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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황제&고려천자== {{개념금수저}} {{주인님}} 근데 이런 잉여가 위에 말했다시피 조선에게는 구국의 현신으로 칭송받았는데, 즉위기간 동안 수행한 극히 얼마 되지않는 황제짓 중 하나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군을 파병을 한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도 사비를 들여서 빠르게 처리했기 때문. 이 때 명나라 재정의 3분의 1을 털어 조선 구원에 쏟아 넣었는데 옆의 신하들이 고려천자라고 비꼴 정도였다. '''일명 중국의 [[무타구치 렌야]]''' 또 조선 백성들이 "왜적" 때문에 수확을 못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은 만력제는 명나라의 재정을 털어 곡창 산둥성의 쌀 백만 석을 매입해 조선 백성을 위해 원조하기까지 했따. 말이 100만 석이지, 1석이 89kg이므로 100만 석이면 약 9만 톤이다. 9만 톤을 전근대적 수단으로 황해를 건너 지원해준 명신종니뮤ㅠ다. 이 지원이 없었다면 경신대기근급 참사가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조선만을 위한 황제였던 것이다. ㄴ 참고로 9만톤이면 조운선 1700척 분량이다 ㅎㄷㄷ ㄴ 물론 그 쌀은 나중에 조선 조정이 어떻게 마련해서 다시 갚기는 했다. 아무튼 이런 어마어마한 명나라의 지원으로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후 처리를 순식간에 해치우게 되고 실제로 광해군때 어느정도 전후 처리가 완벽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광해군이 풍수지리에 미쳐서 취미로 궁궐을 지으면서 다시 경제가 파탄나기 시작했으며 인조가 집권한 이후 짱깨들한테 두번이나 털리면서 조선 경제는 이후 회복할수 없는 나락으로 다시 떨어지게 됐다. ㄴ조선 경제는 청과 왜 사이에서의 중계무역에서 발생한 이득과 17세기 중반부터 다시 시작된 인구증가 덕에 생각보다 금방 회복되었다. 국고에 있는 은의 양은 오히려 이전 시대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앞마당인 조선이 일본에 먹히면 안된다는 지정학적 판단이었다고도 하는데... 솔직히 말이 안된다. 이새끼는 누르하치가 명군 쌈싸먹고 한창 만주 점령할때도 전혀 신경 안쓰던 새끼다 일썰에 따르면 만력제가 꿈을 꾸던 중 자기는 [[유비]]인데 조선 [[선조]]가 [[장비]]여서 '''"형님! 구해주십시오"'''라는 구원 요청을 듣고 조선원조를 결정했다고 한다 명나라는 원나라 시절의 전통을 이어받아 국초부터 조선인 여성들을 궁궐로 인신매매 해갔기에 역대 명황제 첩실로 조선인 여성들이 한두명씩 껴있었다. 당시 신종이 가장 애정을 표했던 궁내 할망구도 조선인 여성인지라, 이 할매 배려 차원에서 행해졌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아니면 그냥 단순하게 당시 대신들이 죄다 조선 지원 반대하니까 그냥 쟤들 다 좆같으라고 단순 반항심에 반대로 행동했던 것일수도 있다. 조선뽕 중증환자인가 아니면 현대한국인이 신종으로 환생했다는 설도 있다. 파병된 명군이 횡포를 부린것도 꽤나 많지만. 근데 사실 명군도 할 말이 있긴 한 게, 원래 명군 보급계획 짤 때 조선 땅에서 돈 주고 군량미를 사려고 계획을 짰다. 근데 화폐경제가 확립된 명나라랑은 달리 조선은 아직까지 돈이란 게 제대로 통용이 안 되는 거시었다....가져온 돈은 쓸모가 없고 밥은 먹어야겠고 그러니 뭐다? 그리고 사실 구원군으로 온 명군이 죄다 요동주둔군인데, 굉장히 거친 남자들이라 조선에 파병전에 명조정에서도 '이렇게 질떨어지는 친구들을 파병보내도 되냐'라고 논란이 됐을 정도였음. 비교하자면 베르세르크의 흑견기사단보다 약간 나은정도? ㄴ요동주둔군만 온건 아니고 남쪽군대(절강병)도 참전했는데 얘네들은 대포쏘고 총쏘는 솜씨가 ㅆㅅㅌㅊ었다(국뽕들이 포병덕후라고 빨던 개좆선군대수준 이때 다 들통남) :ㄴ 국뽕들이 과장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양대군 이래로 조선 군사력이 씹창난 영향임. 반대로 생각하면, 왜구들이 지리적으로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조선 남해안보다 동중국해 원정을 더 많이 가던 이유가 여말선초 때 거하게 두들겨 맞은 영향 때문이고,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 조선 군사력이 씹창날 때 여기가 반대로 실전 경험을 쌓고 정병이 됨. 실전경험 본격적으로 쌓기 전엔 얘들도 왜구 53명 때려잡겠다고 보낸 군대들이 차례로 털리는 바람에 사상자가 4,5천명이나 발생하는 추태를 보여준 적도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조선구원군으로 온 장교들 중에 [[이여송]]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원래 조상이 조선 사람이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명나라로 귀화한 사람이다. 아무튼 이때 만력제가 조선을 거의 비밀조선인 수준으로 퍼주다보니 조선에서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감사는 어마어마했고 명나라가 망조가 들고 새로 청나라가 건국되어도 조선은 끝끝내 명나라의 은혜를 배신할 수 없다며 광해군을 내쫒고 끝까지 명나라만을 섬기다보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한번 더 털리고 조선 역시 서서히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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