킬 때 우덜하고 다르다고 하며 반란 일으키기도 했지. 근데 그게 학문적으로 자리를 잡은 민족주의하고는 완전히 달라서 근대 이후 학문적으로 완성되기 시작한 민족주의와 같은 효과는 없었다. 물론 중화사상처럼 초기형 민족주의(?)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유사한 효과가 있기는 했는데,(까놓고 중국 문명이 다른 고대 문명들과 다르게 맨날 부활했던 이유도 민족주의 비슷한 중화사상 개념을 학문적으로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서구 민족주의가 퍼진 이후 효과를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까지 효과가 대단하지는 않았다. 서구의 민족주의는 학문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설득력이 대단해서 자발적으로 징집할 수 있는 병력과 사기부터 민족주의가 없었던 국가들과 비교하면 아예 차원이 달라졌지. 이점은 제국주의 시대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서구 민족주의가 없는 애들은 학살을 당해도 이웃들이 "(ㅇㅅㅇ);;" 거리고 있어서 학살하기가 수월했지만 에디오피아처럼 서구 민족주의 받아들인 애들은 엄청나게 저항해서 시간, 자원과 비용을 상당히 많이 소모시킴. 사실상 현재 연구들만 봐도 기준을 바꾸거나 하면 민족이 달라질 수도 있고 서구 민족주의 개념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같은 민족이 형성되었을지는 의문이지. 평민들은 나라가 망하는 말든 관심 없었다고? 조선에서만 해도 동학농민운동부터 시작해서 온갖 의병은 뭐냐? 만 단위로 들고 일어났는데 이게 다 양반인가? ㄴ동학농민운동은 지도자들이 민족보다 왕에게 충성을 바치자고 일어난 운동임. 목적도 간신 제거와 왕이 정치 제대로 하게 만드는 거였다. 중국만 해도 의화단 운동이 왜 일어났을까? (나무위키에서는 탈레반이라고 까지만 애초에 그 제노포비아가 왜 발생했을까?) ㄴ중국은 서구 민족주의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의화단 운동 같은 경우는 과거 사상과 혼합되어 발생한 일이다. 영국이 몇백 년간 동화시켜서 자신의 언어(게일어)도 거의 다 잊어버린 아일랜드도 독립했다. 왜 독립 못할 거라고 단정하는 건가. 일본이 교육을 시켜서 초딩들이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건 사실인데, 민족의식은 커가고 차별받아가면서 크는 이념이다. 그래서 [[이봉창]] 의사가 청년 때는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민이었다가 차별 당하고 각성해서 그 천왕에게 죽창을 날린 독립투사가 된 것이고, 중국에서 나름대로 우대 받은 [[조선족]]들이 자길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ㄴ 이건 너무 한면만을 보는거다. 아일랜드는 영국 성공회와 아일랜드 카톨릭의 종교적 차이 문제가 컸고, 더욱이 아일랜드 대기근과 같은 사건에서 영국 본국의 버러지같은 대응도 큰 문제였다. 민족보다는 이런 거지같은 사건들이 되려 희석되었어야할 근대적 민족주의에 불을 당겼다는게 맞다. 한 사회에서 약자 집단이 탄압에 대응해서 구심점을 찾고 반감을 가지는건 흔한 일이다. 애초에 교육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다. 태반이 문맹이고 초등학교도 부족하게 지어서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사람이 널렸는데. 일본어 구사자도 독립 직전에서야 30%대였고. 하나 더. 조선이 신분 사회인 건 맞지만 중세 때는 철저하게 무사와 평민 거주지까지 나누고 근세에는 서양에서 작위까지 수입한 일본이 할 소리는 아니지. 지금도 우리도 좆망이라지만 주변국 사회도 좆망이거든요? 중국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러시아는 그냥 정경유착이 기본인 기업가가 판치고 그나마 일본도 계급문화가 우리보다 더 강하게 남아있는데. 3. 학문적 민족주의 원래 동아시아에서는 민족 비슷한 개념이 확립되어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상 학문적으로 보면 제대로 된 민족주의는 없다고 보면 된다. 까놓고 서구와 비교하면 민족주의 비슷한 것들이 근거가 대단하지 않았고 설득력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서구식 민족주의처럼 엄청난 결속과 맨파워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계사를 보면 다들 나름대로 민족 관념이라 볼 수 있는 것이 있었으나 순수 학문적 영역에서만 비교해도 서구에서 나타나게 된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애초에 고작 조세나 도시 간의 이질성 같은 문제만으로 칼을 거꾸로 잡았던 것이 고대의 민족주의다. 대표적으로 유럽, 중동, 중국 등을 살피면 제대로 된 민족주의의 등장 전에는 알렉산더처럼 이민족이 세금을 낮추어 준다고 하자 칼을 거꾸로 잡거나 같은 민족인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계투를 벌여 몰살하는 경우가 흔했다. 서구 민족주의가 퍼진 후에는 세계에서 이런 일들이 크게 감소했다. 충성심도 보통 민족보다는 국가나 왕이 그 대상이었기 때문에 로마에 고용된 게르만족들처럼 같은 민족들을 죽이는 일에 별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게 정상적이다. 까놓고 동아시아도 따히 예외는 아니라 중국, 일본 등에서 용병으로 고용된 이민족들은 비슷한 민족들도 잘만 죽이고 일단 충성 맹세만 하면 다른 이민족 국가나 왕에게 충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물론 세계에도 중화사상처럼 어느 정도 초기형 민족주의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었으나 솔직히 대부분 피지배 계층에게는 이민족이 왕이든 말든 그렇게까지 그게 신경 쓰이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란만 봐도 파르티아 때 분명하게 이방인들이라고 여기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것은 망할 국가가 되어 여러 문제가 생겨서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 세운 명분 중 하나지, 나머지 기간 동안은 잘만 지냈다. 사실 세계사를 보면 어차피 이민족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라고 피지배 계층에게는 딱히 다를 것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상당히 협력을 하기도 했다. 세계사를 살피면 이민족만이 아니라 같은 민족의 지배 계층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당한 수준의 폭정, 차별을 하거나 학살을 하는 경우가 널렸다. 특히 거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들의 경우에는 같은 민족임에도 지방들이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타나거나 하기도 해서 다른 지방 사람들을 엄청나게 차별하거나 몰살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이민족과 손을 잡고 대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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